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년간 공영방송이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노무현 정부 때 방송장악한 것을 돌아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지난 9년 간 망친 책임자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조선일보가 2008년에 어떤 글을 썼는지 먼저 돌아보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하고 참담하게 무너진 부분이 공영방송”이라며 “지난 정권에서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부작용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9일자 사설에서 “그런데 공영방송이 참담하게 무너지고 정권이 방송을 장악해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던 시초가 노무현 정부였다”며 KBS와 MBC의 사례를 들었다.

조선은 KBS에 대해 “2003년 방송 경력도 없는 정연주씨가 KBS 사장에 임명됐다. 정 전 사장 재임 시절 KBS는 공영방송이라기보다는 정권 방송에 가까웠다”며 “2003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라는 프로그램 등에서 북한을 넘나들며 북 체제를 옹호하던 송두율씨를 ‘민주 투사’로 미화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14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반(反)탄핵 방송을 하는 기록도 세웠다”며 “북한 군가의 멜로디를 배경음악으로 쓰기도 했다”고 썼다. KBS 구성원 80%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 정부가 정 사장 연임을 강행했다고도 했다.

MBC에 대해 조선은 “MBC 사장에는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이 임명됐다”며 언론학회가 MBC 탄핵 방송에 대해 ‘스스로 만든 공정성 규범을 일탈하고 파괴적 편향성을 보였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조선은 “이명박 정부로 바뀐 직후에 벌어진 광우병 파동은 전 정권에 장악됐던 MBC의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금 민주당은 KBS 사장과 MBC 사장 및 이사장의 중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며 “2008년 정권 교체 후 정연주 전 사장이 임기 도중 해임되자 민주당은 ‘언론 자유에 조종이 울렸다’고 비난했다. 여당이 되더니 지금은 똑같이 공영방송 사장을 중도 퇴진시키려 한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출신의 강효상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특별위원장도 7일 회의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간 자행됐던 언론사 세무조사와 기자실 대못박기 등과 같은 언론탄압과 공영방송사 사주에 정연주·최문순 사장 등을 임명했던 코드인사는 벌써 잊었느냐”며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는 첫걸음은 공영방송 사장들의 임기 보장”이라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이효성(오른쪽)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 수여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이효성(오른쪽)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임명장 수여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청와대
▲ 지난 2012년 10월28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세금소송 관련 배임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12년 10월28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세금소송 관련 배임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9년 전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보면 자신들 역시 논리의 일관성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를 통해 정연주 사장 해임요구안을 낸 다음 날짜인 지난 2008년 8월6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정 사장은 노무현 정권 내내 KBS를 정권의 수호견으로 실컷 전락시켜 놓고는 이제 와서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사장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하고 있다”며 “정연주씨는 당장 스스로 물러나는 게 그나마 마지막 추한 꼴을 덜 보이는 길”이라고 썼다.

조선은 KBS 이사회가 경찰병력을 동원해 내부의 반대를 막고 정연주 해임제청안을 가결한 다음날짜인 그해 8월9일자 사설에서는 “국민은 이번 해임 제청에 이르기까지 정연주씨가 버티는 모습을 보며 잘못된 공영방송 수장 인사가 얼마나 돌이키기 힘든 것인지를 절감했다”고 했다. 조선은 “국민이 보기에 이만한 사람이면 정파적 이해를 떠나 ‘정연주 방송’의 좌편향적, 비도덕적, 분열적 틀과 무능 경영을 벗고 KBS 정상화를 이끌 수 있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노골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그러면서 9년 뒤 조선일보는 KBS MBC 사장을 물러나라는 압박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연주 전 사장은 감사원 검찰까지 동원한 해임처분과 검찰수사까지 당했으나 재판결과 해임은 취소 판결이 났고, 배임 혐의 기소는 무죄로 결론났다.

이를 두고 정연주 사장 시절 탐사보도팀에서 4년간 기자로 있었던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주장은 말이 안된다”며 “KBS를 경찰까지 동원해 장악한 당사자(이명박 정권)로서 그런 얘기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했다. 성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가 정연주 사장시절 KBS를 장악하려 했다는 것 자체도 역시 말이 안된다”며 “정 사장의 경우 연임과정을 반대한 경우는 있었지만 처음에 선임과정에서 반발이 있었거나 문제된 것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 재임 시절에 대해 성 본부장은 “탐사보도팀에 4년 동안 있는 동안 내내 사장이나 본부장이 제작과 관련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정 사장의 아들 병역문제까지 우리가 건드렸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송장악이라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성 본부장은 “송두율 얘기를 하는데 아직까지 ‘빨갱이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느냐. 좌우의 문제로 매사를 바라보니까 탄핵 당하는 대통령을 여전히 치맛자락 붙잡고 살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지 말고, 자유한국당은 언론노조 대표와 토론회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 조선일보 2017년 8월9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7년 8월9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08년 8월6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08년 8월6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사설 주장에 대해 성 본부장은 “조선일보는 그때그때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써왔다”며 “정권이 방송 장악한다고 하느니 마느니 하는데, 당시 나가라고 한 것은 뭔가. 정론지가 되려면 최소한 비판의 기준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8년 전에 어떤 기사를 내보냈는지나 돌이켜보라”고 비판했다.

MBC 보도국장 출신이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명박근혜 때 공영방송이 참담하게 무너졌다는 것은 제 정신 사람에게는 너무 당연한 얘기”라며 “증거를 제시할 필요성도 못느낄 만큼 많고,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MBC가 얼마나 시청자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지, 언론사로서 지위를 잃은지가 언제인가”라며 “그런데 신문사 세무조사가 있었던 16년 전 얘기에 빗대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MBC의 노무현 탄핵 방송의 편파성을 지적받았다는 조선일보 주장에 대해 김성수 의원은 “제가 보도 책임자였고, 탄핵방송했던 장본인”이라며 “정권 사주에 의했다거나 정권 코드에 의해 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탄핵방송이 정권 장악의 반증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정권으로부터 그런 압력 받아본 사실도 없고, 압력 느껴본일도 없다”며 “보도책임자로서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압력에 의해 뉴스를 방송한 것이 아니며, 당시 탄핵의 부당성은 헌재 판결로 판명났으며, 이미 그 전에 온 국민의 반응으로 다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총선 결과 어땠느냐”고 역설했다.

김 의원은 “당시 탄핵 반대 여론이 8대2, 9대1 정도였는데, 언론이 그 여론을 대변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권 사주에 의한 방송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MBC 사장 퇴진 요구가 부당하다는 조선일보 주장에 대해 김 의원은 “MBC 사장들은 이미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강제로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다”라며 “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하고, 검찰 고발당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무엇보다 내부 구성원이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고 있지 않느냐. 나가라는 얘기를 마구 하고 있는데 왜 우리한테 장악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성수 블로그
▲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김성수 블로그
조선일보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조선일보가 당시 자신들의 논조와 달랐다는 이유로 정권에 의해 장악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국민 뜻이 어디있었는지 여론이 어땠는지 되돌아보라”고 비판했다.

MBC 보도국 정치부장 및 해설위원 출신의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원내대변인)은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의 자율성 존중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는 의지는 밝히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이 제출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통과를 위한 노력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노무현 정부와 비교하는 주장에 대해 “우선 지난 9년간 자신들이 해왔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옳다”며 “2004~2005년의 행위에 대한 책임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주된 책임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 지난 9년 동안 공영방송을 망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 이전에 의심이 된다는 행동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
▲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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