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혈세 수백억을 받는 연합뉴스 핵심 보직 인사가 대단히 노골적인 방식으로 삼성에 사역했다.”

연합뉴스 간부들과 삼성의 유착관계가 ‘장충기 문자’를 통해 드러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남긴 말이다. 많이 양보해서 다른 언론사들은 광고 때문에 대한민국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에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해도 매년 300억 원 이상 정부에서 지원받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는 대체 왜 삼성 눈치를 봐야 했는가? 이는 다수 국민 정서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14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이주영)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연합뉴스 로비 1층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장충기 문자 공개 이후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충격과 절망감에 대해 공유하고, 경영진 퇴진 운동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비상대책회의 참가자들은 참여자들은 피켓을 들고 “연합뉴스 신뢰 떨어뜨린 박노황은 퇴진하라”, “공정보도 망쳐놓은 조복래는 퇴진하라”, “노조 탄압 인사 전횡 이홍기도 물러나라” 등을 외쳤다. 이날 2008년 입사자 12명은 성명을 통해 “최근 연합뉴스 핵심 간부들이 삼성에 ‘사역’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명예와 자부심은 끝없이 상처를 받고 있다”며 “일부 기자는 ‘삼성기간 통신사’ 아니냐는 비아냥 속에 삼성그룹 관련 비리 의혹을 제보하려다 ‘연합뉴스가 삼성 비리를 쓸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2002~2004년 입사한 차장대우 40명도 “국가기간통신사로서 공적 기능 수행을 위해 받아온 국가 예산이 마치 ‘삼성에 사역하는 집단에 허비된 혈세’처럼 비치게 된 상황”이라며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고, 2005~2006년 입사자 17명 역시 “현 경영진의 침묵을 규탄한다”며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박노황 사장 등 경영진은 왜 말이 없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지부장은 최근 지역본부를 순회하며 지난 6월부터 진행된 박노황 사장 퇴진 운동에 대한 의견, 지부에 바라는 점 등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충기 문자’가 공개되면서 이날 제주본부, 16일 청주본부 일정을 취소하고 해당 사안에 집중하기로 했다.

미디어오늘은 이날 오후 이주영 지부장을 만나 얘기를 더 들었다. 이 지부장은 “현 경영진은 (장충기 문자가) 인사 차원의 문자였을 뿐이라고 하는데, 구성원들이 어떤 지점에서 분노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자들의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직급의 무게를 생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공정보도위원회 등 (보도 공정성에 대해) 문제제기 했던 구성원들은 문자를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국면에서 우호적인 기사가 나갔을 때(문자에 등장하는 이창섭이 당시 편집국장 직무대행), 이건희 성매매 관련 기사가 약화됐는데 조복래 상무 문자를 보면 그동안의 의구심이 풀린다”고 비판했다.

▲ 지난 14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가 연합뉴스 로비 1층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부 제공
▲ 지난 14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가 연합뉴스 로비 1층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부 제공

조복래 상무는 장충기 문자 관련 미디어오늘에 “(관계 개선 등을 위해) 가끔씩 ‘잘 지내시냐’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곤 한다”며 “명절 때 주요 인사에 문안 인사를 올리곤 하는데 그런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이 해명에 이 지부장은 “오비이락일까요? 그렇게 볼 개연성도 있지만 그런 경영진의 직접 지휘를 받는 편집국에 영향이 없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기준으로 연 339억 원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299억 원이 연합뉴스가 공적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비용이고, 40억 원이 정부·산하기관 등에서 받는 기사 구독료(전재료) 명목이다. 이 지부장은 “이런 말하기 궁색하긴 하지만 이 돈들은 꼬리표가 붙어서 공적기능을 담당하라고 들어오는 돈이고 연 매출액의 20%가 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연합뉴스가 외국어 기사를 쓰거나 해외에 특파원을 보내는 등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이다. 이 지부장은 “24시간 운영체제를 돌려야 하는 북한 모니터링 팀도 있고, 이런 조직이 100명이 넘는데 국민들에게 ‘우리 공적기능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비난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KBS 수신료와 비슷한 입장이다. 국민 다수는 수신료 2500원도 아깝다고 하지만 KBS가 공영언론으로서 담당하는 기능에 수신료가 사용되는 건 사실이다. 기능을 잘 수행하든 그렇지 못하든 세금은 투입될 수밖에 없고, 국민 다수가 볼 때 기사 논조나 언론인 행태에 문제가 있을 때 수신료 인상 논의는 정당성을 얻기 어려워진다. 이 지부장은 “기자들이 받는 영업 부담이 다른 언론사에 비해 적은 건 사실이지만 연합뉴스도 재정구조가 탄탄하다고만 볼 순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지부장은 “연합뉴스의 모델은 AP나 교토통신”이라고 설명했다. 즉 국가기간뉴스통신사 회원들이 1년 예산을 갹출해 충당해주고 회원사들은 기본 팩트를 가지고 추가 취재나 다양한 논조로 전문성을 살리는 모델이다. 이 지부장은 “하지만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을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어 KBS·MBC가 74.5%를 갖는 등 회원사들이 지분을 가지니 전재료를 올리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낮은 전재료를 공익적 의무감에서 감당해야 했고, 포털 도입 이후엔 회원사들도 연합뉴스를 경쟁사로 인식해 전재료 인상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 이주영 지부장.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 이주영 지부장. 사진=연합뉴스지부 제공

결국 “언론시장이 많이 변했고, 이제는 연합뉴스가 독자를 더 빨리 더 많이 만나는 매체가 된 이상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이르게 됐다. 결국 연합뉴스가 먼저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이 지부장의 판단이다. 이주영 집행부는 취임 초기부터 조복래 상무에 문제제기를 했다. 편집인 자격인 조 상무가 노사편집위원회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이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는데 직접 참가해 공정보도에 대해 논의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아직 조 상무 등 경영진은 노조에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의견표출이 공영방송들과 비교할 때 더디고 약한 건 사실”이고 “언론노조에서도 김장겸 MBC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이사장, 이인호 KBS이사장, 고대영 KBS사장,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등 5명 퇴진 의견을 의결했지만 최근 ‘KBS·MBC정상화시민행동’이라는 연대단체가 생기면서 공영방송 중심으로 이슈가 돌아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관심이 덜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내부에선 ‘이번이 마지막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있다”며 “아직 남은 연합뉴스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지부장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정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무력화한 박노황 사장 퇴진 요구가 지역에서 더욱 강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지부는 집행부 회의와 대의원 대회 등을 거쳐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 현 경영진 퇴진, 나아가 연합뉴스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스통신진흥회법 개정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