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앞두고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다. 질 게 뻔한 소송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송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송을 맡길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지급해야 할 뿐 아니라 법원에 낼 인지대와 송달료도 부담해야 한다. 소송에서 지면 이에 더해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도 물어줘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아온 사람들은 혹여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승소 가능성을 과장하지는 않는지 살핀다. 그런데 누군가 질 것이 뻔한 소송을 마구잡이로 남발한다면? 혹은 상대방으로부터 소송을 당해 패소할 것이 뻔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밀어붙인다면? 그건 십중팔구 다른 목적이 있어서다.

MBC 소송의 목적은 ‘노동조합 기선 제압’

최근 몇 년 동안 MBC 경영진들은 소송을 걸어서 지든 당해서 지든, 결과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쿨한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 국회를 통해 공개된 자료를 보면, MBC는 2012년부터 약 4년 동안 48억여 원을 소송비용으로 썼는데, 이 중 노동조합과의 소송에 들어간 돈이 20억여 원이었다. MBC는 다른 소송에서는 사건당 평균 1500만 원의 소송비용을 쓴 데 반해, 노동조합과의 소송에는 그 두 배인 평균 3000만 원을 썼다. 결과는 어땠을까. 2016년 공개된 자료를 보면, 부당해고 및 징계와 관련한 소송 29건 중 MBC가 이긴 사건은 단 2건이었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이 정도면, MBC 경영진의 무능을 탓할 만한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얼마 전 이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확인된 일이 있었다. 2014년 백종문 당시 MBC 부사장이 일부 매체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최승호와 박성제는 증거 없이 해고했지만 소송비용이 얼마든, 변호사가 몇 명이 들어가든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발언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노동조합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면 해고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도 해고하였다는 것이다. PD들을 해고하고, 기자들을 스케이트장에 보내도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일단 시간을 벌고 나중 문제는 그때 가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MBC의 못된 습관, ‘손해 배상’으로 고쳐라

MBC 경영진의 이러한 대응방식을 두고, 미국의 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과 유사한 면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략적 봉쇄 소송’, ‘입막음 소송’이라고도 번역되는 SLAPP은, 승소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제기되는 소송을 말한다. 국가기관이나 고위공직자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시민과 언론 등을 상대로 제기하는 명예훼손 소송 등이 전형적인 SLAPP으로 분류된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SLAPP이 비판과 문제제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아, 어떤 소송이 SLAPP이라고 간주될 경우 조기에 소송을 각하하거나 약식판결로 기각하는 슬랩 억제(Anti-SLAPP) 법리를 채택하고 있다. MBC가 벌이는 소송들은 언론독립과 제작 자율성을 외치는 언론인들을 찍어누르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SLAPP과 닮아 있다.

▲ 영화 ‘공범자들’은 MBC 해직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이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감독이 김장겸 MBC 사장(왼쪽)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 영화 ‘공범자들’은 MBC 해직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이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감독이 김장겸 MBC 사장(왼쪽)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다른 한편으로 MBC 경영진이 이런 정도까지 마구잡이 소송을 할 수 있었던 건, 소송에서 줄패소를 당하더라도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이상으로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유 없이 PD와 기자를 해고했다고 자백한 백종문 당시 MBC 부사장은 검찰에 고발되었지만, 올해 초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회삿돈을 소송비용으로 낭비해가며 질 것이 예상되는 사건에 대해 항소와 상고를 되풀이하는 것이 배임에 해당한다는 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MBC 경영진은 “소송은 질 수도 이길 수도 있고, 누구나 세 번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항변하지만, 그간 벌어진 일들을 보면 마구잡이 소송은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이 충분히 확인되었다. 그간 경영진이 무리하게 소송을 진행해 쓴 소송비용 등의 손해를 이들에게 구상(求償)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된다.

MBC의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듯하다. 기자들에 이어 아나운서들까지 출연·업무중단을 결정했고 속속 제작거부에 많은 사람들이 합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MBC 경영진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파업이 벌어진다면, 회사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때와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소송으로 흥한 자, 소송으로 망한다. 소송을 수단으로 상대방을 겁박하는 못된 습관. MBC 정상화의 과정에서 걷어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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