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와 영국인 판사
1922년 3월 18일, 간디는 영국제국에 맞서 비협조운동을 선동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간디는 유죄를 인정한다면서 브룸필드 판사에게 인도에 적용하고 있는 영국의 법 체제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법정최고형을 내려달라고 말한다. 브룸필드는 간디에게 자신이 재판한 어떤 사람과도 다른 범주의 사람이라며, 징역 6년을 선고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감형이 된다면, 자신보다 더 기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간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위대한 간디도 간디지만 영국 판사인 브룸필드가 기억에 남았다.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적인 판사. 제국이지만 여러 왕의 목을 치면서 쟁취한 시민주권과 제대로 된 시스템의 무게를 느꼈다.
친일과 부역자,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광복절이다. 1945년부터 72년이 흘렀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친일파의 후손과 부역자의 자식들이 대를 이어 영화를 누리고 있다. 그 추악한 부를 유지하고자 하는 악의 고리는 끈끈하다. 새로운 부역자들이 그들의 세계에 끼어들기 위해 아부하고 있다. 더러운 민낯이 공개되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광복 후 72년을 버텨왔듯이 또 버텨낼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의 연대는 뿌리가 깊다. 국가정보원의 댓글부대가 3천5백 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삼성 미래전략실의 장충기에게 보낸 낯 뜨거운 구걸의 문자가 드러나도, MBC 카메라기자들에게 등급을 매긴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도, 그들은 아직 뻔뻔하다. 문재인 정부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만든 작품이다.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기를 원한다. 작업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위태롭다. 친일과 부역의 뿌리는 깊고 그 단물을 빨아먹던 자들이 아직 권력기관의 요직에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빠르게 문재인 지지로 돌아선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청산해야 할 처세의 달인들이 현 정부의 지지자로 경력세탁을 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감투와 완장 앞에서 철면피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내부의 적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적도 적폐다.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으면서 10년 넘게 사과 한마디 없다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하겠다고 나섰던 박기영을 보자. 촛불 시민들의 반발로 사퇴하지 않았더라면 큰 문제가 될 인사였다.
언론이 먼저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친일에서 친러, 친미로 변신하며 평생을 잘 산다. 부역자의 초상이다. 1992년 12월 김기춘은 부산 ‘초원복국’에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한다. 14대 대통령 선거 일주일 전이었고 김기춘은 법무부장관이었다. 패거리 권력의 표상이다. 이런 부패하고 천박한 자들이 국정원, 사법부, 검찰, 경찰, 군대, 언론, 국회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휘둘렀다. 권력과 재벌, 언론이 모두 협잡꾼이었다.
그들의 짬짜미가 정치행위, 처세술, 인맥관리 따위의 말로 가려지면서 72년이 흘렀다. 친일부역자가 아직도 국립묘지에 묻혀있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전두환은 뻔뻔하게 회고록을 썼다. 청산의 길은 멀다. 청산해야 할 적폐의 습관이 사회 전반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벌, 언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엮여있는 악의 사슬을 끊어야 하는데 어렵다, ‘우리가 남이가’가 아니라 ‘우리는 남이다’란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직업을 직업답게 하고자 하는 자존심이 문화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