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용씨를 만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그는 1962년, 자신의 여섯 살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통에 나선 그와 쌍둥이 형은 어느 순간 할머니 손을 놓쳐 길을 잃었다. 할머니를 찾아 배회하던 형제는 인근 파출소에 인계됐고, 영문도 모른 채 이름 모를 어느 섬에 보내졌다. 형은 그곳에서 2년 후 사망했다. 배가 고파 담요를 뜯어먹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줬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지난해 KBS ‘추적60분’의 도움으로 형의 유골을 53년 만에 찾았다. 유골을 발견한 곳은 경기도 안산시 소재 선감도라는 작은 섬의 야산이다. 이 섬에는 1942년부터 1982년까지 선감학원이라는 부랑아 수용시설이 있었다. 쌍둥이 형제는 이곳에 갇혀 지냈다. 그들과 다름없이 영문도 모른 채 길에서 잡혀 온 수백 명의 아이들과 함께.

올해 초 경기도의회 선감학원 진상조사 피해자 구술작업에 참여하면서 허씨를 포함해 총 다섯 분과 인터뷰 할 기회를 갖게 됐다. 사실 허씨는 다른 분에 비해 선감학원에서의 기억을 또렷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인터뷰도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그럼에도 그와의 인터뷰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것은 그가 한숨을 반쯤 섞어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러고 실패작 인생으로 살고 있지.”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고 떼쓰듯 말했지만, 그는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느꼈는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지난 5월27일 열린 선감학원 희생자 위령제 모습. 사진 속 장소는 아동들이 끌려와 처음으로 도착한 선감도의 선착장 자리. 사진=하금철 제공
▲ 지난 5월27일 열린 선감학원 희생자 위령제 모습. 사진 속 장소는 아동들이 끌려와 처음으로 도착한 선감도의 선착장 자리. 사진=하금철 제공

매일 같이 온갖 노역에 동원되고 섬을 탈출하려다 맞아죽은 친구를 보며 공포 속에 살다가, 퇴소 후에도 고아원과 이런저런 몸 쓰는 일을 전전하다보니 어느새 살아온 세월이 육십 해를 넘겼다. 가족이라고는 유골로 돌아온 쌍둥이 형 뿐. 원망할 사람조차 찾을 수 없어 스스로를 향해 ‘실패작 인생’이라고 읊조려야 하는 그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나는, 괜히 우울해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가족을 찾아 떠도는 아이’라는 존재로 처음 국가의 눈에 띄었다. 그저 할머니를 찾아 헤맸을 뿐이었으나 국가의 눈에는 그것이 ‘부랑(浮浪)’ 행위이자 곧 ‘불량(不良)’ 행위로 이어질 것으로 비쳤다. 그래서 여섯 살 아이의 모든 사회적 삶을 지워버리고 섬으로 ‘추방’시켰다. 국가는 그를 마주한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책에서 실패했다. 가족을 빼앗았고, 교육의 기회를 빼앗았고, 어린 시절 기억을 처참한 고통으로 채웠으며, 지금껏 이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선감학원과 가장 유사한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19대 국회 때부터 발의됐으나, 법안은 여전히 국회 서류 더미 속에 잠들어있다.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기도 했지만 인권위는 사건의 시효가 지났다며 기각했다. 선감학원 사건의 경우 경기도의회가 진상조사를 했지만 드러난 피해자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 외에 별다른 증거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혹한 시간이 계속될수록 피해자들의 고통은 ‘실패작 인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그들 가슴 속에 쌓여만 갈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선감학원 설립 근거 법령인 조선감화령이 제정된 해가 1923년이다. 거리의 아이들을 ‘부랑아’라 낙인찍어 강제수용하는 ‘적폐’의 시간이 무려 94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하금철 비마이너 기자
▲ 하금철 비마이너 기자

허일용씨는 다른 자리에서 날 만났을 때 국가를 향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이들에게 신사적으로 좀 합시다” 아이들이 묻혀 있는 야산에 걸린 추모 현수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름도 없는 어린 원혼이여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라” 허씨의 호소와 외롭게 펄럭이는 현수막이 94년간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했던 국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