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은 사실상 삼성으로부터 해고됐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지난 3월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삼성 사정에 밝은 한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중앙일보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세운 신문사였고 21세기 들어 중앙일보는 공식적으로 삼성의 소유구조에서 벗어났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홍석현 회장은 여전히 삼성생명일보건물 꼭대기 이병철 회장 집무실을 이용했고, 지면과 사설은 줄곧 삼성을 대변했다. 그래서 ‘해고’란 표현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난 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법정에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가 지난해 2월15일 독대 자리에서 JTBC를 두고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쓰며 흥분했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로부터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외삼촌이지 않느냐. 중앙일보 자회사 JTBC뉴스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날 독대의 목적은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교체였다. 어쩌면 이 때 박근혜는 JTBC ‘최순실태블릿PC’ 특종과 자신의 몰락을 직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디 손 사장 교체를 원했던 이가 박근혜 뿐이었을까.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JTBC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JTBC는 손석희 사장 영입 이후 삼성의 노조 무력화 문건 단독보도를 비롯해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병원의 확산 책임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했으며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사건을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을 메인뉴스에서 소개하고 그녀의 아버지 황상기씨와 인터뷰까지 했다.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JTBC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두 사람만 바라보던 11월23일에는 ‘삼성물산, 직원들에 합병 문서 파쇄 수상한 지시’란 단독보도를 내고 그해 말 최순실 국정조사에서 이재용 부회장 관련 비판 보도를 이어가며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던 촛불 광장에 ‘이재용 구속’을 추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삼성장학생’들이 주요 언론사 요직 곳곳에 점조직처럼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JTBC ‘뉴스룸’만큼은 삼성도 통제 불가였다.

JTBC가 ‘외삼촌이 세운 회사’라는 점에서 삼성家의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상당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며 이 감정은 아마 정점을 찍었을 것이다. 그 결과 홍석현 회장은 쫓겨나듯 삼성생명일보 집무실을 떠나야 했고 삼성의 지원은 급감했다. 최근 삼성이 광고를 집행할 때 유료부수 업계 2위의 중앙일보를 한겨레·경향신문과 같은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고 올해 JTBC 삼성광고는 전년대비 10분의 1수준으로 줄고 협찬은 0원이라는 증언까지 등장했다.

▲ 2016년 11월23일자 JTBC &#039;뉴스룸&#039; 보도화면 갈무리.
▲ 2016년 11월23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7일자 JTBC &#039;뉴스룸&#039;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7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일련의 사건들은 오직 하나의 ‘목표물’을 가리키고 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이다. ‘손석희를 쫓아내지 않으면 삼성 광고는 영원히 없다’는 그룹차원의 경고이자 협박이다. 누구 말마따나 삼성이 정말 홍석현 회장을 ‘해고’한 것이라면 삼성의 최종 목적은 JTBC를 멈추는 것이다. 정확히는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의 ‘뉴스룸’을 멈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의도적으로 중앙미디어그룹을 무시하고 있다. 이는 다른 언론사들에겐 ‘메이저 언론사도 밉보이면 이렇게 당할 수 있다’는 본보기로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손석희 사장과 JTBC기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JTBC는 지난 8일 방송사 메인뉴스 중 유일하게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사장과 언론과 유착을 폭로한 시사인 특종을 인용 보도했고, 손 사장은 이날 앵커브리핑에서 “국내 최고, 최대라는 대기업의 최고위급 힘 있는 임원. 그러니 그 청탁의 간절함은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자녀의 채용을 부탁하거나. 사외이사 자리를 청탁하고 광고와 협찬 증액을 요청한 사람들은 언론인들이었다”고 꼬집었다.

손 사장은 “장 사장의 치부책에 기록되었을 수많은 청탁의 증거들. 그 거래의 대가로 은폐되었을 부조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였을까”라고 되물으며 “언론과 기업. 그 팽팽한 긴장이 흘러야 할 관계 속에서 선의로 인해 거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고 지적했으며 “장 사장은 보지 않고 듣지 않아야 할 것을 보고 들었을 것이고 언론은 그 대가로 봐야 하고 들어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앵커브리핑에서는 삼성과 JTBC의 현 상황을 의식한 듯 “민영방송의 사나운 운명”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손석희 사장은 이재용-박근혜 독대자리에서 나온 JTBC보도 비판과 관련, “그 뒷얘기가 지금에서야 재판정에서 나오는 것은 얘기를 풀어놓는 쪽의 목적도 있어 보이긴 하나 광장과 촛불 이전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어두운 유산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오늘”이라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손 사장은 이날 MBC 재직 시절 본인이 칼럼으로 썼던 ‘공영방송의 사나운 운명’을 언급한 뒤 “이제는 민영방송도 사나운 운명을 타고 난 것이라 말씀드려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으로선 오는 25일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선고까지 어떻게든 JTBC에 실효적인 압박을 주고 손석희 사장을 사내에서 고립시키고 위축시키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손 사장과 JTBC는 지금 자신들 앞에 놓인 ‘사나운 운명’에 맞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