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오는 25일 1심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2008년 삼성 특검은 ‘봐주기 수사’, 1·2·3심 선고는 ‘면죄부 판결’이란 평가를 받아온 점에 비춰, 이 사건 선고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개월 간 공판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 본 미디어오늘은 유·무죄 판결만큼 이 재판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미디어오늘은 삼성 1심 재판이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을 선고 전까지 연속기획으로 다룬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죄송합니다. 황상기 아버님. 지난 7월26일 이재용 공판 당시 법정 출입구에서 봤습니다. 반올림 활동가로서 삼성 사장단에게 항의했을 때, 그것을 취재하고 알리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걸 사진 찍어서 알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난 7월28일 한 블로그에 “나의 고백, 삼성과 반도체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한 주간지 산업부 박아무개 기자가 쓴 글이었다. 박 기자는 해당 글에서 “이재용 공판에서 삼성 입장에서 (기사를) 써주는 일을 할지도 모른다”며 “죽기보다 싫다”고도 썼다.

이튿날 박 기자는 편집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편집국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박 기자를 달랬다. 부서를 옮겨주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박 기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며 “그래서 더 문제다. 선한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삼성을 옹호하는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 뇌물 제공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 소리
▲ 뇌물 제공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 소리

박 기자는 7월 중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피고인 5인의 삼성 뇌물혐의 사건 공판을 지켜봤다. 그는 “공판 분위기가 특검에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우리 매체에서는 ‘특검에게 아무 증거도 없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이 부회장 변호인단에 항의하는 모습은 기사로 쓸 수 없었다. 기사가 되려면 “반올림이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는 식으로 써야했다. 박 기자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충무로 인근 카페에서 박 기자를 만났다. 아래는 박 기자와의 일문일답.

-언제부터 삼성 재판 취재를 시작했나. 재판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뭔가.

“7월 중순부터 재판에 들어갔다. 취재를 하기 전에 ‘이재용 부회장이 유리하다’ ‘특검이 그동안 헛발질 했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실제 재판에서 보니 그렇지 않았다. 특검이 아무것도 없이 무리하게 기소한 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그렇지 않았다는 건지 자세히 이야기 해달라.

“돈 받은 사람과 준 사람이 다 부인하는 상황에서, 뇌물죄는 정황증거로 판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캐비닛 문건 작성자로 지목되는 이영상(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 증인으로 나왔을 때다. 우병우가 이영상에게 삼성 승계문제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러면 청와대 윗선의 입김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자리에서 배석판사도 ‘청와대가 특정 기업 승계문제만 지시내릴 때 이상한 점을 안 느꼈냐’고 물었다. 분위기가 특검에게 불리하지 않았다.”

-그럼 그 날 기사는 어떻게 나갔나?

“결국 스모킹건은 없었다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다. 이영상 캐비닛 문건은 ‘막판 뒤집기를 노렸지만 허사로 끝났다’는 식으로 보도됐다. 물론 내가 쓴 기사는 아니다. 나는 이날 워딩을 쳐서 선배에게 넘겼고 선배가 쓴 기사다. 하지만 직접 재판을 본 입장에서라면 적어도 ‘법정 공방 팽팽’ 이런 식으로 보도됐어야 했다.”

-전반적인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산업부의 경우 법원 출입으로 등록이 돼있지 않으니 공판 취재가 쉽지 않았을텐데 힘들었을 것 같다.

“7월 중순만해도 오전 7시30분에 법원에 가서 기다리면 법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8월7일 결심 공판이 다가올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새벽 5시에 가기도 하고, 심지어 전날 가서 기다리는 기자들도 있었다. 주로 박사모로 추정되는 분들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주로 선배와 둘이서 기다렸는데 둘 다 들어가는 날도 있고 저만 들어가는 날도 있다. 저만 들어가게 되면 제가 워딩을 쳐서 선배에게 보냈고 선배가 기사를 썼다.”

-법정에서 삼성 관계자들과 접촉이 많았을텐데 어떤 관계였나.

“거의 매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냥 가려고 해도 좋은 말로 붙잡는다. 삼성 홍보팀에서 3~4명 정도 재판에 온다. 삼성 관계자들도 재판에 들어가서 봐야하는데, 한번은 관계자가 자기 대신 다른 기자 2명을 들어가게 해줬다. 그렇게 들어간 기자들이 어떻게 삼성에게 불리한 기사를 쓸 수 있겠나. 또 한번은 ‘저희가 기자님들 기사 쓰기 편하게 워딩을 드리고 싶은데 못 드린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기자들을 관리하는 것 같다.”

-기사 '야마(주제)'에 대한 이야기나 기사 방향을 잡아준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밥이나 커피를 마시면서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 주로 사적인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친분을 쌓는다. 삼성 홍보팀 관계자들과 장난을 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기자들도 많다. 매일 보니까. 그런데 삼성 관계자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특검이 무리하게 기소를 했고 실제 가진 것은 없다는 거다. 친하게 지내다보면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기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우리 회사 이야기를 해보겠다. 제가 재판에 투입되기 전에 삼성 측 사람들과 우리 회사 부장, 편집국장이 만났다. 삼성 측에서 특검 비판을 엄청 했다. 그러면 우리 부장도 맞장구를 쳤다.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요지의 대화가 오갔다. 그러다가 삼성에서 상무가 왔는데 편집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저자세로 행동을 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삼성 관계자들이 없을 때도 기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곤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재판을 기다리면서 다른 매체 기자가 우리한테 장난으로 그랬다. ‘거기 완전 이재용 대변지던데?’ 장난을 쳤지만 장난이 아니다. 그런 문제의식은 있는 거다. 그래서 그 장난을 친 기자 기사를 찾아봤다. 그런데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용을 풀어주고 장충기를 넣자’ 이런 논조의 기사였다. 기자 개개인이 문제의식을 가져도 결국 기사는 그렇게 나간다.”

▲ 법원 출입증이 없는 '비법조' 기자들은 재판 방청을 하기 위해 당일 오전 6시부터 법원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진은 결심공판 방청권을 얻기 위해 공판 하루 전인 8월3일 밤부터 법원 정문에서 대기하는 모습. 사진=반올림 제공
▲ 법원 출입증이 없는 '비법조' 기자들은 재판 방청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법원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진은 결심공판 방청권을 얻기 위해 공판 하루 전인 8월3일 밤부터 법원 정문에서 대기하는 모습. 사진=반올림 제공

-이재용 재판 관련해서 회사에서 지시가 내려온 건 없었나.

“있었다. 우리 회사 선배들과 삼성 관계자들이 만났던 자리에서다. 삼성 관계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자리에서 편집국장이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재판 끝날 때 까지는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 기사를 써주자.’ 그때 왜 내가 재판에 파견됐는지 알게 됐다. 일종의 방문판매 사원이었던 거다. 유리한 기사를 써주고 돈을 벌기 위한.”

-이후에도 회사에서 기사에 대한 압박이나 지시가 있었나?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그 이후에 데스크나 편집국장 선에서 내려온 지시는 없었다. 다만 박사모나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관련해서는 기사가 채색되고 아예 일부분이 삭제되기도 했다. 종종 재판 스케치 기사를 썼는데 박사모로 추정되는 분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좀 썼다. 제가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회사에서 박사모를 나쁜 방향으로 묘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들었다. 선배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박사모로 추정되는 분들을 박사모가 아니라 최대한 일반 시민으로 그리라는 것이다.”

-반올림 기사 관련해서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장충기 이 개XX야' 라고 욕을 했다. 거기에 박사모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다시 욕을 했다. 차마 반올림만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다 썼다. 본대로 썼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 박사모는 일반 시민으로 치환하고 반올림이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는 식으로 기사가 수정됐다. 다행히 그 기사는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먼저 황상기씨가 왜 욕을 했는지를 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딸이 죽었는데 그럴 만한 상황이지 않나. 하지만 그런 것들은 기사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반올림이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이건 잘못됐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다. ‘삼성이 반올림을 참 싫어한다. 질색한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에 그런 글을 썼던 건가.

“개인 공간에라도 내 부끄러움을 기록하지 않으면 힘들 것 같았다. 특히 반올림에 대한 박사모의 반응은 마치 ‘세월호 폭식투쟁’을 보는 것 같았다. 피해가족인 김시녀씨가 우는 것도 봤다. 하지만 거기 있던 기자들 대부분이 취재하지 않았다. 그 속에 나도 있었다. 부끄러웠다.”

-블로그에 글을 쓴 이후에 회사와 주변 반응은 어땠나.

“블로그에 글을 쓴 다음날 밤에 편집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글을 봤다고 했다. 화를 내거나 압박을 하거나 욕도 전혀 없었다. 국장도 이게 잘못된 걸 안다고 했다. 누가 이걸 떳떳하다고 하겠냐는 말도 했다. 다만 왜 그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냐고 했다. 이후에도 부정적인 일은 없었다. 오히려 끝까지 같이 일하자고 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더 문제다. 정말 선해보이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삼성을 옹호하는 기사를 쓴다. 피해를 본 사람이 명백한데도 그렇게 기사를 쓴다면 범죄다.”

-결국 퇴사했다고 들었다.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보통 기사 야마를 정하고 취재에 들어간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보면 야마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애초 생각했던 야마를 고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삼성 문제는 이미 답이 정해져있었다. 재판 내용을 그대로 실을 수 없었다. 재판 내용이 그대로 나가면 삼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보고 들은대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재용 재판을 취재하면서 왜 소규모 경제지들이 기자 한두 명씩을 재판에 파견하는지 알게됐다. 사실 경제지들은 업계 현안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 굳이 한 재판에 기자들을 여러명 파견시킬 필요가 없다. 게다가 재판에서는 이재용에 불리한 내용도 나온다. 그럼에도 파견시키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유리한 기사를 써서 돈을 벌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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