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의 논리를 벗어나려는 남과 북의 결단은 간헐적이나마 이어져왔다. 하지만 김영삼-김일성 회담은 갑작스런 후자의 죽음으로 무산되었다. 김대중-김정일, 노무현-김정일 회담은 북을 ‘악의 축’으로 몬 미국의 조지 부시 견제로 성과가 반감되었다. 후보시절 김정일을 만나겠다고 공언한 오바마가 집권했을 때, 남쪽은 이명박-박근혜가 ‘반감된 성과’마저 탕진했다. 지금 문재인에겐 김정은과 트럼프가 있다. 평양과 워싱턴이 ‘전쟁 협박’을 주고받으면서 자칫 남과 북 모두 ‘불바다’에 잠길 가능성마저 감돈다.
옹근 1년 전 본란에 쓴 ‘김정은의 허황된 과욕, 박근혜의 비루한 굴욕’ 제하의 칼럼에서 나는 ‘통일대박’을 부르대던 박근혜의 비루함 못지않게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김정은의 허황됨을 비판했다. 다행히 1년 사이에 남쪽에서 촛불혁명이 타올랐고 ‘촛불정부’가 들어섰다.
그래서다. 김정은에 권한다. 남쪽 민중의 촛불혁명을 겸허하게 짚어보라. 박근혜와 문재인은 정권의 성격이 다르다. 촛불정부의 진지한 대화 제의를 미사일로 답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굳이 여기서 김정은을 거론하는 이유는 평양의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에겐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렇다. 나는 이 글을 인터넷 검색을 하는 김정은이 발견하길 기대하고 쓴다.
김정은이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자신의 참모들이 자유롭게 정책을 건의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지 여부다. 아무리 위대한 ‘백두산 천재’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일본과의 수교가 왜 좌절되었는가를 톺아볼 일이다.물론, 핵무기를 보유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해나가는 까닭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핵무기가 있어야 미국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단순화다. 평양은 바그다드나 트리폴리와 다르다.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핵이 없더라도 미국이 함부로 침략할 수 없다. ‘체제 위협’을 과장하지 말라는 뜻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의 합의문에는 남과 북 모두 체제를 개혁해가자는 합의가 깔려 있다. 남쪽의 부익부빈익빈 체제나 북쪽의 ‘수령경제 체제’ 모두 겨레의 미래일 수 없다.
김정은은 지금 갈림길에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강성대국’을 내세운 지금까지의 길과 문재인이 내민 손을 맞잡는 길이다. 남과 북 모두 6·15선언과 10·4선언을 밑절미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옳다.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 그만하면 됐다. 남쪽과 대화에 나서라. 북미 핵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이라도 여러 차원의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정은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