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발하게 사는 사람이지, 숨어 사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 후배들도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 이묵 대사 중)

이묵은 ‘바지씨’다. ‘트렌스젠더’나 ‘레즈비언’, ‘FtM(Femail-to-male)’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그들은 스스로를 ‘바지’와 ‘치마’라고 불렀다. 남자는 바지만, 여자는 치마만 입던 시대라 그랬다. 이묵은 태어날 때부터 한순간도 자신을 여자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묵은 숨어야 했다. 길거리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다니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택시 운전사로 일할 당시엔 여성 운전사끼리의 모임인 ‘여운회’ 동료들과의 만남에 순경들이 따라왔다. 박정희 정권 시대, ‘데모를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순경들은 “단합이 잘 되니까 막아야 한다”며 모임 장소를 둘러싸고 그들을 ‘여자 깡패’라 꾸짖었다.

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 이묵씨.
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 이묵씨.
상경한 후 그는 ‘김승우’라는 가명을 썼다. 어머니의 한복 속치마를 잘라 옆구리에 운동화 끈을 매달고 가슴을 조여 맸다. 아직도 매일 아침 이묵은 몸의 굴곡을 숨기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짧게 깎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이영은 이묵의 ‘후배’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걷는 서로를 ‘선배’와 ‘후배’로 부른다. 이영은 이묵의 자취를 취재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묵에서 시작해, 소수를 ‘불온한 집단’으로 규정짓는 자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영화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묵은 바지씨로, 이영은 레즈비언으로 불린다. 명칭이 바뀐 만큼 시대도 바뀌었지만 마녀사냥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녀사냥꾼의 역할을 자처한 건 ‘어버이연합’, ‘반동성애기독교단체’ 등 자칭 ‘애국보수집단’이다. 태극기와 애국가를 등에 업고 종북, 동성애, 세월호 특별법을 타도하는 게 목적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스틸컷.
사냥꾼의 논리는 종북, 동성애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한민국에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을 반정부로 선동한다는 것이다. 민영화 반대와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집회에서 그들은 어버이연합의 이름으로 종북 빨갱이를 처단하고, 퀴어문화축제에선 기독교 교리를 명분으로 성과 섹스에 중독된 에이즈 전염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방언을 터트린다. 세월호 추모식에선 박사모로 둔갑해 “언제까지 교통사고를 물고 늘어질 거냐, 국민에게 반정부 선동 마라”고 힐난한다.

이영의 카메라는 그들의 사냥 사이를 투박이 오간다. 지난 세월 우리 사회를 관통해온 어린아이 생떼 같은 지겨운 말들이 반복된다. ‘넌 네 아비, 어미에게도 이러냐’, ‘동성애자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종북 척결해 자유통일 이룩하자’, ‘선동하지 마라’, ‘언제까지 세월호 얘기할 거냐’ 그리고 ‘박근혜는 죄가 없다.’

대한민국을 갈등케 하는 것들을 처단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애국의 마음으로 기꺼이 나서는 공간엔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다.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추모해요. 추모해. 이제 됐죠?”라고 했으면서, 몇 개월 뒤 퀴어 퍼레이드에선 “아직 세월호 추모기간인데 축제할 때냐”고 비난하는 연사는 같은 사람이다. 정작 동성애자와 유가족들은 마스크를 쓰고 말없이 플래카드와 촛불을 꺼내든다.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스틸컷.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스틸컷.
이영은 “세상은 보호받을 사람과 보호받지 못할 사람을 나누며 공존하기 싫어한다”고 말한다. 고성과 욕설로 상대의 존재를 지우는 건 누구인가? 보호받을 권리조차 박탈하는 건 누구인가? ‘애국’을 부르짖는 그들이 정작 등한시하는 이 나라의 국민은 누구인가?

이영의 카메라가 다시 한번 대상을 바꾼다. 이번엔 일본 미야기현에 사는 레즈비언 부부 논과 텐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난 후, 가족만이 실종신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커밍아웃을 했다. 이해를 바란 것이 아니라, 관계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

성소수자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선 것과 같은 이유다. ‘소수의 요구’를 혐오하는 것을 너머 ‘소수의 존재’를 아예 지우려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야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 이묵(왼쪽)과 감독 이영.
영화 ‘불온한 당신’의 주인공 이묵(왼쪽)과 감독 이영.
“Anger가 좀 더 길어져 Danger가 되면 우리가 속해있는 시민 사회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우리가 추구해온 교양의 시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언젠가 한 여자 아이돌의 역사의식 부재 논란이 있던 때, 손석희 앵커가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했던 말이다. ‘불온한 당신’이 비추는 애국 연사들의 울부짖음에도 이 문장이 꽤나 설득력 있게 투영된다.

그들은 왜, 고작 그런 논리로밖에 화를 내지 못하나. 왜 먼저 공감하지 못하나. 겨우 그런 논리에 뭘 저렇게까지 에너지를 쓰나. 세상에서 화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싸워 이겨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은 강약약강. 싸워 이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드는 소수에겐 유독 분노의 질량과 밀도가 높아지는 비겁함에 화가 난다. 그들이 ‘불온하다’고 규정하는 대상은 늘 권력의 반대편에 있다. 촛불만 들고 길거리에 나선다. 그래서 영화 속 소수는 애국 보수의 질타 아래, 늘 ‘윗분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포스터.
▲ 다큐멘터리 영화 ‘불온한 당신’ 포스터.
‘불온한 당신’이 크랭크 업(crank up)한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촛불이 승리했다는 희열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드디어 우리도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하는 정부를 갖게 됐다. 소수자 이슈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거리에서 표류하는 소수가 있다. 차별금지법은 100대 국정과제에서 제외됐고, 동성애 군인 처벌 규정도 멀쩡하다. 군내 동성애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한 육군 참모 총장도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세월호는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애초에 왜 가라앉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달라진 건 하나지 전체가 아니다. ‘불온한 당신’을 보고난 후 피로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우리나라는 안 돼’라고 주저앉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말미, 일흔이 넘은 레즈비언 이묵은 가슴을 조이며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어. 괴로워도 말 못 했지. 그런데 앞으론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어. 우리 후배들은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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