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판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본부·본부장 김연국)가 지난 7일 공개한 자료는 충격적이다. 카메라 기자들을 정치성향과 2012년 파업 참여 여부 등으로 4단계로 분류했고, 최하등급을 받은 기자들은 ‘주요 관찰 대상’ ‘격리 필요’ 등으로 세세하게 구분했다. 공영방송에서 기자들의 ‘성향분석’이 왜 필요했던 걸까. 이번 파문이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번지는 이유다.

MBC본부는 이 자료를 공개하며 “한국 언론 사상 최악의 노동탄압이 자행된 공영방송사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노조 파괴 공작의 음모가 빙산의 일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MBC본부가 공개한 ‘성향분석표’를 보면 노조 파괴 의혹 이상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조 파괴 시도 행위는 그 자체로 부당노동행위이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보면 기자 성향분석과 함께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노조와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개개별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파업에 적극가담 한 이들을 X등급으로 분류했고 이들을 “절대 격리가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했다. MBC본부는 기자회견에서 “최하등급인 ‘X부류’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보도국 밖으로 밀려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반헌법적 행위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MBC 블랙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본부를 비롯한 구성원들은 경영진과 간부가 이런 ‘성향분석’을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기자들에겐 보상을 주고, 그렇지 않은 기자들에겐 주요 보직이나 부서에서 배제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이 들어선 이후 현재 김장겸 사장에 이르기까지 해직과 징계의 칼날이 횡행했던 대표 언론사가 MBC 아니었던가. MBC본부의 의혹제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MBC본부가 이번에 공개한 내용은 카메라기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MBC 안팎에선 과연 카메라기자들만 대상으로 이런 ‘성향분석’을 했겠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사 내에 다양한 직군들이 있는데 굳이 카메라기자만 대상으로 ‘성향분석’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MBC는 8일 보도본부 명의로 입장문을 내어 “회사 경영진은 물론 보도본부 간부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문건”이라고 반박했지만 진상규명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MBC판 블랙리스트 의혹’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또 다른 이유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여파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같은 의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자신들의 ‘국정기조’에 부합하는 인사나 단체들은 지원하면서, 정부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은 박대하고 탄압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헌법을 위반하는 일을 기획하고 직접 가담했다. 1심 재판에서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지만 형량이 가볍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만큼 블랙리스트가 가진 반헌법적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지를 많은 시민들이 알고 있다는 의미다.

‘MBC판 블랙리스트’ 파문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가장 보장돼야 할 언론사, 그것도 공영방송사에서 이 같은 의혹이 불거졌다는 것만으로도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MBC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해당 문건을 누가 작성했으며, 어떤 보고체계를 거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런 문건이 나오게 됐는지 등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의혹을 부인만 할 것이 아니라 진상조사를 위해 MBC가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블랙리스트가 민주화 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건 우리 사회 민주주의 토대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MBC판 블랙리스트’ 의혹은 언론사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차원과 결이 다르다. MBC가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상암동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김장겸 사장 등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