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계란에서 나온 살충제 성분을 52개 농장에서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책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은 이전 정부의 이른바 ‘농피아(농업계 마피아)’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농가의 계란 살충제(잔류농약) 사용에 대한 검사 문제를 지적한 기동민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4년 동안 자유한국당 정부에서는 검사 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식약처와 농림축산식품부는 21일 합동으로 ‘살충제 검출 계란 관련 추적조사 및 위해평가 결과 발표’에서 전국 1239개 산란계 농장 전수 검사(15~18일) 및 추가 보완 검사 결과 52개 농장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에 검출된 살충제 성분은 피브로닐(8개 농장), 비펜트린(37개 농장), 플루페녹수론(5개 농장), 에톡사졸(1개 농장), 피리다벤(1개 농장)이었다. 앞서 부적합 판정으로 조사된 49개 농장에서부터 유통된 계란 451만1919개를 압류‧폐기토록 조치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이 가운데 피브로닐에 최대로 오염된 계란을 하루동안 1~2세는 24개, 3~6세는 37개, 성인은 126개까지 먹어도 위해하지 않고, 평생동안 매일 2.6개 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정부는 주장했다. 비펜트린에 최대 오염된 계란의 경우 1~2세는 하루동안 7.5개, 3~6세는 11.7개, 20~64세는 39.5개까지 먹어도 안전하며, 매일 36.8개씩 평생먹어도 안전하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 제주도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의 한 농장창고에서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경기도 산 '08광명농장' 표기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제주도 관계자들이 21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의 한 농장창고에서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경기도 산 '08광명농장' 표기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단기위험성은 적지만, 장기위험성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피브로닐의 경우 하루 2.6개씩 평생 먹는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들었지만, 하루 2.6개라는 개수가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계란을 생산한 농가가 언제부터 살충제를 뿌렸는지에 대해서는 이번 발표내용에 들어있지 않다. 식약처의 담당사무관은 이 같은 독성 살충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산란계의 사육관행과 양계업자의 증언을 고려할 때 이전 정부에서도 사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되레 새 정부에서 임명된 담당 기관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김정재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8일 류영진 식약처장을 두고 “국내산 계란에 대해 ‘모니터링 했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며 국민들을 속이더니, 국회에서는 ‘모니터링 했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거짓 변명을 하기도 했다”며 해임을 촉구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20일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의 59%가 ‘해썹(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HACCP)’ 인증을 받는 등 친환경 인증의 허술함이 밝혀졌다”며 “살충제 계란에 친환경 인증을 해준 민간업체들은 대부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제 원내대변인은 “이전 정부의 관료 출신으로 퇴직 후 관피아들의 회전문 낙하산 인사”라며 “이른바 ‘농피아 적폐’가 주된 요인으로 드러났다. 결국 국민의 식품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이전 정부에 책임인 것”이라고 전임 정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전 정부 탓하는 현 정부가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야당이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해임을 요구하자 (현 정부가) 전(前) 정부 탓으로 화살을 돌리려 한 것”이라며 “식품 정책 문제의 근원을 거슬러 가면 정부 수립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지금 중요한 것은 벌어진 사태의 신속한 수습과 재발 방지다. 그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며 “그걸 모면하겠다고 전 정부 탓을 하니 한심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계란에 잔류농약이 묻어있는지 검사조차 없었다고 비판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은 지난 정권의 책임이 분명히 있으며, 침묵한 언론도 할 말이 없다고 반박했다.

▲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처안전처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오른쪽)과 최성락 식약처 차장이 살충제 검출 계란 유통량 추적조사 및 인체 위해성 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처안전처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오른쪽)과 최성락 식약처 차장이 살충제 검출 계란 유통량 추적조사 및 인체 위해성 평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 의원은 21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책임 공방을 벌이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짜증이 나겠지만, 전임 정권의 잘못은 분명하게 있다”며 “4년 간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식약처에서 근본적인 대책안을 들고 나왔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하지 못하게 한 책임이 있다고 기 의원은 강조했다. 기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다만 우리 정부는 전임 정권 자산과 부채를 다 물려받았으므로 전임 정부가 잘못한 것을 지적은 하되, 더 크게 책임지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겠다고 뭐라고 해도 현 정부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에 놓고 책임있게 수습하라는 주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 정부 탓이 한심하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에 대해 기 의원은 “정치권이 잘한 것 하나도 없지만 여기엔 언론 또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지난해 이 문제에 대해 일부 언론이 보도했을 때도, 국정감사에서 지적했을 때도, 올 4월 소비자단체 지적했을 때도 대다수 언론도 침묵하고 넘어갔다. 누가 누구의 잘못을 탓할 상황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에서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것과 관련해 기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는 아예 검사를 안했다”며 “2012~2016년까지 아예 검사하지 않았다. 농약 잔류가 어떻게 돼 있는지, 기준치 넘었는지 지키고 있는지, 기준치 허용되지 않은 살충제 는 쓰이고 있었는지 안쓰이고 있었는지 아예 검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사용했을 가능성에 대해 기 의원은 “이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양계업자, 유통업자들, 농식품부와 식약처가 모르고 방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 의원은 “다만 국민 식생활 미칠 수 있는 문제가 너무 커보이고 양계업자들의 너무 반발 클 것으로 예상돼 저는 알고도 쉬쉬한 측면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터질 게 터졌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그렇다”고 분석했다.

기 의원은 “우리 방(의원실)에 찾아왔던 양계업자들 입에서도 ‘이런 부분이 농가에서 비일비재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고,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잘 모르고 썼다’고 얘기하는 분도 많다. 또 ‘좀 더 독성이 강한 것으로 써야 살충효과를 볼 수 있다’고 인터뷰한 농민도 있었다”며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이해당사자들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본다”고 전했다.

언제부터 이 같은 살충제를 썼을 것으로 보는지에 대해 기 의원은 “(이렇게 빽빽하게 사육하는) 케이지(cage) 방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대량사육 방식은 꽤 오래된 것”이라며 “그때부터 이미 만성화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런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론한다”고 예상했다.

▲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기동민 블로그
▲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기동민 블로그
이에 대해 식약처 살충제 달걀 긴급대응본부 TF팀 담당 사무관은 21일 전화통화에서 “올 상반기에 유통중인 제품 60건 검사했을 때엔 살충제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그러다 지난 13일 농식품부 농장 관리차원에서 친환경 농장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검출돼 그 때부터 조사에 들어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한 60개 농장은 무작위로 선정했다고 이 사무관은 전했다.

이 사무관은 언제부터 이런 살충제가 사용됐는지에 대해 “계란에서 농약이 나온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유해도와 관련해 기준치를 넘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은 폐기처분하면서도 이미 유통된 해당 계란을 이미 먹었다 해도 유해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사무관은 “관리 기준과 건강 유해도 평가는 조금 다른 부분 있다”며 “얼마나 많이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 제품에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고려해서 정한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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