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8:30

A씨는 6일 밤을 서울종합법원청사 2층 입구에서 노숙으로 지새웠다. 7일 오후 열릴 ‘삼성 뇌물 재판’ 방청권을 얻기 위해서였다. A씨는 6일 오후부터 대기줄이 늘어서 있다는 기사를 읽자마자 함께 방청할 동료들과 돗자리를 들고 법원으로 갔다.

저녁 8시30분 청사 정문 입구엔 가방 39개가 일렬로 나열돼 있었다. 가방마다 선착순번이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삼성 재판이 열릴 중법정 일반인 좌석 수는 최대 33석이다. 6명 이상이 빠지지 않는다면 A씨가 방청을 할 가능성은 요원했다.

▲ 6일 밤 서울법원종합청사 2층 입구 앞 풍경. 사진=반올림 제공
▲ 6일 밤 서울법원종합청사 2층 입구 앞 풍경. 사진=반올림 제공
▲ 6일 밤 서울법원종합청사 2층 입구 앞 풍경. 사진=반올림 제공
▲ 6일 밤 서울법원종합청사 2층 입구 앞 풍경. 사진=반올림 제공

법원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10명 가량이었다. 한 무리는 삼성그룹 전 미래전략실 직원, 한 무리는 기자, 또 한 무리는 ‘친박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 청사 문이 열릴 때까지 돗자리 위에서 대기했다. A씨는 “1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염보다 친박 시민들의 집단 욕설 때문이었다. 바로 앞 돗자리에 자리잡은 친박 시민들은 밤 새도록 A씨 무리를 향해 폭언을 가했다. “얼마나 더 돈을 받으려고 이 짓을 하냐”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다. A씨는 진보성향 단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구성원이었다.

7일 오전 7:00

법원 입구 유리문은 오전 7시에 열렸다. 가방만 두고 사라졌던 사람들도 오전 7시 경에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다. 대기자들은 가방 순서 그대로 법원 내 5번 출입구 앞에서 대기했다. 대기자는 점점 불어나 두어 시간 내 60번을 넘어섰다.

이들은 입장이 허가될 오후 1시30분까지 5~6시간을 대기했다. 친박 시민들은 법원 내에서도 반올림 혹은 개인으로 온 다른 시민에게도 시비를 걸었다. 지난 밤부터 법원에 대기한 B씨는 “세상에 있는 욕은 다 들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빨갱이들” “이게 나라냐”부터 성적 비하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나왔다.

괴롭힘은 반올림에 집중됐다. 친박 시민들은 복도를 오가면서, 옆에서 같이 대기하면서, 혹은 3~4명이 동시에 반올림 자리를 둘러 싸면서 수시로 반올림을 향해 “돈 받아 먹으러 쳐 나왔냐” “사회주의 북한으로 가라”는 말을 쏟아냈다. 대학생 회원에겐 “어린 놈의 XX들이 뭐하길래 이 XX이야” 등의 욕설, 뇌종양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에겐 장애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백혈병을 앓다 숨진 딸을 둔 황상기씨에겐 “너네 10억 받지 않았냐” “또 돈받으러 나왔냐”고 비아냥거렸다.

오전 11:00

오전 11시, 청사 서관 입구 앞에서 ‘이재용 부회장 엄벌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황씨 등이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모은 시민 2729명의 ‘이재용 엄벌 촉구 시민청원서’ 제출 발표 기자회견이었다. 반올림,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등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주최했다. 펜 기자 두 명, 영상 기자 한 명, 사진 기자 서너 명이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기자회견 직후 서울중앙지법 종합민원실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기자회견 직후 서울중앙지법 종합민원실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황씨는 10분 내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시민청원서를 들고 서관 2층 종합민원실을 갔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할 무렵부터 제출 후 대기줄에 복귀하기까지 친박시민들은 황씨 옆에서 “재벌되기 쉬운 줄 알아” “남의 돈을 공짜로 먹으려고 드느냐”라며 소리쳤다.

오후 1:00

오후 1시 경부터 폭행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크고 작은 말싸움은 오전부터 빈번했지만 주먹다짐까지 발생한 건 오후부터다. 이날 서초경찰서엔 관련 폭행 사건 두 건이 접수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기자였다. 뉴시스 김아무개 기자는 친박단체 소속 5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김 기자는 반올림 활동가에게 인신 공격을 퍼붓던 친박 시민들을 제지하던 오마이뉴스 기자를 촬영하다가 “니가 뭔데 사진을 찍냐”는 소리를 듣고 시비가 붙었다. 친박 시민 대여섯 명이 둘러싸고 위협하는 과정에서 김 기자가 한 시민을 밀어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입건된 남성은 자신도 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사진기자 C씨는 “내 카메라에 노란 리본(세월호 추모 리본)이 붙은 것을 보고 한 어르신이 ‘시체팔이 기레기’라고 해 시비가 붙었다”면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할 때마다 친박 시민들이 ‘찍지마’라고 소리치면서 제지했다”고 말했다.

한 시민과 기자 간 ‘새치기 시비’가 붙어 폭행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시민 김아무개씨는 이 과정에서 뉴데일리경제 기자 얼굴을 주먹으로 두세 차례 가격했다. 김씨는 폭행죄로 입건돼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오후 2~4시, ‘이재용 결심공판’ 전과 후

오후 1시50분, 박영수 특별검사는 법원을 들어서며 물병 세례를 맞았다. 친박 성향의 시민 40여 명은 오후 1시30분 경부터 “박영수 나와라” 소리치며 청사 2층 로비에서 진을 쳤다. 보안을 위해 경찰 40여 명이 청사 출입문에서 이열 종대로 서 통로를 확보했다. 박 특검이 통로를 지나쳐 가는 순간 로비는 아비규환이 됐다. 대기하던 시민들이 순식간에 박 특검에게 달려들며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등의 욕설을 쏟아냈다.

이는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변론 종결’이 선언된 후 특검팀과 변호인·피고인 간 악수·포옹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방청석의 일부 시민들이 “너네들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이게 나라냐” “자손대대로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특검팀 검사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법정을 나서는 이재용 부회장에겐 “용기 잃지 마세요” “힘내세요”라며 소리쳤다.

▲ 재판 종료 후 특검 측 검사들이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친박 단체 회원 등 시민들이 출입구에 몰려들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재판 종료 후 특검 측 검사들이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친박 단체 회원 등 시민들이 출입구에 몰려들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청사 로비 내 아비규환은 재판 후에도 벌어졌다. 특검에 반발한 시민들이 검사들이 출입하는 통로를 막고 나섰다. 특검이 삼성 측에 중형을 구형한 탓에 분위기는 재판 전보다 더 험악했다. 오후 3시55분,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파견검사들도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죽여버린다” 등의 위협발언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바닥에 드러눕고 “박영수 나와봐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오후 5시까지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하주차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법원을 빠져나갔다.

서초경찰서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경력 180여 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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