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PD들이 박환성, 김광일 PD의 죽음을 계기로 ‘외주제작 갑질’문제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독립PD협회는 9일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출범 논평을 내고 “두 PD는 그저 불운한 사고로 희생된 것이 아니라, 수십년 간 쌓여 온 적폐에 짓눌려 막다른 길에서 몸과 영혼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라며 “유지를 받들어 ‘진정한 방송 정상화’를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박환성·김광일 독립 PD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제작비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늦은 시간에도 두 PD가 직접 차를 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환성 PD는 출국하기 직전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앞장 서서 공론화했다. 독립PD가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받은 정부지원금의 일부를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요구했다는 폭로였다.

▲ 지난 29일 오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29일 오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특별위원회는 박환성 PD가 문제제기했던 ‘정부지원금 간접비 환급’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한다. 또한 관련 문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며 △표준계약서 미비 △방송사의 저작권 독점 등 독립PD와 방송사 간 불공정계약 문제가 오는 9월 국회 국정감사 안건으로 다뤄질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다.

두 PD의 사고에 관해 특별위원회는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PD 단 둘이서 무리한 촬영스케줄을 이어가다가 길 위에서 쓰러졌다”면서 “그들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타살을 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위원회는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다름 아닌 방송사들의 일관된 침묵”이라며 “자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소한 일들까지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사들이 두 PD들의 죽음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으로 불공정한 외주제작 시스템 문제가 공론화돼 국무총리가 직접 문제개선을 요구할 정도였지만 당사자인 지상파3사, 종편4사는 두 PD의 사망사건 및 갑질 논란을 방송뉴스에서 보도하지 않고 있다.

특별위원회는 “현재 ‘방송 정상화’의 목소리가 높다. KBS, 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 이것은 사회정의 구현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외주제작 생태계가 제대로 복원되지 않는다면, 이 개혁은 반쪽짜리 개혁일 뿐이다. 각 방송사는 침묵을 거두고 100% ‘방송 정상화’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최영기 전 독립PD협회장이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됐으며, 복진오 독립PD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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