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섹시한 여자가 없다’ ‘가슴만 만져도 리스펙(respect·존경)’ ‘가슴 보려고 목 빼고 있다가 걸린 것 같다’ ‘아무개, 성감대 많음’

최근 국회를 출입하는 남성 기자 4명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에서 동료 여성 기자들을 대상으로 나눴던 대화 내용 중 공개된 일부다.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후 국회 출입 기자들 사이에선 이번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드러나서 문제가 된 것이지, 이와 비슷한 일은 국회 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톡방 남기자 4명은 단지 ‘재수가 없어서 공론화된 것뿐’이라는 말이다. [관련기사 : ‘단톡방 성희롱’ 세계일보‧머니투데이‧파이낸셜뉴스‧아이뉴스24]

사실 국회에서 성희롱 등 성폭력 사건은 출입기자들이 입소문이든 ‘지라시’ 형태든 빈번하게 접하는 일이다. 출입처 특성상 국회의원부터 보좌진, 당직자, 동료 기자 등 워낙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있고 정당·매체별 기자단, 꾸미(소모임)방 등 공적·사적 모임도 활성화돼 있어서 비밀이 유지되기가 어렵다.

▲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 피해자가 YTN PLUS에 제보한 내용을 각색해 만든 기자들 단톡방. 디자인=이우림 기자.
▲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 피해자가 YTN PLUS에 제보한 내용을 각색해 만든 기자들 단톡방. 디자인=이우림 기자.
‘단톡방’ 사건처럼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만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국회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실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34명(남기자 8명 포함) 중 ‘국회의원’으로부터 성희롱 등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대답이 15명(7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많았던 성폭력 가해자는 중복 응답까지 감안하더라도 ‘동료 기자’(12명)였는데 항목은 나뉘었지만 ‘상사’(8명)와 ‘후배’(1명) 가해자까지 합하면 기자들 사이에서 성폭력을 경험하는 비율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국회의원 보좌진(보좌관·비서관)이 성폭력 가해자였다고 지목한 사람도 9명이나 됐다. 기타 응답으로는 국회 ‘원외 인사’와 ‘정당 관계자’, ‘타사 선배’, ‘기타 취재원’ 등이 있었다.

강제 성관계 시도, 성적 부위 노출해도 공식사과·징계 ‘0건’

응답한 기자 약 2명 중 1명은 국회를 출입하면서 ‘성을 비하하는 기분 나쁜 말이나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15명)고 답했다. ‘상대방이 성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음담패설, 성적인 몸짓 등을 해 불쾌하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 ‘나의 외모·옷차림·몸매 등을 평가해 나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기자도 각각 13명(38.2%)이나 됐다.

다음으로 잦았던 성폭력 경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거나, 가슴·엉덩이·다리 등 신체부위를 쳐다보거나, 추파를 보내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거나 불쾌했던 적’(29.4%)이었다. 이어 많았던 응답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내 몸에 신체적 접촉을 했거나 접촉하려고 하여 성적 모욕감을 느끼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17.6%).

△상대방이 성적 서비스를 요구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해 불쾌했던 적이 있다[안마나 애무 요구, 회식 자리 등에서 블루스, 술 따르기, 남성 옆에 앉기 요구 등] (14.7%).

△나는 원하지 않는데 상대방은 내 의사를 무시하고 만나자고 계속해서 요구한 적이 있다(14.7%).

△상대방이 성차별적이거나 음란한 글·이미지·동영상 등을 업무공간에 전시하거나, 내게 보내거나, 음란전화를 해 불쾌하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8.8%).

△커피 접대, 심부름 등을 시키면서 그런 일은 여성이 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해 성적으로 불쾌하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8.8%).

△자신이 나와 사귈 것이라거나, 내가 다른 사람과 사귄다거나, 나에 대한 성적 추문을 퍼뜨려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거나 불쾌했던 적이 있다(8.8%).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구성·그래픽=강성원·이우림 기자.
보다 노골적이거나 성추행·성폭행에 가까운 경험을 한 응답도 소수지만 있었다.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회식·접대 등에 억지로 참석하였거나, 참석할 것을 강요당한 적이 있다(여성 도우미와 동석, 음란한 공연, 음란영상이 나오는 장소에서의 회식 등)’과 ‘나는 원하지 않는데 은밀한 장소(집·모텔 등)로 유혹하려 해(또는 귀가하지 못하게 해) 성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각각 2명이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억지로 성관계를 하였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와 ‘상대방이 성적 신체부위를 고의로 노출하거나 스스로 만져서 불쾌하거나 당황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1명 있었지만, 가해자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부서·근무지 이동, 징계 등을 받았다는 응답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외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낀 경험을 서술한 한 응답자는 “남자 취재원과 남기자들만 있는 술자리에 선배 콜로 불려갔는데 도착하니 모두 만취해 있었고 내가 막내였다”며 “그 자리에서 여기자의 외모에 대한 칭찬과 험담이 오갔다. 술도 따르고 ‘꽃순이’ 역할을 한 것 같아 불쾌했다”고 답했다.

“잘못 지적해봐야 가해자 징계는커녕 문제없이 나만 힘들었다”

이 같은 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문제제기 했을 때 ‘아무 변화가 없었다’(64.3%)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점도 국회에서 빈번한 성폭력이 왜 공론화되지 못하는지 보여준다. ‘가해자가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는 응답자도 7명에 불과했다.

지난달 21일엔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기자 2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른 의원을 향해 “싱글이라더니 왜 양쪽으로 따블(더블)이냐”고 말해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 역시 윤 의원이 성희롱 표현이 아니었다고 부인하며 사과하지 않다가 국회 반장들이 찾아가 항의하자 피해 여기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 민주당 윤후덕 의원, 여기자들에게 성희롱 발언 논란]

지난달 21일 SBS 8뉴스 갈무리.
지난달 21일 SBS 8뉴스 갈무리.
성폭력을 경험한 많은(85.7%) 기자들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는 잘못을 지적하거나 문제제기할 경우 취재원과 관계가 서먹해지거나(55.6%), 분위기를 깰까 봐(50%),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38.9%) 등이었다.

응답자들은 “발언·행동의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며 “대부분은 사과하지 않았고 사과를 하더라도 불이익이 우려돼 억지로 한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 응답자는 “이후에 상대방을 피하고 힘들어한 것은 오히려 나였고 상대방의 생활에는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술회했다.

국회 출입 기자들이 성폭력 위험 노출에 취약한 이유는 국회에서 취재원을 만나 고급 정보를 취득하는 상당수가 저녁 술자리이거나 사적 모임이기 때문이다. 과거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여기자들을 상대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가 사과했던 사건도 당 외부 행사 저녁 술자리에서 발생한 일이다. [관련기사 : [단독] 김무성, 새누리 연찬회에서 여기자 신체접촉 등 추태]

“저녁 술자리·사적 모임 많아 성폭력 빈번, 기자들 야동 돌려보기도”

한 일간지 기자는 “이번 단톡방 사건 말고도 예전에도 야동 스트리밍 링크를 공유한 카톡방이 있다는 등 들은 게 많다”며 “국회는 공식 전화 인터뷰보다 사석 취재가 주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 다수 남자가 집단화돼 있으며 사적 교류나 스킨십이 많아야 취재 정보가 늘어나는 특성이 있어 다른 부서에 비해 술자리 취재가 잦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기자는 “국회 특성상 취재원과 관계가 한번 틀어지면 국회의원의 경우 보좌진까지 다 인맥으로 얽혀 있어서 불편해진다고 생각해 별거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 같다”며 “반면 동료 기자들이 많고 대인관계도 워낙 활발한 곳이어서 문제제기한다면 오히려 여론 조성하기에는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재발 방지와 또 다른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선 기자들도 더욱 적극적인 문제 공론화와 후속 조치 요구 등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자는 “가해자인 취재원 문제가 일차적이지만 언론사에서도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당사자가 언론사에 찾아와서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공식 문제제기하지 않았다”며 “국회의원은 특히 해외 순방 등 외국에 나가면 마음이 해이해지고 저녁에 같이 술을 먹다 보니 그런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은데 임기도 4년이고 동료 의원들이 징계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민주당 의원에게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서도 지난 3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징계안을 논의했지만, 징계심사소위원회·자문위원회로 넘어간 후 아직 징계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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