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의 소설 <허수아비춤>을 보면 재벌그룹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광고를 달라고 애원하는 언론사 간부들이 등장한다. 오늘 우리는 소설 같은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미디어오늘이 2016년 8월26일 오후 3시42분경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받은 문자 전문을 공개한다. 

이 문자는 앞서 시사인 517호 단독보도를 통해 공개됐으나 언론사 이름만 등장하고 사람 이름은 가려졌다. 미디어오늘은 이를 전부 공개하는 것이 자본과 언론간의 검은 유착을 뿌리 뽑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사장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편집국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지 4개월…저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죄송스런 부탁 드릴게 있어 염치 불구하고 문자 드립니다 제가 편집국장 맡으면서 김영모 광고국장에게 당부한게 하나 있었습니다. ‘편집국장으로서 문화일보 잘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발 저한테는 영업관련된 부담을 주지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지켜주는 듯 싶더니 이번에는 정말 심각한지 어제부터 제 목만 조르고 있습니다 ㅠㅠ 올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대비 1억 플러스(8억) 할수있도록 장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게 요지입니다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갖고 챙겨봐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김병직 배상”

보낸 사람은 김병직 문화일보 편집국장이다. 문자의 목적은 8월 협찬액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한다”고 적었다. 협찬액을 올려주면 삼성에 유리한 기사를 써주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문자에선 “식사는 맛있게 하셨는지요”, “죄송스런 부탁”, “염치 불구하고”, “관심갖고 챙겨봐주십시오”처럼 시종일관 편집국장의 저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언론권력 위에 군림하던 삼성권력의 실체다.

김병직 문화일보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문자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관련사실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김병직 편집국장은 “제가 국장하면서 기자하면서 주고받는 문자라는 게 엄청 많다”면서 “1년 전에 했던 것에 대해서 기억도 없다”고 말했다.

장충기 사장은 또 하나의 문화일보 관련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보낸 이가 김영모 광고국장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문화일보를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5월을 무탈히 넘깁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무엇이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소용될 일이 있으시면 하시라도 하명해주십시오. 다시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일교차가 큽니다. 건강유념하십시오! 김영모 각골난망. ”

사자성어 ‘각골난망’은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명’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명령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종합일간지 광고국장이 하명해달라며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할, 그런 존재였다. 

▲ 2월17일자 문화일보 사설.
▲ 2월17일자 문화일보 사설.
문화일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2월17일 사설을 통해 “그러잖아도 겹겹 규제로 지뢰밭을 걷듯 기업 활동하는 처지에 정치 리스크까지 가세해 기업을 옥죄는 판이다”라고 주장했다. 장충기 사장이 받은 문자를 보고나니 사설의 콘텍스트가 더욱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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