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전교조의 1차 2차 시국선언 모두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2011년 여름만 해도 결과는 달랐다. 표결결과 무죄 의견이 7명, 유죄 의견이 6명이었다. 무죄는 어떻게 유죄로 바뀌게 됐을까.

2011년 여름, 해당 사건의 주심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었다. 김 전 대법관은 자신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자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뜻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 무죄 의견을 냈던 A 대법관이 다수의견 초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 것. A 대법관이 의견을 바꾸면 전교조 시국선언은 유죄가 된다.

그러던 와중 또 하나의 변수가 생긴다. 유죄 의견을 냈던 B 대법관이 의견을 바꾸고 싶다고 알려온 것이다. A 대법관이 빠진 자리에 B 대법관이 들어오면 무죄 결론은 그대로 유지된다. 김 전 대법관은 B 대법관의 입장변화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재표결을 열었다.

대법관들이 한 명씩 의견을 밝혔다. A 대법관은 예상대로 유죄로 입장을 변경했다. B 대법관의 차례가 왔다. 그의 입에서 예상치도 못한 단어가 나왔다. “유죄.” 무죄-유죄 의견은 7대 6에서 6대 7로 뒤집혔다. ‘이용훈 코트’(대법원) 에서 다수가 소수로, 소수가 다수로 바뀐 유일한 사례다. 김 전 대법관은 B 대법관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최근 펴낸 “대법원, 이의있습니다”(창비)에는 이같은 대법원의 ‘뒷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초점은 2005년~2011년 이용훈 코트에 맞춰져 있다. 권 국장은 당시 제청된 대법관들 중에서도 소위 ‘독수리 오형제’로 알려진 ‘독수리 오남매’에 주목했다. 다섯 중 둘이 여성이다.

권 국장은 이들에 대해 “누구라도 집합명사로 불리는 건 불편한 일”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이 다섯 대법관이 따로 또 같이 진보 혹은 중도진보의 입장에 서서 다수에 맞서는 소수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이 그 주인공이다.

권 국장은 이용훈 코트 6년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용훈 전 대법원장만 16차례 만났다. 다섯 대법관도 적게는 한 두차례, 많게는 아홉 차례 만났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녹취록이 40개에 이른다. 이번에 펴낸 “대법원, 이의있습니다”는 그 녹취록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 하필 이용훈 코트였냐”는 질문에 권 국장은 “이용훈 코트가 유독 공정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섯 대법관의 소수의견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다. 논쟁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양성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권 국장을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이다.

▲ 사진=권혁재 (창비 제공)
▲ 권석천 JTBC 보도국장. 사진=권혁재 (창비 제공)

-JTBC 보도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오랜만에 글로 만나는 것 같다. 사법개혁에 관한 내용이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뭔가.

“이용훈 코트 때인 2009~2010년 중앙일보 법조 팀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관여, 강기갑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공중부양 무죄, MBC PD수첩 무죄 등이다. 판결이 나올 때마다 논란이 됐다. 보수진영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진보진영에서 반발하고 진보진영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보수진영이 반발했다. 법원이 갈등의 한복판에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나오는 소수의견을 눈 여겨 보면서 좀 더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출범한 이용훈 코트가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겪은 갈등도 궁금했다.”

-이용훈 코트 가운데서도 다섯 대법관에 주목하고 있다. 나머지 대법관들이 서운했겠다.

“소수에 대한 애정, 소수에 대한 지지, 북돋움이 필요하다. 책에서 다섯 대법관의 배경을 쓴 것은 이들이 보수적인 주류 사회에서 싸워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싸우려고 안 했으면 좌절도 안 한다. 그 다섯 명은 끝까지 싸우려고 했다. 그 개개인을 칭찬하는 건 아니다. 다수의 힘 때문에 소수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좌절하게 되는 상황은 늘 발생한다. 대법원도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당사자들이 취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쉽지 않았다. 박시환 전 대법관을 찾아가서 다섯 대법관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 이건 내가 할 게 아닌가보다 하고 마음을 잠시 접었다. 그러다 2015년에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회고록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찾아가서 책은 차후의 문제이고 당시를 기록으로 남기자고 수차례 제안했다. 결국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수락했다.”

-인터뷰나 취재 과정은 어땠나?

“지난 해 3월부터 인터뷰를 했다. 매주 금토일 2~3시간씩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람들의 속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 여전히 분개하고 후회하고 응어리 져 있는 것들이 있었다.”

▲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최근 출간한 "대법원, 이의있습니다"(창비)
▲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최근 출간한 "대법원, 이의있습니다"(창비)

-책을 보면 다수의견, 소수의견, 보충의견 등 판결 내용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판결문을 다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2~3시간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하루 정도는 준비를 해야했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사람이 정말 자기 생각을 썼구나’ ‘몸과 마음을 기울여서 썼구나’ 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대법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판결문이 딱딱한 법 논리만 있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 심지어 감정까지 들어가 있다.”

-책이 양승태 코트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다. 비판의 수위도 낮지 않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과거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면 현재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 양승태 코트를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양승태 코트 구성원들이) 지금도 활동하는 사람들이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의 의미가 ‘현재를 바꿔보자’는 것에 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는 없다. 팩트에 기반해 양승태 코트에 대한 평가를 썼고 그 평가가 합리적인 선을 넘은 ‘비난’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이용훈 코트와 다섯 대법관에는 감정이 이입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나?

“녹취록을 책으로 재정리 하면서 그들과의 거리 확보가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취재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을 칭찬하거나 띄워주기 위해 쓴 책은 아니다.”

-2011년 11월 있었던 박시환 전 대법관과 김지형 전 대법관 퇴임식 장면은 울컥할 정도였다.

“마지막에 박시환, 김지형에 대해 썼던 건 소수 입장에 섰던 사람들이 느꼈던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독수리 오형제가 한명씩 떠나가고 박시환, 김지형이 제일 마지막에 떠났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알면서도 소수라는 한계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었던 좌절,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옳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 권석천 논설위원(가운데 메모하는 사람)이 지난해 11월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중고등학생들의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권석천 논설위원(가운데 메모하는 사람)이 지난해 11월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진행중인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중고등학생들의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소수, 다양성을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뭔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13:0 으로 판단이 나와 버리면 숨이 막힌다. 특히 국가권력이나 기득권 쪽 논리가 13으로 나오면 더 그렇다. 세상에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대법원이 어떻게 보이겠나. 저기에 나와 같은 의견은 하나도 없구나. 저기엔 토론이 없구나. 그러면 사람들이 재판에서 정의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대법원 구성이 다양화돼야 한다.”

-책을 보면 언론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법조 기사를 보면 속보경쟁이 대부분이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먼저 쓰는 기자가 훌륭한 기자로 평가받는다. 기자들이 법원으로 가야한다. 공개된 법정에서 서로 공방하는 것을 취재하고 그걸 시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검찰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부각시키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공정하지도 않다. 그런 과정에서는 누구든지 여론재판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취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뒷 이야기가 있나?

“특히 주목했던 건 검찰의 대법원장 흔들기였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불구속재판 원칙과 공판중심주의는 검찰 조직의 반발을 불렀다. 당시 검찰이 이 전 대법원장을 흔들자 언론이 덩달아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이용훈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이라고 세워놓고 검찰이 이렇게 흔들어도 되는 겁니까’라고 어렵게 묻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개 여부를 두고 가장 고민이 됐던 건 전교조 시국선언 건이다.”

-지금 시점에 책을 출간한 이유가 있나?

“책을 준비할 때는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탄핵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정부가 대법원장을 지명하는 거였다. 여소야대의 상황이긴 했지만 또 보수적인 사법부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양쪽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다. 지금은 책을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책의 목적은 같다. 오는 9월에 대법원장이 바뀌니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썼다.”

-지난 번 책 “정의를 부탁해”도 그렇고 이번 책에서도 ‘정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권석천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먼저 ‘정의를 부탁해’는 제가 지은 제목이 아니다.(웃음) 부담스러운 질문인데, 제가 생각하는 정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이 책을 쓰면서 고민하고 깨어있고 내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어느덧 부정의가 된다는 걸 느꼈다. 다섯 대법관도 스스로와 싸우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했다. 싸움의 과정은 힘들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런 게 정의로운 게 아닐까 한다. 어느 누구를 특정해서 정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정의로운 것이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정의의 반대편에 서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한계와 상황의 한계에 맞서 싸울 때 그나마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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