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1. 제목: ‘민주주잉’, 클럽장: 천관율 시사인 기자. 읽는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최장집, 박상훈 외)
#클럽2. 제목: ‘뉴미디어’. 클럽장: 없음. 읽는 책: 앱 제너레이션(하워드 가드너 외), 미디어 이론(진중권) 등
#클럽3. 제목: ‘쿠르베JR’ 클럽장: 박성제 MBC 해직기자, 쿠르베 스피커 대표. 읽는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지음), 듣는 음악: Billie Holiday, Ella & Louis,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등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순우리말)가 운영하는 독서 클럽들이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관련된 이벤트나 행사를 열기도 한다. 2017년 하반기 시즌에만 140개의 클럽이 열린다. 민음사의 세계고전문학만을 모아서 읽거나, 시집을 읽는 모임, 영화평론을 쓰는 모임, 미스터리 소설 ‘셜록’을 함께 읽는 모임 등 꽤 다양한 ‘오타쿠’들이 모여 있다.

▲ 현재 트레바리에서 운영 중인 북클럽. 사진출처=트레바리
▲ 현재 트레바리에서 운영 중인 북클럽. 사진출처=트레바리
트레바리의 창업자 윤수영 대표 역시 ‘초협력자’라는 클럽에서 공동체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트레바리는 윤수영 대표가 2015년 만든 스타트업으로, 독서모임에 강제성을 부여해 사업으로 키웠다.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독서모임을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트레바리에서 운영하는 140개 북클럽의 원칙은 간단하다. 1달에 1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쫓겨난다. 한 클럽은 보통 15~20명으로 구성된다.

강제성의 대가는 저렴하지 않다. 클럽장이 있는 독서모임은 한 시즌(4개월)에 29만 원, 클럽장이 없는 독서모임은 한 시즌에 19만 원이다. 한 달에 5만 원~7만 원 꼴이다. 윤수영 대표는 지난 18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트레바리의 비용과 강제성을 두고 ‘하한선’을 확보하는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받아도 안 남는다. 그만큼 노동집약적인 일이다. 트레바리의 직원들은 클럽을 만들기 위해 어떤 콘텐츠로 클럽을 개설할 지 결정하고, 이를 위해 설문이나 데이터를 수집하고, 파트너를 섭외하고, 클럽장을 모시기도 하고, 클럽을 홍보하고, 클럽이 만들어지면 관리를 한다. 사람들이 오면 ‘뻘쭘’하지 않게 관계를 만들어가고, 독후감을 쓰지 않는 사람을 못 오게 한다. 클럽의 대화 수칙을 다잡아 나간다. 그래서 트레바리 모임의 하한선을 확보해주는 일이다.”

윤수영 대표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의 노동이 저렴하게 값 매겨지는 상황에 문제의식이 있다고 밝혀왔다. 그렇기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는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고 싶었고, 트레바리의 수익 대부분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에서 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트레바리에는 약 열명 정도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클럽을 윤활하게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 클럽 회원들과 교류를 해 감정노동의 강도도 세다. 윤 대표는 “트레바리의 업무는 아직 자동화되기 힘들고 감정 소모도 극심하다”며 “그런 것들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는 이 정도 금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사진출처=윤수영 페이스북.
▲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사진출처=윤수영 페이스북.
트레바리에 트레바리(트집을 잡기 좋아하는 사람들)들은 ‘결국 돈 내고 모이는 사교모임 아니냐’는 말을 얹는다. 윤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트레바리에 와서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사람들과 만나서 두세 시간 동안 평소에 하지 않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같다. 그게 설령 이성을 만나러 왔든, 돈이 남아돌아서 왔든 말이다.”

윤 대표는 ‘돈 많은 사람끼리 사교모임이나 한다’는 말이 왜 ‘비판’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뭘 못마땅해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무형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문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한국은 병원에서 약을 가장 많이 처방하는 나라다. 다른 나라에서는 ‘집에 가서 잠을 자고 물도 많이 먹고 운동도 하고, 쉬세요’라고 하면 환자들이 알았다고 하는데 한국은 ‘이빨로 때우네?’ 이런다. 알약이라도 받아가야 속이 시원하다. 무형의 서비스에 제대로 가치를 매기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트레바리에 쏟아진 큰 관심 때문일 수도 있다. 수많은 미디어가 ‘기업을 다니다 독서모임이라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사업에 성공한 젊은이’라는 형식으로 인터뷰 기사를 쏟아냈다. 창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그 관심은 꺼지지 않고 있다.

“특이해서일 거다. 개인적으로는 글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제나 ‘살롱’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로망’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사람을 모아서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고 떠들면서 먹고 산다니, 꿈만 같은 일 같으니까. 특히 미디어 업계 사람이라면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트레바리 북클럽 소개. 사진출처=트레바리 홈페이지.
▲ 트레바리 북클럽 소개. 사진출처=트레바리 홈페이지.
겉으로 보기에는 꿈같은 일처럼 여겨지지만 역시 ‘스타트업’의 특성상 노동 강도는 세다. 윤 대표는 인터뷰 전날도 새벽 4시에나 집에 들어갔다.

“힘들다. 하지만 트레바리를 만들 때부터 업무를 많이 할 것은 각오가 돼 있었다. 각오만큼 졸리고, 일을 많이 한다. 다만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할 때는 마음이 안 좋다.”

노동에 대한 가격을 제대로 매기고 싶다면서 이렇게 혹독하게 일을 하는 모습이 모순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 대표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사를 만들었냐고 물었다. 윤 대표는 “내가 부족하다”는 어쩌면 정석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회사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고객들에게 좋은 회사가 있고, 직원에게 좋은 회사가 있다. 고객에게 좋은 회사는 직원들을 착취하는 회사가 될 수 있고, 직원에게만 좋은 회사는 고객을 우습게 보는 회사가 될 수도 있다. 내 꿈은 고객들에게도 좋고 직원들에게도 좋은 회사였는데,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것 같다. 성적표를 굳이 따지자면 만족스럽지 않다. 이렇게 내가 부족할 줄 몰랐다.”

윤 대표는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트레바리를 이용하는 회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적인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풀타임 개발자를 고용한 것도 좀 더 나은 시스템을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싶어서다.

“지금은 약간 괜찮은 기구들 모아놓고 알아서 운동하라고 하는 헬스장 느낌이다. 헬스장에 있는 PT(Personal Training)가 있으면 덜할 것으로 생각한다. 트레바리가 좀 더 그런 구조를 갖춰나갔으면 한다.”

트레바리가 어떤 회사가 되길 바라냐는 질문에 윤 대표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집단을 언급했다. ‘페이스북’과 ‘교회’.

“결국 트레바리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를 잇는, 커뮤니티 사업이다. 사실 제일 많이 보는 것은 교회 공동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이를 다져나가는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형태로 공동체를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 트레바리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 사진출처= 트레바리 홈페이지
▲ 트레바리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 사진출처= 트레바리 홈페이지
그래도 결국 윤 대표가 원하는 것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트레바리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이 이런 거 하나 했으면 한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책을 읽고,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정리해서 글을 쓰고, 피드백도 들어보는 활동 말이다. 이런 활동의 반복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무언가일 거라고 확신한다.”

(윤수영 대표는 8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미디어오늘 컨퍼런스 ‘플랫폼 레볼루션과 콘텐츠 에볼루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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