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순천대 교수)이 임명 나흘 만에 자진사퇴했다. 11~12년 전 온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황우석 사건의 핵심 책임자가 다시 과학기술혁신 분야를 총괄하는 수장으로 부활했으나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번 인사 파문으로 청와대는 과학기술 분야 인사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생명윤리와 연구윤리 모두 저버린 희대의 국제 사기사건인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박기영 교수는 본부장 자리에서 자진사퇴한 후 황우석 논문조작의 주범이 아닌데 언론 등이 자신을 주범으로 몰았다며 마녀사냥‧현대판 화형당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청와대 “4차산업 대비 적임자, 박기영”부터 반발 불러

청와대는 지난 7일 차관급 인사에서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박 교수에 대해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핵심과학기술 연구개발 지원 및 과학기술분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밝혔다.

문제는 박 교수가 11~12년 전 황우석 난자 매매 및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됐다가 공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라는데 있었다. 그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조작으로 밝혀진 2004년도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제13저자)로 참여했다. 서울대 조사위는 논문에 ‘기여없음’으로 판정했다. 순천대 교수 시절 황 교수와 공동 프로젝트 연구를 하기도 했다. 특히 2004년 1월 청와대 보좌관에 임명된 이후 황 교수와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이른바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약칭) 모임을 구성해 황 교수에 대한 정부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서울대 조사결과가 발표를 전후한 2006년 1월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직에서 사퇴했다.

이 같은 인사에 황우석 사태를 첫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 과학계 등에서 반대여론이 터져나왔다. 당시 PD수첩 CP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지난 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해가 안간다”고 비판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 쓴 글에서 당시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위압적 협박취재를 했다’고 보고한 사람이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최 PD는 “노 대통령이 말도 안되는 취재를 피디수첩이 했다고 했는데, 적어도 청와대의 과학기술보좌관이라고 하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객관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며 “황우석 박사 팀이 어떤 잘못과 문제점이 생기고 이뤄지는지를 점검해야하지 황 박사 말만 믿고 그렇게 보고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인사는 우리 자신은 물론 많은 시민들을 실망시키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같은 제작진으로 직접 취재했던 한학수 PD도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었어야할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더 진실을 가려 참여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던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입장하며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오후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입장하며 민주노총 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출연 과학기술연구소 소속 과학기술연구자 조합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 김준교)도 이날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은 “황우석 사태를 불러일으킨 핵심 인물로, 온 나라를 미망에 빠뜨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장본인”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정치권을 맴돌며 그럴듯한 ‘4차 산업혁명’의 미사여구와 얄팍한 ‘쇼’로 장밋빛 환상을 설파하던 자를 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학자들 “박기영은 정말 아니다”

박기영 교수의 과기혁신본부장 임명에 젊은 과학자들도 크게 반발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지난 9~10일 오후 서명을 완료한 성명에서 박기영 교수에 대해 이름은 과학기술인들에겐 악몽에 가깝다”며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인사를 심각하게 재고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황우석 사태의 최정점에서 그 비리를 책임져야 할 인물임에도 그 어떤 성찰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황우석 사태가 마무리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등장한 인터뷰에서, 그는 황우석을 여전히 두둔하는 모습만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대 움직임은 정치성향이나 여야를 특히 가리지 않고 대체로 한 목소리였다.

박기영, 원로 간담회서 11년만의 사과? 서울대 교수 “과학계 모독”

박기영 교수는 이 같은 반대 여론에도 지난 10일 과학기술총연합회 주최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 간담회 자리에서 입장을 밝혔다. 11년 전의 과오를 사과한 것이다. 그와 함께 일할 기회를 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사과 기자회견 모습이 되레 반감을 사기도 했다. 원로와의 정책간담회를 이용해 참가자들을 방패막이 삼으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지켜본 서울대 교수 288명도 지난 10일 박기영 본부장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박 교수가 자리를 지킨다면 황우석과 그 비호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면 “박 교수는 황우석이 주도한 희대의 사기극에 동참했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은 “황우석 사태 이후 한국의 학문사회가 연구윤리를 정립하려 기울여온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며, 한국 과학계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녹색당도 11일 내놓은 성명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두고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관의 ‘원로’들과 기관장들을 찾아 방패막이를 요구했다”며 “황우석씨가 대학원생들을 병풍 삼았다면, 이번에 박 교수는 원로들과 연구기관장들을 들러리로 세웠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그가 진정으로 사과한다면 그것은 사퇴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밖에 다른 모든 야당 역시 박기영 사퇴를 요구했다.

박기영 끝내 사퇴 “황우석은 주홍글씨…마녀사냥”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 결국 박기영 교수는 지난 11일 저녁 자진사퇴했다. 그는 사퇴의 글에서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언론과 여론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이었다. 그는 “11년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며 “청와대 참모로서 정부의 과기정책 담당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가장 책임을 크게 지는 방법이고 가장 크게 사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박 교수가 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더 거칠었다. 그는 자신이 “황우석 사건의 주범도, 공모자도 아니다”라며 언론과 PD수첩 제작진, 서울대 교수들, 생명윤리학자들이 마녀사냥해 현대판 화형을 당했다고 썼다.

▲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대 조사위에서 조사받지 않고, 이름도 거론되지 않았으며 재판과정에 증인소환된 적도 없으니 논문조작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조작된 황우석 논문의 공저자로 올라있는 것과 아무 기여가 없는 것으로 판명난 것에 대한 부인은 하지 못했다. 그는 “실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줄기세포 기획할 때 논의에 참여했고 생명과학을 대상으로 인문사회과학적 분야연구로 3년간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공저자에 넣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고 대수롭지 않게 동의한 잘못이 있다”며 “굳이 사양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동의했다. 그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거절하지 못한것에 대해 정말 후회한다”고 썼다.

이에 대해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회 공동대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여하지 않았는데 논문에 이름이 올라간 것이 연구부정”이라며 “신중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잘못의 중대함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대표는 “황우석 연구팀에 지원된 수백억 원이 본인과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이냐”며 “이 사건은 당시 전세계적 과학 사기사건이 되는 바람에 한국 과학자들의 신뢰가 실추돼 다른 국제 저널에 논문조차 못올린 사람도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명공학, 생물학, 과학분야 신뢰도에 끼친 악영향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마녀사냥인가”라고 반문했다.

우 대표는 사퇴한 것이 가장 큰 사과였다는 박 교수 주장에 대해 “본인이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하는등 정치적 활동을 했는데 그때마다 사과할 기회가 과연 없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 대표는 “논문조작 의혹의 진상규명행위를 방해한 행위”이며 “책임이 작다 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박기영 사태가 남긴 것 “황우석 사태 교훈 명심해야”

이로써 11~12년 전의 ‘황우석 악몽’을 끄집어낸 박기영 인사 파문은 나흘 만에 끝났다. 이번 인사파문은 단지 잘못된 인사를 교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시민과학센터,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은 14일 내놓은 공동논평에서 “늦게나마 시민사회와 과학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환영하지만, 부적절한 인사의 임명을 강행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계기로 과학기술과 환경, 보건의료정책의 수립과 집행에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함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가 마녀사냥이라고 한 것에 대해 이들 단체는 “사회 각계각층의 반대가 분출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의 자질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인사로 다시 되새겨야 하는 것이 황우석 사태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황우석 박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학계-정치권-언론 동맹, 개발독재 시대의 낡은 과학기술정책이 있었다”며 “강력한 생명공학 육성정책은 생명윤리와 위험, 연구 절차에 대한 다양한 쟁점들을 경제성장의 장애물로 인식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이러한 정책기조가 문재인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될까 우려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회 공동대표는 “기업 이윤과 규제완화 방향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가져가려는 편향을 드러낸 것”이라며 “그것을 위해 세계적 과학사기사건에 연루된 사람까지 중용하려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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