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차를 맞는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수많은 개혁과제들을 꺼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정부 조직을 마무리하며 국정 운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사회 개혁 과제들부터 우선순위로 내걸고 빠르게 해결해갔다. ‘촛불 민심’을 기반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임기 초반부터 과거 정부의 적폐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가는 전략을 구사했다.

과거 정부 시절 외면 받았던 사회 곳곳의 약자들이 주목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하며 포옹했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를 청와대에서 만나 일일이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공식 사과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순직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을 지시한 이후 직접 유가족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독립유공자 및 유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를 청와대로 초청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공약 실천에도 공을 들였다. 취임 나흘 째 되는 날 직접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했던 것도,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 시절의 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정부는 탈원전을 기조에 둔 에너지 정책을 펼쳐가기 위해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지와 관련,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심의 민주주의’ 실험에도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에는 ‘탈권위’라는 평가도 따라다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주요 기업인들과 넥타이 없는 셔츠 차림으로 생맥주 간담회를 열었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나누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과거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문 대통령 행보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100일 간의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어두운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처럼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 때문에 논란이 불거진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황우석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처럼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의문을 자아낸 경우도 있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역시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낙마했다. 이외에도 일부 후보자의 경우 부적절 논란이 제기됐지만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지지율에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100일 이후’ 문재인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까. 직접 나서 개혁과제를 이끌었던 임기 초반과 달리 이젠 입법을 통한 개혁 실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때부터는 야당이 개혁과제 입법을 가로막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당장 오는 9월 정기국회부터 문재인 정부 중점과제 입법을 둘러싼 여야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경색된 한반도 주변 상황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보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출범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지난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의 행태는 일방적으로 국민한테 보여지기 식의 ‘쇼통’이었다. 나오는 정책들은 국민들과 소통이 된 정책들이 아닌, 졸속이거나 급격하거나 포퓰리즘 정책”이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역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100일에 대해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탈원전 정책, 건강보험 적용대상 확대, 복지 확대도 당연히 찬성”이라면서도 “복지확대를 위한 세금 폭탄, 건강보험료 인상, 자영업 및 영세 중소기업의 연쇄적인 어려움, 노동계갈등이 불보듯 뻔하다. 점점 코드 인사로 망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정부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국회에서는 협치, 국민과는 소통,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향후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회 내 다당제 구조 하에서 협치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120석의 의석수만으로 개혁입법을 밀어붙이기에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미세하게나마 낮아지고 있는 것도 협치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리얼미터가 월 단위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평가를 집계한 결과 △5월 82% (6564명 ±1.2%p) △6월 76%(9607명 ±1.0%p) △7월 74% (1만131명 ±1.0%p) △8월 1~2주 72% (±1.4%p) 등으로 나타났다. 국정수행 부정평가를 살펴보면 △5월 11% △6월 17% △7월 18% △8월 1~2주 21% 등으로 점차 상승하는 모습이다. (자세한 조사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임기 내내 7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들의 개혁 열망에만 정부의 성공을 기댈 수는 없다.

다당제 구도 속에서 40석을 가진 국민의당과 20석을 가진 바른정당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입법과제에 얼마나 동의해줄 것이냐가 관건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까지 포함한 세 당 의석수는 180석, 정의당까지 포함하면 186석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해도 입법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집권 100일 이후엔 자유한국당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추경의 국회 본회의 통과도 사실 위험했는데 그나마 임기초반이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이 협조를 해준 덕분도 있다”며 “그렇게 결정적인 대목에서 특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추경문제를 포함해 내각 인선도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훈 평론가는 “(향후 국회 내 협치에서)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도 중요하다. 그동안 인사와 추경 등은 국민의당이 도와준 덕을 일부 본 것인데, 호남권 출신 지도부가 형성되면 민주당과의 연대가 쉽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안철수 전 대표가 이번에 대표가 되면 민주당과 더 대립각을 세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복잡한 국회 내에서 야당과 청와대 사이의 가교가 될 더불어민주당의 역할도 앞으로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박완주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통화에서 “100일 이후에도 국회 내 협치·소통 하겠다는 기조는 유지된다. 야당을 존중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방법이 있겠냐”며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돼야 하지 않겠나. 야당과의 협치 노력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민주당은 협치와는 별개로 국회 내에서 개혁입법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에 착수한 모습이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은 박범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했다. 백혜련 대변인은 통화에서 “특히 국정원과 언론 개혁 부분을 중점으로 검찰개혁, 국정농단 재판 진행 등을 살펴보고 감시하며 현안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협치는 원내에서 풀어나갈 문제이고 우리는 일단 적폐청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법안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적폐청산위원회와 각 상임위가 연계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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