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사원을 정치 성향과 노조 활동 등으로 등급을 매겨 사측의 인사 정책에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MBC판 ‘블랙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 9일 우원식 원내대표가 “지난 정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블랙리스트의 MBC 버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10일 정책조정회의에서도 “공영방송의 상처가 곪아터지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근 흥행몰이 중인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광주MBC가 불타는 장면이 나온다. 진실을 외면하고 신군부의 일방적 허위사실을 뉴스로 내보낸 데 대해 광주 시민의 분노가 표출된 결과”라며 “안타깝게도 3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공영방송은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 원내수석은 KBS·MBC 등 공영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이유에 대해 “지난 10년간 권력 감시의 책무를 방기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만들면서 시청자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며 “37년 전 광주와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 모두는 이방인 기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공영방송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 지난 8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입수해 공개한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 이 표에는 MBC 카메라기자 65명을 입사연도에 따른 기수별로 나눈 다음 각각 4개 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 지난 8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입수해 공개한 ‘카메라기자 성향 분석표’. 이 표에는 MBC 카메라기자 65명을 입사연도에 따른 기수별로 나눈 다음 각각 4개 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박 원내수석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근본적으로는 제도와 사람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현재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 통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162명 의원이 발의한 일명 ‘언론장악방지법’은 역설적이게도 현 정권의 방송장악을 저지하겠다는 한국당의 가장 큰 반대로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박 원내수석은 “어떤 정권도 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한 이 법안이 국회에서 1년 넘게 표류한 것은 순전히 한국당의 반대 때문”이라며 “만일 다른 대안이 있다면 제시하는 것이 제1야당으로서의 책임 있는 모습이지만 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우원식 원내대표도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특히 (MBC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 시기는 김장겸 현 MBC사장이 보도국장으로 취임한 직후였다는데, 관여 여부에 따라 공영방송의 수장 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며 “문건에 나타난 MBC의 모습은 저널리즘의 기본마저 송두리째 붕괴된 처참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보수정권 시절 누적된 모든 언론적폐들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개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지난 보수정권이 언론장악을 위해 MBC에 투입한 낙하산 경영진들이 남긴 어마어마한 폐해가 이제야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보루인 공영방송에서 이와 같은 반헌법적인 행태가 버젓이 자행됐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추 대변인은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MBC 특별근로감독에서 회사 관계자 일부를 수사 대상으로 전환했다는데 단순히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진 것 뿐만이 아닌 현행법을 위반하는 수준의 범죄행위가 벌어졌다는 뜻”이라며 “이번 블랙리스트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MBC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철저한 대응을 주문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당은 언론탄압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전국언론노조가 발표한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에 바치는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했다.

강효상 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정권의 ‘낙하산’ 경영진이 저지른 각종 불법해고와 부당전보, 부당노동행위 등 피해 언론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부역자) 명단에 오른 언론인들이 입은 큰 상처를 역지사지하여 사과·반성부터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청와대가 MBC를 흔들기 위해 치밀한 사전 각본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면서 “만약 이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청와대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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