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8개월만의 MBC 총파업은 직전 170일 파업과 크게 세 측면에서 다른 양상이 예상된다. 하나는 징계다. 5년 전 MBC경영진은 해고·정직 등 대규모 중징계를 쏟아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해고가 자명해보였던 김민식PD가 ‘출근정지 20일’에 그쳤고 300여명에 가까운 제작거부 인력에 대한 대기발령 조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하나는 대체인력이다. 5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경력기자 채용공고를 아예 취소했다.

또 하나는 소송이다. 5년 전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를 상대로 경영진이 195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재판부가 “공정방송 요구는 방송사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해당 한다”는 뜻 깊은 판결을 내면서 소송을 해봤자 실익이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지난 16일 MBC경영진의 공식입장에는 “언론노조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여러분은 참가하지 않은 사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사무공간을 비워 달라”는 쪼잔한 대목만 돋보였다.

▲ 지난 11일 MBC기자들의 제작거부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11일 MBC기자들의 제작거부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파업국면도 5년 8개월 전과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이명박정부와 문재인정부. 5년 8개월 동안 가장 큰 외부 변화는 촛불시민혁명에 의한 정권 교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됐다”며 “곧 검찰에 송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과 달리 MBC파업은 JTBC를 비롯해 SBS·MBN·YTN등 방송뉴스로 전해지고 MBC 사내 블랙리스트 논란은 국정감사 주요 이슈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경력기자 100여명. 5년 8개월 동안 가장 큰 내부 변화는 170일 파업 이후 늘어난 경력기자들의 존재다. 이들이 있어 메인뉴스 20꼭지 리포트 제작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경영진이 채용공고도 취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으로 경영진의 불안요소 또한 이들 경력기자다. 본부노조에 따르면 22일 낮 기준 제작거부에 합류한 경력기자는 33명(보도국 26명)이다. 22일에만 9명이 동시에 본부 노조 가입 신청서를 냈다. 경력기자 3분의1은 이미 돌아선 셈이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연쇄적인 이탈을 우려하는 경영진은 지난 16일 공식입장에서 “회사는 각종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성실히 일하는 사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께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2012년 파업에 참가하지 않았던 사원들마저 파업에 동참하며 분위기는 많이 기울었다. 이 때문에 보도국에 남아있는 기자들 사이에선 침몰하는 ‘김장겸호’의 마지막 선원을 각오 한 기자들도 있다.

김세의 MBC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차피 나는 보도국에서 1년 이상 못 버틸 것이다”라며 “매점 관리원 혹은 주차요원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떠한 탄압에도 비굴하게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2012년 이후 입사한 MBC 한 경력기자는 “내가 보도국에 남은 이유는 간부들을 존경해서도 아니고 우리들 리포트에 만족해서도 아니다. 단물 다 빼먹고 힘 빠지니까 배반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도국에 남은 기자들은 “제작거부에 동참한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를 바탕으로 진지전에 나설 태세다.

▲ 김장겸 MBC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현 경영진의 ‘최대 기대수명’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기가 끝나는 2018년 8월이다. 어떤 그림이 펼쳐지든 고영주-김장겸 체제는 반드시 물러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복수’와 ‘정상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차이로 인해 MBC에선 정권에 따라 복수극이 되풀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파업은 단순히 사장과 경영진이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건은 2012년 파업 불참자와 경력기자들에 대한 배제와 포섭의 기준과 범위다.

MBC본부 노조의 파업투쟁은 비파업자와 경력기자들이 MBC정상화투쟁에 공감하며 향후 들어설 MBC 새 경영진에 최대한 협조할 수 있을 정도의 완결성과 진정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5년 전 파업에 나섰던 기자들의 상당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언론사 버전’을 경험하며 ‘불공정 권력홍보방송에 부역하고 동료기자들에 대한 부당한 배제와 핍박에 눈 감았던 공범자들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부역자들과 타협의 여지는 없다. (관련기사=MBC기자들은 어떻게 죽어갔나)

그러나 5년 전 파업에 참가했고 현재 제작거부중인 MBC 한 기자는 “경영진이 노조출신 인사들을 포섭한 것처럼 우리도 최대한 경력기자들을 포섭해야 한다. 설령 그들 중 기회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한 명이라도 더 포섭해야 한다”며 “기회주의자를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이기는 투쟁은 없다”고 밝혔다. 얼마나 많은 사원들과 함께 손잡고 업무에 복귀하느냐가 결국 이 싸움의 관건이기에, ‘김장겸 OUT’ 이후를 고민하는 ‘큰 그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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