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12년전 황우석 사태로 청와대 보좌관에서 사퇴한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기용하자 과학기술계 뿐 아니라 당시 황우석 논문조작을 첫 보도한 PD수첩 제작진도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인사 중 최악의 인사이며, 철회할 수 있으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는 지난 7일 차관급 인사에서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박 신임 본부장에 대해 “식물분자생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서 탄탄한 이론적 기반과 다양한 실무경험을 겸비하여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핵심과학기술 연구개발 지원 및 과학기술분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약 12년 전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이른바 황우석 난자 매매 및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이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조작으로 밝혀진 2004년도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저자(제13저자)로 참여했으며, 순천대 교수 시절 황 교수와 공동 프로젝트 연구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2004년 1월 청와대 보좌관에 임명된 이후 황 교수와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이른바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약칭) 모임을 구성해 황 교수에게 정부가 지원하도록 적극 나섰다. 그는 2005년 초 황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가 오염됐다는 통보를 받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등 정부 책임론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노 대통령이 PD수첩의 취재과정을 비난하는 주장을 편 것도 박 본부장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박 본부장은 서울대 조사위의 조사결과 발표를 전후로 보좌관 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별도의 입장 표명이나 사과도 여지껏 한 번도 하지 않았다.

▲ 황우석 교수가 지난 2005년 5월25일 서울 순화동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열린 황 교수 연구지원 종합대책 회의가 끝난 후 관계자들과 악수하면서 밝게 웃고 있다. 왼쪽은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사진=연합뉴스
▲ 황우석 교수가 지난 2005년 5월25일 서울 순화동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열린 황 교수 연구지원 종합대책 회의가 끝난 후 관계자들과 악수하면서 밝게 웃고 있다. 왼쪽은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사진=연합뉴스
황우석 사태를 최초로 알린 MBC PD수첩 제작진은 이번 인선을 이해할 수 없다며 철회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PD수첩 CP(책임프로듀서)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해가 안간다”며 과거 박기영 본부장의 청와대 행적을 떠올렸다. 그는 PD수첩과 관련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 올린 글을 예로 들면서 “그 글을 보면, 박기영 보좌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드러난다”며 “PD수첩이 줄기세포 조작됐다는 것을 취재하고 있을 때 황우석 박사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웠을 것이고, 그런 것을 박기영 보좌관(본부장)에게 불평했을 것이고, 박 보좌관(본부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PD는 그 근거로 지난 2005년 11월2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기고문 ‘[대통령의 기고]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를 들었다. 다음과 같다.

“난자 기증을 둘러싼 문제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며칠 후,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취재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면서 무슨 대책을 의논해 왔다. 이 자리에서는 취재의 동기와 방법에 관하여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호의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인물이 과학기술보좌관으로 바로 당시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이었다.

최 PD는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 올린 글에서 말도 안되는 취재를 PD수첩이 했다고 썼는데, 적어도 청와대의 과학기술보좌관이라고 하면,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객관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며 “PD수첩이 사사건건 왜곡보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런 취재하는지 알아보면서 황우석 박사 팀이 어떤 잘못과 문제점이 생기고 이뤄지는지를 점검해야지 황 박사 말만 믿고 그렇게 보고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 2005년 12월5일 MBC PD수첩의 최승호 CP(왼쪽)과 한학수 PD가 기자회견을 열어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2005년 12월5일 MBC PD수첩의 최승호 CP(왼쪽)과 한학수 PD가 기자회견을 열어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 PD는 “결국 이런 일들 때문에 나중에 참여정부가 어마어마한 창피를 당한 것 아니겠느냐”며 “박 본부장은 황우석 사태를 발생시킨 당사자인데, 당시에도 노 대통령이 박 본부장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복귀시키며 감싸는 모습을 보여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어 “12년 지나 또 그 분이 중용된다고 하니 ‘시대를 거꾸로 살아가나, 촛불로 이뤄진 민주정부인데’라는 생각이 든다”며 “물론 현 정부 들어 다른 많은 것들에서 개혁이 이뤄지고 희망이 보이는 부분이 많지만 이런 인사는 우리 자신은 물론 많은 시민들을 실망시키는 인사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최 PD는 “박 본부장 본인 자신이 고사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문 정부에 들어와 무슨 좋은 인상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 본부장 기용을 두고 “대선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했다해도 (박 본부장의 과거) 잘못을 걸러내지 못하고 공적인 인사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거듭 비판했다.

최 PD는 이번 인사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한 많은 인사 중에서 박기영 본부장 인사는 최악의 인사”라며 “비판받은 인사와 박수받은 인사도 많이 있지만, 박기영 인사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 최악의 인사인 만큼 재고할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로 태어난 정부에 맞지 않는 인사인 만큼 철회할 수 있으면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PD는 “황우석 사태가 과학계에 굉장한 충격을 줬다”며 “소장 과학자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게 각인돼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제작진의 한 팀이었던 한학수 PD도 8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인사는 철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PD는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박 본부장에 대해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일원으로 황우석 교수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던 인물”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었어야할 임무를 망각하고 오히려 더 진실을 가려 참여정부의 몰락에 일조했던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한 PD는 “나는 왜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물을 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 과학계의 슬픔이며, 피땀 흘려 분투하는 이공계의 연구자들에게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정부 출연 과학기술연구소 소속 과학기술연구자 조합원들로 구성된 민주노동 공공운수노조 산하 공공연구노동조합(위원장 김준규)도 이번 인사 철회를 촉구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박 본부장에 대해 “황우석 사태를 불러일으킨 핵심 인물로, 온 나라를 미망에 빠뜨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장본인”이라며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문재인 정부는 정치권을 맴돌며 그럴듯한 ‘4차 산업혁명’의 미사여구와 얄팍한 ‘쇼’로 장밋빛 환상을 설파하던 자를 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할 사람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공공연구노조는 “아무리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무시하고 정권과 관료들의 기호에 따라 유행처럼 연구개발 프로그램과 과제를 기획한다 하더라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며 “황우석에서부터 광우병, 천안함, 4대강, 가습기살균제, 삼성 백혈병, 세월호, 메르스 사태, 사드배치, 원전안전, 활성단층 문제까지 고질적으로 반복되었던 과학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고 노력해 온 과학기술자와 시민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공연구노조는 “과학기술의 공공성은 사회가 결정한 공공선을 과학과 기술의 영역 내에서 실현하는 책무성과 과학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행위를 사회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되게 하는 윤리성을 그 전제 조건으로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책무성과 윤리성을 갖추지 못한 자의 혁신본부장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일말의 양심과 책임을 느낀다면, 박기영 교수 스스로 사퇴함으로써 본인으로 인해 다시 발생한 사회적 논란을 종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비판을 겸허히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기영 교수(의 과거 행적)에 대해 우리도 잘 안다”며 “비판도 겸허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그 자리는 관련 R&D(연구개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경험이 있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운, 중요한 일이어서 그럼에도(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과거 문제점) 부분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때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를 안해서 사태를 키웠던 전력이 있다면 경험이라는 게 큰 의미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 대변인은 “(그에 대해) 청와대가 바로 입장을 낼 수는 없다”며 “과학기술 R&D 컨트롤타워 경험이 있으신 점을 고려한 인사이고 현재 어떤 입장을 낼 단계가 아니다. 비판은 잘 겸허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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