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표가 참석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회(위원장 강효상)는 지난 11일 자신들이 제안한 ‘역대 정권의 방송공정성 평가에 관한 공개토론’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측이 응하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의 참석을 조건으로 달았다.

하지만 앞서 한국당이 공개토론을 제안했던 대상은 현재 KBS·MBC 등 공영방송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언론노조와 언론학자들이었다.

한국당은 전국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지난 3월21일 ‘공영방송 정상화’와 관련해 먼저 제안한 공개토론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MBC에서 벌어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 홍준표 대표가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말한 후 대응하기 시작했다.

강효상 위원장은 지난달 24일이 돼서야 언론자유 침해와 언론인 탄압 등의 책임이 있는 공영방송 이사장과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언론노조와 언론학자들에게 공개 토론을 하자고 응수했다. [관련기사 : 한국당은 왜 언론노조에 ‘공정방송’ 공개토론 제안했을까]


▲ 지난 8월 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기자협회의 제작거부 돌입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도중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국회인사청문회가 대형스크린에서 생중계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8월 1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기자협회의 제작거부 돌입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도중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국회인사청문회가 대형스크린에서 생중계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3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가 끝나고 이인호 KBS이사장(왼쪽)이 주최자인 강 의원(오른쪽.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의결한 후 박근혜씨를 단독 인터뷰했던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고문.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3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가 끝나고 이인호 KBS이사장(왼쪽)이 주최자인 강 의원(오른쪽.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의결한 후 박근혜씨를 단독 인터뷰했던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고문.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강 위원장은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임명된 공영방송사 경영진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경영진보다 더 편파적으로 방송했다고 주장하는 그 어떤 세력과도 공개적으로 토론할 의사가 있다”며 “언론노조와 일부 학자들이 우리의 공개 토론 제안을 회피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언론노조와 언론학자들은 얼마든지 응하겠다는 태도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25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공영방송 정상화 공개토론을 국회 상임위에서의 청문회 추진의 징검다리로 여기며 공개적이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토론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이와 함께 한국당 측에 토론회 실무협의와 홍준표 대표·박대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강효상 위원장의 참석을 요구하는 공문도 발송했다. 공영방송사에서 벌어진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감독기관의 조사와 내부 구성원들의 제작거부 등 반발에 홍 대표가 “노조와 권력기관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며 한국당의 개입을 강하게 부추겼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지금 남아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MBC밖에 없다”며 “그래서 강효상 투쟁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공세적으로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언론노조 측에 보낸 공개토론 실무 추진 관련 답변 공문에 포함된 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위 성명서도 발표했다. 한국당 측은 “언론노조 측에서 홍준표 대표를 언급했기 때문에 우리 당은 그 맞상대로 문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 대통령이 토론에 안 나온다면 홍준표 대표가 나갈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또 “박대출·강효상 의원은 언제든 공개토론에 응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방송장악 시도의 콘트롤 타워가 청와대임이 드러난 이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함께 토론에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 당당하다면 토론을 피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라고 말했다. 사진=KBS 영상뉴스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이효성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라고 말했다. 사진=KBS 영상뉴스 갈무리.
강 위원장은 이날 미디어오늘 기자와 만나 ‘임종석 실장과 윤영찬 수석이 안 나오면 공개토론이 무산되느냐’는 질문에 “우리도 박대출 간사와 내가 나가는데 당연히 (두 사람도) 거기 헤드쿼터(headquarter·사령부)니까 나와야 한다”며 “홍 대표가 나가면 그쪽도 문 대통령이 나오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강 위원장은 청와대까지 토론 상대를 넓히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선 “그건 예단하지 말고 봐야 한다. 당당하다면 나올 것”이라며 “우린 나가겠다는데 그(청와대)쪽에서 안 나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당 측과 공영방송 공정성에 대해 토론하길 원하는 언론학자들은 대통령까지 공개토론에 나오라는 한국당의 주장이 토론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여론전을 위한 ‘상징 투쟁’으로 보고 있다.

KBS 구야권 추천 이사인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재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이사장과 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고, 공개적으로 공영방송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활동하는 사람과 사실상 방송장악 과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토론하는 게 맞다”며 “한국당이 청와대 사람까지 나오라는 것은 토론의 목적과 상관없이 정권에 어떻게든 흠집 내서 ‘권력의 속성은 마찬가지’라고 느끼도록 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여론전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형이 생긴다면 한국당으로선 성공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 유일하게 남은 건 MBC밖에 없다’는 홍 대표의 발언에 대해서도 “MBC를 지난 정권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장악한 대표적인 교두보로 여기고 있다는 뜻인데, MBC 정상화는 그런 교두보를 없애는 것으로 인식돼 가장 확실하면서도 취약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며 “10년 전 공영방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송을 안 한다고 친정부 방송이라고 공격한 한나라당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정치적 물타기로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까지 감추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측은 애초 토론 당사자도 아니었던 청와대 관계자를 부를 수도 없을뿐더러 대선 전 학계의 토론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던 한국당이 이제 와서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것이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노조의 공개토론 제안 후 한국당이 당사자 토론을 하자기에 우리가 홍준표 대표와 강효상 위원장, 박대출 간사를 나오라고 한 것”이라며 “그럼 한국당도 김환균 위원장 등에게 제안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청와대에서 나오라는 것은 언론 자체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해 정치적 논란거리를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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