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입사한 연합뉴스 4기 기자 등 고참 기수 기자들이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후배 기자들의 사장 퇴진 운동에 동참했다. 국장·부장 대우 등 간부급 사원들의 자발적 성명이라는 점에서 ‘박노황 체제’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고참 기자 97명은 21일 성명을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 박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의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경영 행태로 인해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말 못할 고통을 겪었다”며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국립묘지 참배와 국기 게양식 행사는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추락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자 치욕의 시작”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편집총국장제를 비롯해 노사 합의로 운영됐던 편집·보도의 독립성 및 공정성 담보 장치는 일방적으로 폐기됐다”며 “기자들의 임명 동의를 받지 않은 편집국장 대리를 내세워 공영언론이자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를 편법으로 운영해왔다. 그 결과 정권과 재벌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가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또 “최근에는 경영진과 편집국장 직무대행 등이 정권은 물론 재벌 기업 간부에게 아부하는 모습이 드러났다”며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 책임이다. 언론인 양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그래도 남아 있다면 관련 책임자들을 해임하고 경영진은 연합뉴스 정상화를 위해 즉각 물러나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연합뉴스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진 사퇴와 함께 연합뉴스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는 연합뉴스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위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싸우지 못했음을 인정한다”며 “무기력과 침묵, 외면으로 일관한 우리 중견 사원에게도 책임이 적지 않다. ‘우리가 공범자들’임을 자인한다.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는 후배들의 절규를 더는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97명의 중견 사원 성명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 면면을 보면, 박 사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연합뉴스 전 기수로 번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3월 박 사장이 임명된 뒤 면직된 보도 책임자 이병로 전 편집총국장, 회사 명령 위반을 이유 등으로 2015년 해고됐다가 대법원을 통해 복직한 김태식 기자, 2012년 연합뉴스 103일 파업을 주도했던 공병설 전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 등은 물론이거니와 1984년부터 1998년 사이에 입사한 ‘중견 기자’들이 후배들을 대대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박노황 체제’가 보인 보도 불공정성과 노조 탄압 논란에다 최근 ‘장충기 문자’에서 드러난 연합뉴스 간부들의 삼성 유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박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더욱 불어난 모양새다.

지난 17일에도 2011년 입사한 32기 기자 23명과 2015년 입사한 막내 기수(35기) 기자 10명이 “권력에 기대고 금력에 숙이는 경영진 필요없다”, “더는 연합뉴스를 욕보이지 마라”며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했다.

아래는 중견 사원 97명 성명 전문이다. 

[성명]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으로 씁니다.

오랫동안 연합뉴스의 구성원으로 지내오며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난 2년 반 동안 박노황 사장 취임 이후 경영진의 독선적이고 편향적인 경영 행태로 인해 연합뉴스 구성원들은 말 못할 고통을 겪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국립묘지 참배와 국기 게양식 행사는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의 추락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자 치욕의 시작이었습니다. 편집총국장제를 비롯해 노사 합의로 운영돼 온 편집·보도의 독립성 및 공정성 담보 장치는 일방적으로 폐기됐습니다.

기자들의 임명동의를 받지 않은 편집국장 대리를 내세워 공영언론이자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를 편법으로 운영해왔습니다. 그 결과, 정권과 재벌에 유리한 내용의 기사가 적지 않았습니다. 바른말을 하거나 공정보도를 주장하는 기자와 사원들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안에 공포가 지배했습니다. 분노와 무기력을 떨치고 공영언론사 기자와 종사자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저항과 노력이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장벽을 제대로 넘지 못했습니다.

▲ 2010년 입사한 연합뉴스 31기 16명은 박노황 사장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타이포그래프로 제작했다. 사진=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 2010년 입사한 연합뉴스 31기 16명은 박노황 사장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타이포그래프로 제작했다. 사진=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급기야 최근에는 경영진과 편집국장 직무대행 등이 정권은 물론 재벌기업 간부에게 아부하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할 말을 잃게 됐습니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라는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노황 사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언론인의 양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그래도 남아 있다면, 관련 책임자들을 해임하고 경영진은 연합뉴스 정상화를 위해 즉각 물러나길 촉구합니다.

연합뉴스의 공공성과 독립성 보장을 책임져야 하는 뉴스통신진흥회의 책임 역시 막중합니다. 현 경영진을 선임하고, 그동안 이들의 편향된 경영을 방관하고 두둔해온 진흥회 이사진도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즉시 사퇴해야 합니다. 이는 공영언론사 연합뉴스를 바로 세우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임무를 다하게 하기 위한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잘못된 소유·지배구조의 방치도 사태의 중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지난 시절 자행된 외부의 부당한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막고 권력과 금력에서 독립적으로 국민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혁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합뉴스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위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싸우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무기력과 침묵, 외면으로 일관한 우리 중견 사원에게도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공범자들’임을 자인합니다.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는 후배들의 절규를 더는 외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후배들과 함께 연합뉴스를 바로 세우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2017년 8월 21일

강진욱, 강창구, 경수현, 고웅석, 고형규, 공병설, 권영석, 권혁창, 권   훈, 김경태, 김권용, 김길원, 김덕현, 김병만, 김선한, 김순규, 김영만, 김용윤, 김인유, 김장국, 김정렬, 김정선, 김정섭, 김재선, 김재현, 김종우, 김지훈, 김진형, 김태식, 김호천, 남광식, 남상현, 류성무, 류일형, 문관현, 박병기, 박재천, 박성우, 박성제, 배연호, 배재만, 서한기, 손대성, 심규석, 심인성, 여운창, 오정훈, 우영식, 유의주, 유창엽, 이강원, 이경욱, 이동칠, 이병로, 이봉준, 이상학(강원), 이승형, 이우성, 이유, 이은중, 이재현, 이정훈(한민족), 이정훈(경남), 이종건, 이주영, 이진욱, 이창호, 이해용, 이희열, 이희용, 임보연, 임채영, 임   청, 임형두, 장성구, 장용훈, 장윤주, 전성옥, 전수영, 전승현, 전준상, 전창해, 정광훈, 정   열, 정윤덕, 정일용, 정형규, 최병국, 최수호, 최영수, 최찬흥, 최태용, 최현주, 한승호, 홍인철, 황광모, 황봉규/ 연명자 총 97명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