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제탑’이라 불렸던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차장)이 받았던 문자에는 언론계의 노골적인 청탁과 공조 정황이 담겨있었다. 그들은 ‘언론인’이란 외투를 쓴 ‘삼성맨’이었고, 삼성이 지금껏 저지른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이었다. 하지만 문자로 드러난 공범자들은 조금 억울할지 모른다. 장충기 문자로는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삼성맨들’ 때문이다.

2008년 ‘이건희 전 회장의 눈물’이란 칼럼을 썼던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 ‘이건희 회장의 눈물’이란 칼럼을 썼던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는 훗날 국무총리가 될 뻔했다. 삼성의 안락한 관리를 받고 있는 삼성장학생들은 지면과 화면 도처에 깔려 지금도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 삼성 깃발. ⓒ연합뉴스
▲ 삼성 깃발. ⓒ연합뉴스
예컨대 김세형 매일경제 논설고문은 “이재용 구속재판은 위헌적이다”라고 주장했고 “이재용 부회장 위치의 인물을 저렇게 쉽게 구속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김앤장 변호사의 발언을 강조했다. 한예경 매일경제 증권부 차장은 “포승줄에 수갑까지 채워진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은 주주들의 머릿속에 부도덕한 기업의 주가 그래프를 그려 넣었다”며 “특검은 삼성의 브랜드까지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은 머니투데이 산업1부 기자는 이재용 재판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라는 익명의 법조계 관계자 말을 첫머리로 강조하는가하면 “정황만 있고 증거 부족한 세기의 재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손현덕 매일경제 부국장 겸 산업부장은 “삼성 같은 기업을 10개 이상 만들자던 정치가 이제 기업의 1등주의를 탐욕으로 부정한다”고 주장했고, “대기업의 벤처 인수 반대는 국민정서로 포장된 얼치기 논리”라고 주장했다. (손현덕 부국장은 편집국장과 논설실장을 거쳤고, 훗날 장충기 문자에 등장한다.)

▲ 2017년 2월22일자.
▲ 2017년 2월22일자.
▲ 2012년 4월12일자.
▲ 2012년 4월12일자.
▲ 2016년 10월19일자.
▲ 2016년 10월19일자.
▲ 2013년 8월29일자.
▲ 2013년 8월29일자.
▲ 2017년 2월21일자.
▲ 2017년 2월21일자.
▲ 2017년 6월20일자.
▲ 2017년 6월20일자.
▲ 2017년 5월1일자.
▲ 2017년 5월1일자.
김정호 한국경제 수석논설위원은 이재용 구속 당시 ‘질투의 악법이 이 지경을 만들었다’는 칼럼에서 “기업을 처분해야 납부 가능한 고율 상속세는 인간 본성 부정하는 파괴 행위”라고 주장하며 “기업 상속을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가는 한 한국에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 박근혜를 만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국민연금의 찬성을 부정한 방법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상속세라는 식의 궤변이다.

이학영 한국경제 논설실장은 “틈만 보이면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려는 정치권력과 시민단체 권력은 그 자체로 기업들의 헤저드(위험요소)”라고 주장했다. 이만우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은 “시민단체의 삼성 비난을 접하고 주식을 처분했던 투자자는 땅을 치는데 시민단체 간부들은 정치권에서 부상하고 대학에서도 모금 능력을 자랑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 재벌권력의 관점과 일치한다.

이재용 1심 판결을 앞두고 여론전도 활발하다. 2013년 제17회 삼성언론상 논평비평상을 받은 이철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우울한 세계 1위 삼성전자’란 칼럼에서 “특검이 무리하게 구속기소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지난 10년간 과감한 결단으로 세계 1위로 우뚝 올라섰지만 총수 부재의 위기 속에 5~10년 뒤가 두려운 분위기”라고 주장했다. 박종면 머니투데이 대표는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일이 다가올수록 괴담이 떠돌아다닐 것”이라며 “그중에는 출세욕에 불타는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이 결국 정치적 판결을 내릴 것이란 내용도 있다”로 주장했다.

오동희 머니투데이 산업1부장은 ‘이길 수 없는 여론법정에 선 이재용’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여론법정이 득세하면 마녀사냥은 중세보다도 더 횡행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위험지수는 더 높아질 것”이라 주장했다. 이재용 재판을 ‘마녀사냥’에 비유한 셈이다. 박준식 머니투데이 산업1부 차장은 “이재용만 잡으면 된다던 특검이 12년형을 구형했다. 유아 성폭행범 조두순이 받은 형량”이라고 주장했다. 형량과 구형은 다르지만, 아예 이재용을 흉악범과 비교하는 식으로 이 재판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묘사한 대목이다.

▲ 2015년 7월13일자.
▲ 2015년 7월13일자.
▲ 2016년 12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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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1일자.
▲ 2017년 5월1일자.
▲ 2015년 6월29일자.
▲ 2015년 6월29일자.
▲ 2017년 2월20일자.
▲ 2017년 2월20일자.
▲ 2017년 7월24일자.
▲ 2017년 7월24일자.
▲ 2017년 4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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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8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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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7월18일자.
▲ 2017년 7월18일자.
▲ 2011년 7월12일자.
▲ 2011년 7월12일자.
▲ 2017년 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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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16일자.
▲ 2012년 11월16일자.
▲ 2017년 2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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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20일자.
▲ 2012년 2월20일자.
▲ 2008년 7월11일자.
▲ 2008년 7월11일자.
▲ 2017년 7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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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18일자.
▲ 2012년 4월18일자.

삼성장학생들의 활약은 전 방위적이었다. 조진래 헤럴드경제 산업부장은 “기업은 일류로 뛰려는데 이류, 삼류 규제를 들이대며 족쇄를 채워서야 되겠는가”라며 대기업 순환출자를 정당화했다. 조형래 조선일보 산업2부장은 “삼성이 투자 대신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서둘렀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사태는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 삼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임정효 파이낸셜뉴스 산업부장 겸 부국장은 “정치권은 전쟁터 맨 앞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고 난리다”라며 “정치권이 이제 현실감 없는 한가한 소리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한심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메르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이재용 구속, 이재용 재판 등 삼성의 고비마다 삼성장학생들은 언론이란 외피를 쓴 채 삼성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여기 언급된 기명칼럼은 빙산의 일각이다. 기명칼럼을 썼던 이들 중 누군가는 삼성 간부에게 청탁을 하고 대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장충기 문자에 등장하는 이들만 비판해선 안 된다. ‘공범자들’을 더 찾아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충기 문자가 추가로 공개될까, 거기 내 이름이 있을까 노심초사할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말의 부끄러움이 남아있다면 속히 언론계를 떠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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