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_누르고_보세요.”

언론사 페이스북에서 보기 힘든 낯선 문구다. ‘스낵컬쳐’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공간에서 고화질 설정을 요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러나 헤럴드경제의 사내벤처 ‘인스파이어’는 영상미와 메시지에 집중하는 ‘숏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경제 본사에서 만난 서상범 인스파이어 팀장은 “속칭 ‘개싸움’이 되지 않으려고 했다”며 ‘숏타큐’를 제작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2011년 헤럴드경제에 입사한 그는 2014년 소셜미디어 업무를 맡게 됐다. 이후 ‘훅’이라는 디지털 브랜드를 맡으며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였다. “남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가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 아기 영상을 올리는 게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까. 사실 재미를 추구하자면 MCN과 싸워 이기기 힘들었다. 정치사회 이슈는 SBS가 잘 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콘텐츠도 인기를 끌었지만 종종 조회수 대박 터지는 게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이어질까? 그런 거 같지는 않았다.”

▲ 서상범 헤럴드 인스파이어 팀장. 사진=인스파이어 제공.
▲ 서상범 헤럴드 인스파이어 팀장. 사진=인스파이어 제공.

서 팀장과 동료들이 2017년 1월부터 두 달에 걸쳐 ‘색다른 콘텐츠’를 고민한 결과는 ‘숏다큐’였다. 모바일 환경에 맞는 짧은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다. “사회기사를 보면 영감을 주는 미담 기사나 인물 기사가 적지 않다. 이걸 영상 버전으로 만드는 시도를 한 거다. 이번 시도가 안 되면 ‘접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됐다.” 브랜드 이름인 ‘인스파이어’(inspire)는 ‘영감을 주다’라는 의미다.

인스파이어는 기자 3명, PD 2명, 영상디자이너 1명 등 6명으로 구성돼 있다. 영상을 만드는 브랜드인데 오히려 ‘펜 기자’가 가장 많다. 서 팀장은 “요즘 같은 시대에 신문기자가 설 자리가 없어 보이지만 의지와 감각이 있다면 얼마든지 역할이 있다”면서 “우리가 강조하는 건 ‘기획’이다. 똑같은 영상이라도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테일을 뽑아내고 새로운 ‘야마’(주제)를 찾는 건 기자가 잘 한다. 우리는 석간신문이지 않나. 조간신문들이 이미 다 쓴 뒤에 기사를 써야하니 남들과 다른 야마를 잡는 훈련이 많이 잘 돼 있다.” 기획을 하고 취재를 통해 남들이 발견하기 못한 점을 부각해서 핵심 메시지로 뽑는 것이 변함없는 기자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작품이 ‘종이비행기 국가대표’다. 종이비행기 부문 국가대표는 ‘스타킹’ 등 지상파 예능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이들이 소비되는 지점은 ‘신기하다’는 점이었다. 반면 인스파이어는 국가대표의 정교한 ‘기술’에 방점을 찍고 이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뽑았다는 점이 달랐다.

▲ '종이비행기 국가대표'편 화면 갈무리.
▲ '종이비행기 국가대표'편 화면 갈무리.

‘디즈니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편도 마찬가지다.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공주가 디즈니 최초의 페미니즘 공주라는 사실은 이미 언론에 소개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공주를 만든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디즈니 최초의 여성작가더라. 그 사람의 스토리를 엮어서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 서 팀장의 말이다.

똑같은 콘텐츠 공유도 ‘스낵컬쳐’와 ‘인스파이어 콘텐츠’는 다르다고 서 팀장은 지적했다. “단순히 ‘따봉’ 누르고 끝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독자 마음에 남아서 공유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서른아홉 한 차장, 늦깎이 뮤지션이 되다’편에는 “저도 뒤늦게 음악을 하며, 싱어송라이팅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두렵기도 막막하기도 했는데, 한차장님 모습을 보고 다시 용기와 좋은 기운을 얻어 갑니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서 팀장은 이를 ‘아날로그적인 가치’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남은 활판인쇄소편에 등장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넘버1을 원하지 않는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온니1을 하고 싶다.’ 이런 아날로그의 매력이 우리 콘텐츠가 지향하는 점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희소성도 있고, 가치를 소비한다는 느낌 말이다.”

콘텐츠 특성상 인기를 끌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서 팀장은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SNS 이용자 90%가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경쟁자들과 함께 90%를 잡는 게 오히려 무리다. 우리는 다른 10%를 잡으려 한다.”

인스파이어의 전체 영상은 20편이 채 되지 않는다. 영상 한편 제작에 3주가 소요된다. 콘텐츠로만 따지면 ‘수익성’이 매우 취약하지만 ‘숏다큐’라는 콘셉트 덕에 기업의 ‘브랜디드 콘텐츠’(네이티브 광고)를 통해 적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의뢰 후 미팅을 준비하는 때가 돼서야 인스파이어가 ‘헤럴드’ 소속이라는 점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숏다큐를 기획하면서부터 수익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지? 유료독자를 받는 건 정말 어렵다. 유튜브 조회수 기반으로 돈을 버는 것도 1인 미디어가 아닌 이상 쉽지 않다. 결국에는 광고인데, 뜯어내는 게 아니라 정당한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브랜드의 가치를 강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접목하게 됐다.”

서 팀장은 두 가지를 강조했다. “광고주는 기존 언론에 광고를 주는 것처럼 언론이기 때문에 브랜디드 콘텐츠도 ‘효과’를 바라지 않고 집행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콘텐츠로서 효과를 내야 한다고 본다”는 점과 “브랜드 노출이 많이 되지 않지만 보는 사람들이 한번 더 생각했을 때 브랜드의 가치가 연상되는 콘텐츠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종이비행기 국가대표’ 콘텐츠는 아시아나항공의 브랜디드 콘텐츠다. 촬영 장소가 활주로와 격납고이긴 하지만 아시아나 브랜드가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 대신 종이비행기에 브랜드가 투영돼 있다. 이곳 저곳으로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는 ‘항로개척’을, mm단위의 섬세한 종이접기 기술은 정교한 기술력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 콘텐츠는 부산국제광고제 PR부문 본선에 진출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제작중인 콘텐츠는 불꽃이라는 주제로 묵묵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한화그룹의 브랜디드 콘텐츠다.

서 팀장은 “우리의 시도가 다른 기자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편집국 내에도 선순환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돈 버는 콘텐츠라고 하면 학을 떼는 기자들이 있다. 하지만 수익이라는 건 중요한 요소다. 특정 대상을 칭찬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쓰지 않는 이상은 정정당당하게 좋은 콘텐츠로 먹고 사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서상범 팀장은 8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미디어오늘 컨퍼런스 ‘플랫폼 레볼루션과 콘텐츠 에볼루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편집자 주.)
http://special.mediatoday.co.kr/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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