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사람들의 눈길을 끈 두 건의 삼성 관련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삼성의 사실상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징역 12년 구형’,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과 언론사 간부들 간의 문자 메시지 내용이 폭로된 것이었다. 이 두 건은 사실 그 자체가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필자에겐 다른 이유에서, 즉 두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더욱 주목되는 것이었다.

두 사건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우리의 상식적인 시각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아니 다른 것을 넘어서 상식의 전도(顚倒)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건은 ‘삼성 문제’이면서 또한 ‘언론 문제’이기도 한 것이었다.

친(親)삼성 넘어서 삼성과 일체화된 언론

‘세기의 재판’이라고까지 불린 이 부회장 재판에 대한 보도부터 보자. 이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총 5가지 혐의가 적용돼 중형을 구형받은 것이었지만 많은 언론들에서 피의자들에게 구형을 한 특검의 입장을 따로 다룬 보도는 매우 빈약했다. 대체 어떤 죄목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지를 제대로 알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 대신 신문의 지면과 방송 화면에 넘쳐났던 것은 ‘이재용의 눈물’이었다. ‘사익(私益)을 추구한 적이 없다’는 항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라는 간절한 인간적 호소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국내 최고의 재벌 그룹 총수는 한순간에 지극한 동정과 연민을 받아야 할 가련한 ‘약자’가 돼 있었다.

▲ 2017년 4월7일 법정에 출두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 2017년 4월7일 법정에 출두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장충기 전 사장의 문자메시지 폭로는 삼성과 언론의 ‘검은 유착’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들이었다. 그러나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분석결과 등에 따르면 이를 다룬 신문은 한겨레뿐이었다. 방송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유의 뉴스를 좋아하는 포털들에서도 관련 보도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이에 대해 포털 측에서는 언론사 보도에 비례해 노출되는 구조 탓이라는 설명이다).

소극적인 걸 넘어서 침묵의 공조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침묵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에 대한 언론인들의 해명이었다. 삼성 경영진에게 구애(求愛)와 보고 성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한 경제지의 간부들은 “정상적인 취재 활동이었으며, 취재원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거나 ‘다음날 자 1면 톱을 사전에 알려준 게 뭐가 문제인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언론 다수는 이제 ‘친(親)삼성’을 넘어서 삼성과의 일체화, 동일시에 이른 듯하다.

사실 이는 비단 이번의 보도만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구조화된 것이어서 새삼스런 게 아닐 수 있다. 가령 위의 경제지의 경우 그동안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 구하기에 나서는 듯한 태도를 끊임없이 보여 왔다.

삼성 관련 보도가 있던 지난주엔 ‘공영방송 정상화’ 싸움이 치열한 MBC에서 “보도국에서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보도를 하도록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MBC 경제부 기자들이 낸 성명에 따르면 “탈원전부터 증세, 최저임금까지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이슈에 대한 일방통행식 기사 요구가 노골화되고 있으며 불순한 의도가 덧칠된 제작 주문이 거의 매일 내리꽂혔다.”

이 같은 ‘청부제작’ 지시는 극히 망가지고 왜곡된 MBC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인데, 그러나 삼성에 관한 한 우리의 언론은 이제 ‘친삼성’ 보도를 굳이 요청할 필요도, 압력을 가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다.

‘혁신의 리더’ 삼성에 가장 필요한 혁신

역시 지난주에 나온 또 하나의 눈길을 끈 삼성 관련 보도는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이 지명한 중소기업청 수석고문을 지냈던 매트 와인버그가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삼성, 소니 2.0 되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 대한 것이었다. 이 기고는 글로벌 IT업계에서 ‘혁신의 리더’로 자리 잡은 삼성이 최근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이른바 ‘제2의 소니’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많은 언론들이 이 기고를 전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이 부회장의 재판으로 인한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와 경영 공백으로 삼성의 글로벌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도 삼성으로서는 외부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는 대목이었던 듯하다. 이들에겐 이 기고가 삼성이 불확실성과 외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절실하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반가운 ‘지원사격’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 1월9일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1월9일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삼성에 지금 필요한 혁신이 있다면 그중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언론과의 관계의 혁신으로 보인다. 삼성과 언론 간의 일그러지고 빗나간 관계의 혁신인 것으로 보인다. 그 혁신의 시작은 삼성 자신보다 더 삼성을 걱정하는 언론들의 그 지나친 걱정과 일체화가 결국엔 지금처럼 삼성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다. 언론 또한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의 혁신은 곧 언론의 혁신인 것이며, 언론의 혁신이 곧 삼성의 혁신인 것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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