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군 수뇌부의 거친 언사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정부의 존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코리아패싱이 아닌 문재인 패싱’, ‘문재인 정부에서 안보사변 난다’ 등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대북전문가와 언론계 등에서는 한반도에 사변이 나기를 바라는 것이냐며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방향에서 보도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전략군사령부의 ‘괌도주변 타격 검토’ 성명, 북한 총참모부의 ‘서울등 불바다’ 성명과 트럼프 대통령의 ‘지금껏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 등의 발언이 지난 9일(한국시각) 오고가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야당과 조선일보 등은 정부 책임론 또는 무능론을 제기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0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정부는 북핵문제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이렇게 방침을 정하고도 지금 아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며 “주변의 강대국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고, 최근에 코리아패싱이라기 보다도 지금 현재 국면은 주변강대국이 ‘문재인패싱’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짜 사설 ‘트럼프 “北 화염” 對 북 “괌 사격”, 이제 시작일 뿐’에서 현 시국에 대해 “당장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해도 북이 레드 라인(금지선)을 넘어버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조선은 “한반도 정세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서 있다, 재앙이 와있다”며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우리 정부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조선은 해법으로 한미관계 수준을 미일 수준으로 복원하고, 미국의 어떤 대북 조치도 사전에 통보받고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선일보는 그러면서 정작 “지금 같아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 것이 사실”이라고 썼다.

이 같은 사설 외에도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양상훈 주필은 이날 ‘양상훈 칼럼-文 대통령 임기 중 안보 사변 일어날 것’일라는 글에서 현 정부 중 북핵이 완성된다거나 문 대통령이 전투명령을 하달할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을 기념해 새 우표들을 발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을 기념해 새 우표들을 발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양 주필은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미지수”라고 썼다. 양 기자는 “미·북은 지난 20여 년간처럼 어정쩡하게 더는 갈 수 없다”며 “어떤 형태로든 결말이 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문 대통령의 임기 내 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사태의 결말은 파국 또는 김정은 체제의 붕괴, 아니면 그 중간 어디일 것”이라며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서울에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전군(全軍)에 전투를 명령해야 하는 순간을 맞을 수도 있고, 대한민국 국민이 북핵에 압도당하며 살아가게 만든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주한 미군 철수를 지켜봐야 하는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양 주필은 “아무래도 문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이런 상황이 도래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예기치 못한 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진다면 그 보고를 받을 대통령은 ‘문재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기자는 다음과같이 문 대통령의 ‘운명’까지 예견했다.

“문 대통령이 어느 날 국민 앞에 서서 놀랍고도 무거운 내용의 발표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북은 노무현 대통령 때 첫 핵실험을 했고, 문 대통령 때 마무리를 짓는다. 문 대통령이 쓴 책 제목처럼 이것이 그의 진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두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팩트이며, 그 해법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변인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해결의 문제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해결의 주체”라며 “대한민국은 미국이 좀더 많은 역할을 해주고, 중국도 역할을 더 할 여지가 있으니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남북관계 개선의 주도권을 갖고 나가겠다는 것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와 무관하게 인도적 조치, 남북군사당국자 회담 문제에 대한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국제사회에서도 다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현 상황에 대해 “엄중한 상황이라고 본다”며 “절벽 끝으로 가고 있지만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 대화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미관계를 미일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조선의 주장에 대해 박 대변인은 “그건 조선일보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일 뿐, 이틀 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간에 통화하면서 양국간 동맹의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017년 8월17일자 30면 양상훈 칼럼
▲ 조선일보 2017년 8월17일자 30면 양상훈 칼럼
양상훈 주필의 문재인 정부 때 안보사변 난다는 글에 대해 박 대변인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 청와대는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과 안전, 안보를 지키고 그런(안보사변) 상황이 오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라며 “마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은 글의 주장에는 입장을 내지 않겠다. 다만 우리는 할 일을 묵묵히 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북전문가인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대외부총장(교수)은 10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과거 더러 있어온 한미간 말 폭탄이라 해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의 괌도 공해상 타격의 실현가능성도 절반은 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이러한 포위 사격이 침략행위냐 여부를 떠나 미국도 굉장히 톤이 높은 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지금까지 방패막이 역할을 해준 러시아와 중국도 도와주기 어려울 것이므로, 수위를 조절한 무력시위 정도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우리 정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 목소리를 듣는 것 뿐 아니라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남북간 물밑접촉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패싱’ 상황이라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주장에 대해 양 교수는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 아세안안보포럼 의장성명에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며 “바깥으로 드러나는 압박과 제재,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 발언 만으로 문재인 패싱이라는 것 지나친 과잉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조금만 한반도에 문제가 생겨도 ‘한목소리 내야 한다, 안보엔 여야가 따로없다’더니 왜 이젠 그런 말은 쏙 뺐나”라고 비판했다.

현 상황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조선 사설에 대해 양 교수는 “현재의 안보상황이 엄중하고 위중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북한전략군사령관의 계획을 보면 치밀한 계산이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며 “일본 영공을 통과할 때 100km를 넘어가면 침범이라 볼 수 없고, 괌의 해안 30~40km 바깥에 포위사격을 하면 괌의 영해 밖이다. 침략행위 논쟁에도 미국이 대응하기 쉽지 않다”고 해석했다.

대북조치 관련 정보를 사전에 통보하고 협의할 수준으로 한미관계를 올려야 하나 불가능해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양 교수는 “과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로 한미일의 협의체(정책조정회의)가 한국 주도로 열렸고, 상당히 협조가 잘된 적이 있다”며 “이는 어디까지나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긴장이 완화됐을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미 간 협의 조정이 바람직하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미일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한반도 문제를 벗어난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는 한국이 미일의 입장을 지지해야 진정한 한미동맹”이라며 “지금은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주장은 글로벌 이슈고 미국 따라가고, 한반도 문제도 따라가라는 건데, 그러면 그게 무슨 동맹국가인가. 그건 종속국가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양상훈 칼럼의 문재인 정부 안보사변론에 대해 양 교수는 “오히려 그건 양상훈 기자의 기대를 나름대로 쓴 것 아니겠느냐”며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자신의 기대보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언론인이든 전문가이든 당국자든 한반도 문제와 북한 정세, 동북아 정세는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며 “지금 글은 객관적인 정세 분석의 근거가 미약한 삼류소설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017년 8월10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7년 8월10일자 사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의 5선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북미간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어 위태로운 상황이라 우리 정부가 역할을 잘해야 할 것 같다”면서도 “한국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북미 관계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한반도 평화가 우리에게 절실하기 때문에 구경꾼이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안보사변이 일어날 것 같다는 양상훈 칼럼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위태로운 상황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상임공동대표인 정일용 연합뉴스 대기자는 1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쟁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기사를 써야 한다”며 “‘그 전제를 갖고 기사를 쓴다고 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회의하고, 주저하고, 고민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조언했다. 정 대기자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거기에 맞는 해결책도 나오게 돼 있다”며 “그리고 이미 그 해결책은 제시돼 있다. 정전상태를 종전상태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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