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온 숙제를 해결할 때가 됐다. 정부는 여야의 격론 끝에 2015년 일몰로 도입한 ‘유료방송 합산규제’ 연장 여부를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합산규제가 취지를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합산규제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반을 구성하고 22일 첫 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연구반은 2018년 6월 일몰예정인 유료방송 시장 합산 33% 점유율 상한의 연장, 철폐, 이전과 다른 비율을 상한선으로 적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 연내 결정할 계획이다. 합산규제는 별도의 시장이던 IPTV, 케이블(SO,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이 경쟁하게 된 상황을 고려해 통합 점유율 규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33% 점유율을 넘긴 사업자는 가입자를 모집할 수 없게 된다.

▲ 유료방송 가입자 현황. 자료=방송통신위원회. (클릭하시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유료방송 가입자 현황. 자료=방송통신위원회. (클릭하시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논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합산규제 도입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어떻게 도입하더라도 역효과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합산규제를 연장하면 유료방송 업계에서 특정 사업자의 독주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 당장 지난해 하반기 기준 IPTV인 올레TV와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의 합산점유율이 30.18%에 달했다. 업계 2, 3위 사업자가 10%대에 머무른 상황에서 KT의 독주를 막을 필요성이 있다.

반면 합산규제가 약자인 사업자가 아닌 또 다른 ‘거대 사업자’를 위한 정책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통신사가 IPTV를 겸영하면서 유료방송시장과 통신시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KT의 가입자 모집을 저지해 발목을 묶어둔 사이 이동통신시장의 1위 사업자인 SK가 ‘핸드폰+집전화+IPTV’ 결합상품 공세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 합산규제 도입 당시 KT는 규제 도입 반대를, SK는 도입 찬성을 주장하며 맞섰고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합산규제를 경쟁 사업자 제압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단, SK가 빠르게 성장했고, 케이블과 인수합병 가능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합산규제가 SK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영구도입이 아닌 ‘기간 연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 2016년 기준 유료방송사업자 점유율 현황. 자료=미래창조과학부.
▲ 2016년 기준 유료방송사업자 점유율 현황. 자료=미래창조과학부.

시장에서 IPTV에 밀리고 있는 케이블업계는 ‘합산규제 영구 도입’을 이전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오고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애로사항이 있다. 합산규제가 연장되더라도 핸드폰 결합상품을 주력으로 내세울 수 없는 케이블은 통신사에 밀릴 수밖에 없다. 지난 합산규제 일몰 도입 이후 케이블업계는 정부가 통신사의 막강한 결합상품을 견제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했지만 효과가 미미한 정책만 나왔다.

유료방송 사업자 간 인수합병 가능성을 고려하면 케이블 업계가 분열할 우려도 있다. 케이블업체인 CJ헬로비전처럼 이미 IPTV와 인수합병을 추진한 회원사도 있고 딜라이브와 마찬가지로 IPTV에 팔리기를 기다리는 사업자도 있다. 팔리고 싶은 사업자 입장에서는 합산규제가 완화되거나 폐지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케이블협회 이해관계와 상충된다.

워낙 논쟁적이다보니 그동안 미적지근한 땜질 처방만 이어졌다. 국회에서 2015년 합산규제를 도입할 때 ‘3년 일몰’로 도입한 건 논쟁을 피하려는 절충안 성격이 강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통부의 전신)가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합산규제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거한 후 “향후 시장상황을 보겠다”며 판단을 유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규제가 가장 적절한지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땜질식 규제 연장이 해답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에도 확고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일몰 연장이 이어지면 몇년 후 다시 같은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합산규제로는 케이블의 침체와 IPTV의 부상이라는 흐름을 막지 못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합산규제만 떼 놓고 볼 게 아니라 결합상품 대책 등 종합적인 유료방송 정책과 맞물려 논의될 필요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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