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MBC 보도국 기자 81명의 제작중단으로 표면화된 MBC 정상화 투쟁에 MBC경영진이 ‘결사 항전’ 태세로 응수하고 있다. 경영진은 기자·PD 등 200여명의 제작 중단에 대규모 경력직 채용 공고로 맞서며 최후의 인사권을 휘두르고 있다. 사내 간부들은 이념 무장으로 권력 누수 차단에 나서고 있지만 균열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연이은 보직자들의 사퇴는 김장겸 사장 체제의 권력 누수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 10일 이동애 MBC 보도국 국제부장이 발령되자마자 제작 중단에 동참해 하루 만에 다시 인사가 났고, 12일엔 최혁재 취재센터장이 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보도국 밖에선 민운기 콘텐츠제작2부장, 장형원 시사제작3부장, 김형윤 시사제작4부장 등이 보직에서 물러났다. 저항하는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 지난 8월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보도국 소속 기자들의 제작중단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중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MBC 대형 스크린에서 생중계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8월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보도국 소속 기자들의 제작중단 선언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중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가 MBC 대형 스크린에서 생중계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한 조합원은 “최근 한 간부가 내게 와서 어깨동무를 하더니 ‘잘 지내보자’고 했다”며 “시류가 바뀌고 있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정권에서 사측에 섰던 간부들의 ‘전향’ 움직임이 내부에서 적지 않게 감지되고 있다는 것.

오정환 MBC보도본부장이 지난 13일 보도국 간부들에게 전했다는 메시지에는 현재 MBC 핵심 간부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오 본부장은 “누구는 다음 주 중반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9월 초에 총파업을 하면 국회에서 이를 문제 삼고 방통위에서 방문진(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약칭) 이사들을 모두 해임하려는 게 정부·여당의 음모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하면서 “이 정권의 언론 지배를 야당들이 남의 일 보듯 수수방관할지, 방문진 이사들이 법적 구제 절차를 밟지 않고 조용히 해임될지는 모르겠다”고 밝힌 뒤 “지금의 경영진은 끌려 나가 짓밟히더라도 생물학적인 생명만 붙어 있으면 부정한 저들에 맞설 것”이라고 기강을 다잡았다.

자유한국당은 MBC 경영진의 뒷배를 자처하고 나섰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14일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유일하게 MBC밖에 없다”며 MBC 경영진을 두둔했다. 앞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공영방송 사장이 공적 책임과 공정성을 지키지 않는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김 사장에 대한 해임 가능성을 시사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특위 위원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를 ‘조폭’에, 김 사장을 ‘철거민’에 비유하며 이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도 12일 “문재인 정부와 MBC 노조의 MBC 경영진 쫓아내기가 노골화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는 ‘언론 점령군’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MBC 경영진에 대한 안팎의 여론은 싸늘하다. 보수 정권의 언론장악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경영진을 비호하고, 문재인 정부를 “좌파 권력의 광포함”이라고 비난한 오 본부장의 발언이 여러 매체에 기사화되면서 MBC 언론인의 투쟁에 냉소적이었던 일부 여론마저 방송 정상화 투쟁을 지지하는 모양새다. 보수 야당이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영화 ‘공범자들’은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이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감독이 김장겸 MBC 사장(왼쪽)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 영화 ‘공범자들’은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이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최 감독이 김장겸 MBC 사장(왼쪽)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 사진=뉴스타파
아울러 김 사장을 포함해 전·현직 MBC 경영진이 제기한 영화 ‘공범자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공범자들’은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이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서울중앙지법은 14일 “MBC 전·현직 임원들은 (최 감독의) 비판과 의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할 지위가 있는데도 그런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명예권이 침해됐다고만 주장하고 있다”며 MBC 경영진의 주장을 일축했다. 오는 17일 공범자들이 개봉하게 되면 김 사장 퇴진 여론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사내 구성원들도 큰 싸움을 준비 중이다. 제작 중단 사태는 16개 지역MBC 기자들로 확산됐다. 16일에는 MBC 보도국 바깥의 기자들이 업무 중단을 두고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8월 말쯤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의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 공개 및 이어질 고발 조치도 향후 김 사장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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