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과정에서 폭로된 원세훈의 육성 녹취록은 국정농단으로 파면당한 박근혜 정권 당시 언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못할 때마다 (언론을) 쥐어 패는 게 정보기관의 역할”, “기사를 못 나가게 하든지, 안 그러면 기사 잘못 쓴 보도매체를 없애버리든지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 등 거침없는 발언들은 대한민국 시계가 보도지침을 하달했던 1980년대로 급속히 돌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거 정권의 ‘언론통제’가 가시적으로 사라진 지금에도, 공영방송의 보도가 변하지 않고 있고, ‘탄핵’, ‘6·10항쟁’ 등 중요한 역사적 시사물들이 연속으로 불방되고 있는 현실은 방송의 직접통제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부패정권과 공영매체 간에 공동불법행위자의 알량한 의리 내지는 이념의 자기도취가 방송사 안에 남아있다는 판단이 서는 이유이다.

지난 2월23일에 있었던 MBC 사장 후보 3인에 대한 면접 과정은 공개되지 않은 공간에서 뜻이 맞는 패거리들이 가졌던 허심탄회한 소통의 자리였고 MBC 형질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전략과 전술을 이심전심으로 나누는 범죄의 현장에 다름 아니었다.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MBC 경영진과 방문진 다수 이사들은 ‘공범’

그동안 MBC의 전・현직 임원들은 무고한 직원들을 부당하게 전보・징계하는 등 인사권을 남용해 왔고, 불법으로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언론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회유・압박하고 노조활동을 감시・방해하며 단체교섭을 고의적으로 기피하는 악질적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해 왔다. 또한 특정 정파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편성과 제작에 수시로 개입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여론을 왜곡해 왔다.

MBC에서 벌어진 이러한 불법과 악행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수십여 건의 노사 간 소송 결과에서도 입증됐다. 또한 그것은 2015년 MBC의 한 임원이 극우 인터넷매체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스스로 고백한 불법해고, 편성개입, 출연청탁, 채용비리 등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녹취록이 언론에 보도되자 모두 허위라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던 그 임원은 1년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용하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자가당착에 빠진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다름 아닌 MBC의 공적 책임과 관리감독을 맡은 방문진이었다는 사실이다. 방문진 다수이사들은 녹취록에 담겨진 임원의 문제 발언들을 “술 취해서 한 헛소리”라며 가벼운 실수로 몰아갔고, 소명 과정에서도 ‘출석’・‘소환’・‘진상규명’ 등의 용어를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웃지 못 할 지침을 정하기까지 했다.

지난 8월16일 세상에 알려진 ‘2월23일 이사회 속기록’은 MBC 경영진과 방문진 다수이사들 간의 공범관계를 사실로 드러낸 것이다. 당시 부사장, 보도본부장 등 MBC의 핵심 임원과 고영주 이사장을 비롯한 방문진 다수이사들의 발언들은 그동안 MBC 경영진이 저지른 온갖 불법행위가 단순한 경영상의 실수나 오류가 아니라 매우 불순한 목적과 계획 하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돌이킬 수 없는 편향보도의 주역들이고 교정이 불가능하며 교체해야 할 대상”이라며 거침없는 비난을 쏟아냈다. 김광동 이사는 “항구적으로 이런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서 경력기자를 뽑아서 대체 대안을 만들어냈는데…”라며 권재홍 후보(당시 부사장)를 상찬하고 위로했다. 유의선 이사는 “기존의 인력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권 후보는 “미래방송연구소, 방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곳도 있다”며 언론노조원은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시킬 수 없음을 시사했다. “오랜 세월 안고 있는 MBC의 구태의연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경력기자를 더 뽑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방문진 다수이사들의 편집증적 ‘편향성’과 ‘적개심’

이 속기록 문건이 폭로된 다음 날 방문진 다수이사들이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서는 방송에 대한 다수이사들의 편집증적인 편향성과 언론노조에 대한 적개심을 고백한 자술서이며 그들의 신념체계를 그대로 드러내 놓은 것이다.

성명서는 “(MBC가) 민주노총 소속의 언론노조원들에 의한 일방적이고도 편향적인 보도 및 시사제작이 반복됨에 따라 국민적 신뢰를 잃었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왔었다”면서 “더 이상 편향된 프로그램 제작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성명서는 “정치활동에 전념하는 언론노조의 횡포와 공정방송유린에 대응하여 회사의 질서를 유지하고 방송의 공정성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묻는 것은 방문진의 정당한 책임”이라며 과대망상에 가까운 주장을 폈다.

고영주 이사장은 평소에도 피디수첩의 ‘광우병’과 같은 프로그램은 사라져야 하고, 애국진영의 이름으로 지금 MBC가 가장 공정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 2월23일 사장 면접은 극우 부패정권을 보위해 왔던 언론부역자들이 새정부를 타도할 계획을 구상해왔던 자리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월2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로부터 취임 후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 두 번째) 등과 차담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8월2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로부터 취임 후 첫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앞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오른쪽 두 번째) 등과 차담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8월22일 문재인 대통령은 MBC에 대해“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라고 했고, 같은 날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MBC 구성원들에 자행된 이유 불문의 전보와 징계 행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돼 수사 중”이라면서 “수사가 마무리되면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부역자들은 대통령과 주무 장관의 이러한 발언을 ‘방송장악’이라고 선동할 것이다. 그들의 터무니없는 선동이 멈추게 할 ‘정의로운’ 조치가 하루속히 내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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