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보도국 경제부 기자들이 윗선에서 특정 논조로 기사작성을 요구했다고 폭로해 큰 파장이 예상된다.

7일 MBC 보도국 경제부 기자 18명은 기명성명을 통해 “최근 경제부에 떨어진 대표적인 ‘청부제작’ 지시”라며 ‘문화일보 1면대로 제작해라’ ‘최저임금 인상을 까라’ ‘표적증세로 비판해라’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경제부 기자들은 “탈원전부터 증세·최저임금까지,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이슈에 대한 일방통행식 기사 요구는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경제현상은 항상 양면성이 있고, 이해당사자간 대립이 첨예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균형있게 다뤄야 함은 물론이고, 복잡한 수치에 숨겨진 함의(含意)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전한 뒤 “현실은 어떠한가, ‘탈원전’이라는 화두에 대해 보도국 수뇌부는 어김없이 ‘까는 기사’만을 요구한다”고 폭로한 뒤 “나라마다 복잡한 고민과 상황과 논의가 있음에도 ‘원전 증설은 세계적 흐름’이라는 편향된 신문 기사를 그대로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정 세력 혹은 개인의 설익은 선입견을 전파에 태우는 건 심각한 방송 사유화”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경제부 기자들은 “왜 최저임금을 올리는지, 이번 인상으로 인해 어떤 사회적 효용이 있는지는 철저히 외면한 채 헐뜯기에만 집중했다”며 “단지 이번 인상을 핑계삼아 해외로 공장을 옮긴다는 일부 방직(紡織) 기업들의 사례만이 부풀려진 채 전파를 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계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을 다루려면, 노동소득의 하한(下限)에서 허덕이는 피고용인들의 목소리도 담았어야 옳다”고 주장했다.

경제부 기자들은 ‘청부제작’ 지시의 과정도 문제삼았다. 이들은 “청부제작 지시의 근거는 하나같이 보수언론과 경제지의 조간제목을 그대로 따 온 것”이라며 “특정 신문 몇 면의 기사를 그대로 주문하거나 심지어 글쓴이의 주의·주장이 뼈대인 칼럼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경제부 기자들은 최근 MBC 안팎에서 계속되고 있는 김장겸 사장 퇴진에도 힘을 실었다. 이들은 “수년간 보도부문을 장악하고 현 보도국 체제를 만들어 놓은 장본인 ‘김장겸 사장’의 퇴진 또한 분명히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기명성명에 이름을 올린 18명의 기자들 가운데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소속이 아닌 기자들도 있다.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아래는 성명서 전문이다. 

‘문화일보 1면대로 제작해라’ ‘최저임금 인상을 까라’ ‘표적증세로 비판해라’

최근 경제부에 떨어진 대표적인 ‘청부제작’ 지시다. 불순한 의도가 덧칠된 제작 주문이 거의 매일 내리꽂혔다. 탈원전부터 증세*최저임금까지,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이슈에 대한 일방통행식 기사 요구는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공정성과 불편부당함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경제 이슈는 특유의 엄밀함이 요구된다. 경제현상은 항상 양면성이 있고, 이해 당사자간 대립이 첨예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있게 다뤄야 함은 물론이고, 복잡한 수치에 숨겨진 함의(含意) 또한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탈원전'이라는 화두에 대해 보도국 수뇌부는 어김없이 ‘까는 기사’만을 요구한다. 나라마다 복잡한 고민과 상황과 논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증설은 세계적 흐름’이라는 편향된 신문 기사를 그대로 강요한다. 특정 세력 혹은 개인의 설익은 선입견을 전파에 태우는 건 심각한 방송 사유화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도 마찬가지다. 왜 최저임금을 올리는지, 이번 인상으로 인해 어떤 사회적 효용이 있는지는 철저히 외면한 채 헐뜯기에만 집중했다. 단지 이번 인상을 핑계삼아 해외로 공장을 옮긴다는 일부 방직(紡織) 기업들의 사례만이 부풀려진 채 전파를 탔다. 한계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을 다루려면, 노동소득의 하한(下限)에서 허덕이는 피고용인들의 목소리도 담았어야 옳다.

더 참담한 건 그 과정이다. 통찰력 있는 사고에 의한 결론도 아니요, 취재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니다.

‘청부 제작’ 지시의 근거는 하나같이 보수 언론과 경제지의 조간제목을 그대로 따 온 것이었다.

특정 신문 몇 면의 기사를 그대로 주문하거나 심지어 글쓴이의 주의*주장이 뼈대인 칼럼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차라리 무능 때문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의도’다. 실제 사실이 그러한지, 따져볼 생각도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본인들의 자리보전과 정치적 유불리에만 골몰한 채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베끼라고 지시하기에 급급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정부 정책이라면 금과옥조로 여기던 현 수뇌부가, 그 짧은 시간에 비판정신을 찾았다고 믿을 사람들은 없다. ‘비판’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썼을 뿐, 결국 취재 현장에서 신성시 여겨야 할 ‘팩트’는 그들의 욕심으로 재단돼 , 정치적 분장(扮裝)의 소도구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시사제작국의 PD수첩과 2580은 제작 자율성 침해에 항거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간판 프로그램들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보고자 택한 고육책임에도 회사는 또다시 대기 발령을 남발하며, 정당성 없는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

기사는 건전한 사유와 격의없는 토론에서 꽃을 피운다. 따라서 균형을 잃은 주장을 기사에 투영하려는 집단은 편집권을 손에 쥘 자격이 없다. ‘청부 제작’ 지시가 난무하는 현 보도국 역시 이미 회생 불가능한 심정지(心停止) 상태다.

우리는 MBC 뉴스라는 소중한 자산을 청부 지시로 얼룩지게 한 문호철 보도국장과 허무호 편집센터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한다. 물론, 수년간 보도부문을 장악하고 현 보도국 체제를 만들어 놓은 장본인

‘김장겸 사장’의 퇴진 또한 분명히 요구한다.

부당한 제작 지시가 있을 경우 단호히 거부할 것이며 청부 내역을 토씨 하나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공개할 것이다. 아울러 최악으로 치닫는 뉴스에 대한 논의의 장을 위해 다른 보도국 구성원들에게도 비상 회의의 소집을 제안한다.

2017년 8월 7일 보도국 경제부

김경호 김성현 김장훈 김재경 김우철 박민주

박종일 박충희 양효걸 염규현 우경민 이준범

조국현 조윤정 조현용 정연철 정용식 한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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