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영화 ‘공범자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MBC 전·현직 경영진의 주장을 14일 기각한 가운데, 재판부 결정문에 김장겸 MBC 사장이 보도국장이던 2014년 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해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라고 발언했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등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보도국 편집회의에서 김 사장이 해당 발언을 했다며 세월호 실종자 가족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그해 11월 “이러한 표현은 추상적인 의견 표현 내지 평가에 불과해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 자체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각하 처분을 내렸다.

이와 같은 검찰의 처분은 ‘세월호 유족 깡패 발언’이 기사화될 때 김 사장과 MBC 측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데 드는 주요 근거였다. 지난달 5일자 미디어오늘 기사에 대해서도 MBC 정책홍보부는 “세월호 유가족 관련 ‘유족’ ‘깡패’ 등의 발언은 사실이 아님을 여러 차례 밝혔고 검찰조사를 통해서도 ‘각하 결정’이 났는데도 다시 기사화해 이에 정정을 요청한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는 결정문을 통해 “김장겸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세월호 유가족을 깡패로 지칭한 표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에 불과할 뿐”이라며 “김장겸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밝혔다.

▲ 김장겸 MBC 사장(왼쪽)과 헌정 사장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왼쪽)과 헌정 사장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이치열 기자
이어 “다수의 MBC 소속 기자가 김장겸이 이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문제된 발언이 이뤄졌다는 편집회의에 참석한 기자가 작성한 자필 메모에도 그와 같은 발언 내용이 기재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표현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사장이 해당 발언을 했다고 판시한 것은 아니나 김 사장이 유족 폄훼 발언을 했다는 MBC 기자들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있는 만큼 김 사장이 세월호 유족 폄훼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백종문 부사장이 ‘증거가 없는데 (최승호를) 해고했다’는 취지의 자신의 녹취 음성을 최승호 감독(전 MBC PD, 2012년 해직)이 영화에서 사용해 명예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백종문은 자신의 발언이 악의적인 편집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면서도, (영화에서) 그 발언의 의미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최승호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UHD 방송의 개국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방송의 미래를 막지 마세요’와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면서 해명을 회피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해명 요청조차 거부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이 명예권을 침해한다는 백종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전원 구조 보도의 오보 가능성을 보고한 목포 MBC 측 견해를 묵살한 박상후 시사제작국 부국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박상후는 한승현(세월호 참사 당시 목포 MBC 보도부장), 김선태(목포 MBC 보도국장)의 보고에 따라 세월호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적어도 기존의 전원 구조 보도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상후가 목포 MBC 기자들의 보고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이뤄졌다”는 영화의 장면이 진실이 아니라는 박 부국장의 주장을 기각한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박 부국장은 MBC의 전원 구조 보도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에서 보고를 외면한 셈이다.

안광한 전 사장이 MBC 언론인들에 대한 대량 징계를 주도했다는 표현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안광한이 인사위원장이나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MBC 소속 근로자에 대한 다수의 징계가 이뤄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취소되거나 무효로 확인된 점 등을 고려하면 안광한이 근로자들에 대한 징계를 주도했다는 표현이 진실이 아니라고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그가 MBC 언론인에 대한 징계를 주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낙하산 사장’이라는 표현에 반발한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해서도 “MBC 사장 인사를 결정하는 방송문화진흥회(대주주) 이사진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선임되고, 방송통신위원장의 임명권자가 대통령이어서 MBC 사장 임명에 대통령 영향력이 충분히 미칠 수 있는 점, 김재철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김우룡(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스스로도 김재철에 대해 권력자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였다는 취지로 발언한 점 등을 고려하면, MBC 전·현직 경영진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영화의 관련 장면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 소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승호 감독과 뉴스타파는 사실에 기초해 공적 인물인 MBC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비판과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라며 “MBC 전·현직 임원들은 이와 같은 비판, 의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할 지위가 있는데도 그러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자신들의 명예권이 침해됐다고만 주장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승호 감독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원이 공범자들을 미리 보고 ‘아무런 문제도 없고, 김장겸 등 공범자들의 상영금지 요청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며 “단순히 ‘상영할 수 있다’가 아니라 ‘영화 내용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그동안 이 영화 내용이 날조라는 둥 과장이라는 둥 주홍글씨를 씌우고 평점 테러를 하는 등 일부 세력의 행태가 문제였다. 이번 기각 결정으로 이런 행태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며 “법원의 올바른 결정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영화 공범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과 이에 부역하거나 저항한 언론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앞서 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한 전·현직 MBC 경영진들은 영화에서 ‘언론장악 공범자’들로 등장한다. 공범자들은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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