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는 기자회견’ ‘각본 없는 생중계.’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 제목이다. 이번 회견이 사전에 질문 내용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전임 정권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기 때문에 더 주목했을 수도 있다.

실제 이번 기자회견은 말 그대로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었다. 청와대는 어떤 기자가 어떤 질문을 할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00일 기자회견에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형식은 자유로웠던 반면 평이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그동안 ‘대본을 외우듯’ 진행한 기자회견에 익숙해진 국민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신선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는 별도로 이번 기자회견은 언론계에 몇 가지 숙제를 던졌다. ‘각본 없는 기자회견’은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인들이 스스로 싸우거나 요구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자유롭게 질문을 허락하는 정권’에겐 질문을 하고, ‘자유로운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정권’ 앞에선 침묵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해 지난 9년 동안 한국 언론은 현직 대통령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100일 기자회견’이 아니라 ‘박근혜·이명박 100일 기자회견’이었더라도 기자들이 이번처럼 자유로운 질의를 할 수 있었을까. ‘우리도 나름 할 말이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왜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이렇게까지 냉랭해졌는지를 먼저 짚어야 한다.

▲ 특집 SBS 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 사진=SBS
▲ 특집 SBS 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화면 갈무리.    사진=SBS


‘100일 기자회견’이 기자들에게 질문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면 지난 20일 지상파 3사 등을 통해 방송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국민보고대회’는 편성권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KBS MBC S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와 YTN 연합뉴스TV 등 보도채널을 통해 생중계 된 ‘국민보고대회’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일방적인 정권홍보’라고 맹비난했지만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문제는 이날 ‘국민보고대회’ 생중계 결정을 한 방송사들이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방송사 측에 생중계를 요청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각 방송사 생중계 여부는 방송사 스스로 자율편성을 했고 청와대가 생중계와 관련해 의견을 전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도 행사 당일 방송 출입기자들로부터 생중계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생방송 편성여부는 해당 방송사들이 알아서 결정할 사안이다. 하지만 정권 초기 대통령 관련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동시간대에 ‘똑같은 내용의 화면’이 주요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관행’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언론은 이 질문 앞에 스스로 답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제 언론계 스스로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 특집 SBS 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대국민보고’ 화면 갈무리.  사진=SBS
▲ 특집 SBS 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대국민보고’ 화면 갈무리.   사진=SBS


이번에 ‘국민보고대회’를 생중계한 방송사들 대부분이 사장 선임과 관련해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란 점도 예사롭지 않다. ‘동시다발적 생중계’가 국민의 알 권리보다 해당 방송사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 타개용’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사장 선임과 재허가 문제 등을 고려한 ‘자발적 생중계’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론·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언론은 두 이벤트를 통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냉정히 말해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 아니 냉소적인 평가가 더 많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자들의 질문권’과 ‘방송 편성권’에 대한 답을 언론 스스로 내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 영화 ‘공범자들’ 최승호 감독의 외침이다. 질문을 못하게 하는 정권 앞에서 언론은 질문할 준비가 되었는가. ‘문재인 정부 100일’이 한국 언론에 던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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