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몰락과 박정희의 죽음엔 공통점이 있다. 민심과 괴리된 권력을 향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점이다. 촛불집회야말로 대의제의 한계를 바로잡을 확실한 기회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신간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는 이번 촛불정국에 대해 창비학당에서 진행한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부당한 권력을 밀어낸 시민의 힘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4·13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야당은 분열했다. 진보성향의 언론조차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새누리당 패배. 이런 예상 밖 선거는 과거에도 있었다. 한 교수는 1978년 12·12 총선 결과를 주목한다. 선거 사흘 전 선거판도 분석결과를 보면 여당인 민주공화당이 신민당을 앞선 것으로 나왔지만 투표를 마치고 보니 신민당 득표율이 공화당을 앞섰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민심의 변화였다.

20대 총선 8개월 만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될 거라 예상한 이가 없었듯, 10대 총선 10개월 만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총에 맞아 죽을 것이라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한 교수는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역사가 한번 바뀌면 이렇게 무섭게 바뀐다”며 “변화의 힘은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헬조선’, ‘흙수저’란 말이 많이 나온다. “지금 우리는 한국인데 왜 ‘헬한국’이 아니라 ‘헬조선’이라 했을까요? 민주화의 성과, 근대화의 성과가 모두 날아가고 18~19세기 봉건사회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한홍구 지음/ 창비 펴냄
▲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한홍구 지음/ 창비 펴냄

눈감고 귀막고 비굴하게 살아야 밥이라도 먹고 살아야 했던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고, 열심히 공부하면 자신처럼 변호사도 될 수 있고 국회의원도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나라를 만들겠다는 연설로 국민들을 감동시켰던 2002년 노무현의 연설. 7년 뒤 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이 떠난 지 7년이 지났다. 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이 실패한 자리에 들어선 사회가 헬조선”이라고 표현했다. 촛불은 이 바닥민심의 표출이다.

“솔직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감사패를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한다 해도 시민들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몇 만 번 강연해도 못 만든 변화가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사람들 역시 역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유라의 부정입학, 선출하지 않은 권력자 지인의 전횡, 박정희 시절에 보던 그 정경유착의 폐해 등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시민들이 가만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무기력해보였던 시민과 강력하게만 보였던 권력의 판세가 뒤집혔다. 박정희 정권이 붕괴돼 가던 시기도 역시 그랬다.

1978년 총선 직후 청와대는 11명의 장관을 교체했고, 김정렴 비서실장(1969~1978)을 김계원 비서실장으로 교체했다. 우병우를 붙잡고 늘어졌던 박근혜 정권에 비하면 기민한 대처였다. 청와대가 발빠르게 인사를 단행했는데도 민심을 돌리지 못한 것이라면 당시 야당이 더 잘한 건 아닐까? 한 교수는 “이때의 야당은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민심이 그만큼 유신정권에서 떠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야당이 얼마나 무능했으면 ‘야당성회복투쟁동지회’라는 당내 비주류 조직이 있을 정도였다.

한 교수는 유신체제가 무너질 때 반드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H사건’이다. 가발공장이었던 YH무역에 노동조합이 생기자 회사는 폐업신고를 한 후 돈을 들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노동자들은 미국대사관으로 갈까, 여당에 갈까 고민해봤지만 삼엄한 경비 탓에 쉽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마지막으로 고민한 게 공덕동 로터리에 있던 신민당사. 경찰은 신민당사까지 습격해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했고, 이 과정에서 1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김경숙씨가 세상을 떠났다. 신민당 의원들이 18일간 항의농성에 들어갔고, 부마항쟁으로 번졌다. 김재규가 쏜 총 이전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를 낸 시민들이 있었다.

한 교수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들이 1970년대 여성노조를 두고 “경제투쟁과 조합주의에 매몰됐다고 비판”, 즉 임금투쟁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여성노동자들을 비판한 학출들 지금 뭐하고 있냐”며 “보수정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비판했다. 당시 대학생 지식인들의 엘리트의식이 문제인걸까?

▲ 2016년 11월12일 촛불집회. 사진=최창호 작가
▲ 2016년 11월12일 촛불집회. 사진=최창호 작가

한 교수는 ‘유신’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가 민주화와 산업화라면 그 역사는 반드시 다시 쓰여야 한다. 성취의 진정한 주역은 박정희도 아니고 몇몇 이름난 민주화운동가들도 아니다.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그 시절 가장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들이 인간임을 자각하고,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은 그들의 역사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한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확인시켰다. 그리고 바닥민심이 들고 일어난 지금 다시 세상을 바꿀 기회라고 강조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난 대중강연에서 역사가 정체하고 퇴보하고 있다며 힘들어하는 대중들을 향해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말라고 무슨 희망전도사 같은 얘기를 주로 해왔다. 그러나 이 강연 무렵부터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우리에게 왔던 변혁의 기회를 놓쳐버렸는가에 대해 힘줘 얘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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