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다. 열 몇 개의 문장을 들으면 그 중 하나만을 골라서 따옴표를 친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기사의 주제에 맞는 문장만이 추려진다. 여성 단체, 활동가를 취재할 때면 그 한 문장은 늘 ‘이런 것이 문제다’, ‘화가 난다’ 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들이 화만 내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여성들이 있는 현장은 즐겁다. 여성단체의 집회에서 활동가와 참여자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분노한다. 그러다가도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면 웃고, 요구안이 받아들여지면 환호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세상에 이만큼은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 안도한다.

공중 화장실의 몰카를 탐지하는 여성안심보안관을 취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디지털 성범죄 정책을 내놓으면서 몰래카메라에 대한 관심도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데…”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것도 잠시, 탐지기를 들고 화장실 구석구석을 훑던 한 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머, 여기 물 안 내렸어. 내가 못살아!” 다같이 웃음이 터졌다. 한 화장실에서 다음 화장실로 이동할 때, 석촌호수로 내려가며 “산책할 겸 이쪽으로 걸을까?”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은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탐지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주로 어디 어디를 살펴보는지 이것저것 묻자 보안관들은 열심히 답변을 해주었다. 탐지기 작동법을 생생하게 알리고 싶어 영상을 찍었는데, 설명을 하던 중 말이 꼬이면 먼저 다시 하겠다며 스스로 ‘컷’을 외치기도 했다. 자기 일에 대해 설명하는 이들에게서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이들의 자부심은 여성안심보안관이라는 직업이 ‘여성을 위한’ 일인 동시에 ‘여성에 의한’ 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서울시는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를 처음 만들면서, 경력단절여성이나 취업준비여성을 우선적으로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기자가 만난 보안관 두 명도 경력 단절 후 일자리를 찾던 40~50대 여성들이었다.

“원래 일하던 사무실이 인천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거기까지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면접을 봤는데, 가는 데마다 다들 너무 좋은데 나이가 걸린다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고, 일을 하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여성들이 몰카에 두려움을 느끼고, 보안관들에게 감사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보람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서워하지 말고,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이 일이 몰카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안심을 주는 동시에,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은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고함20 편집장
▲ 이은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고함20 편집장
여성안심보안관이라는 제도가 가치 있는 것은 사적인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몰카 문제를 정책으로 편입하는 첫 번째 시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이 편하고 보수가 나쁘지 않은 것 이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보람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는 생각보다 적다. 일하는 여성들이 계속해서 ‘즐거울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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