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억 원, 일반 서민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에는 얼마 안될지 모르지만 너무나 큰 금액이다.”(김영철 검사)

삼성그룹 433억 원 뇌물 혐의를 둘러싼 치열한 법리공방이 이어지던 법정에 ‘서민’이란 단어가 언급됐다. 삼성 측 혐의 부인을 반박하던 도중 특검팀이 “승마 지원 만큼 국정농단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뭐가 있느냐”며 반문하던 과정에서다.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52회 공판이 열린 지난 4일, 특검팀 김영철 검사는 “법리는 많이 말했고 증언도 많이 다뤄졌다. 정유라 승마 지원 관련해 갖고 있는 소견을 말씀드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 파면대통령 박근혜씨(왼쪽), 박영수 특별검사, 가운데, '비선실세' 최순실시
▲ 파면대통령 박근혜씨(왼쪽), 박영수 특별검사, 가운데, '비선실세' 최순실시

김 검사는 “최근 아는 분을 통해 확인했는데 한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투자받았던 분이 삼성에서 1억 원을 투자받기위해 계약서를 50장 이상 썼고 그에 해당되는 특약조항만 5페이지가 넘었다”면서 “1억 원을 지원하는것도 여러 절차를 거쳐 철두철미하게 한다. 213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지원하는데 달랑 몇 장 계약서로 체결한 것, 계약서에 전혀 없는 선수선발권을 최순실씨에게 준 것, 이런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어스포츠와의 계약은 실체가 있는 계약”이라는 삼성 측 입장을 반박한 주장이다. 삼성 측 피고인들은 최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와 맺은 213억 원 용역 계약이 ‘정씨 1인 승마지원을 가리기 위한 허위계약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검사는 이어 “어떤 대가없이 공짜 점심은 없다”면서 “(삼성전자와 최씨 간 계약이) 허위가 아니면 무엇이냐. 그런 큰 금액을 왜 선뜻 내놓았던 것인진 동기 부분에서 추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검사는 “잘못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반성이지 잘못을 가리기 위해 또다른 잘못을 하는 것은 또다른 범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은 삼성전자가 20억 원을 호가하는 ‘비타나V’ 등 정씨에게 고가의 명마를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자 ‘위장 계약’을 통해 말을 허위로 팔고 최씨 측과 대응 방향을 마련하는 등 은폐를 시도했다고 보고 있다.

김 검사는 마지막으로 “(삼성전자엔) 수많은 주주들이 따로 있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라며 “그런 문제까지 고려해서 이 부분이 참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단순뇌물죄 적용이 이치에 맞다”… 변호인 “법리 아닌 감정에 호소”

이에 앞서 양재식 특검보는 “국정농단의 실체가 무엇이냐. 비선실세 최씨가 대통령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라며 “이 사건 승마 지원 만큼 그 본질을 명확하게 드러내는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양 특검보는 이어 “단순뇌물 수수 대향범(서로 대립방향의 행위를 통하여 동일목표를 실현하는 범죄)인 뇌물공여로 기소하면 최씨와 대통령과 공범이라는 점까지 입증해야 한다”면서 “어려움에도 이렇게 한 이유는 (단순뇌물이) 이 사건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부분이고 그렇게 의율(혐의 경중에 따라 법 적용)하는게 이 사건 실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난 2월28일부터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적용한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 무리한 법리 적용이라는 등 논란을 제기한 바 있다. 양 특검보는 “(변호인은) ‘제3자 뇌물수수죄’로 가면 부정청탁을 입증해야하는데, 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서 특검이 단순뇌물죄로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공동정범으로 의율하고 그에 대항하는 뇌물공여로 (삼성 측 피고인을) 기소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에 “법리적 주장을 하려고 했는데 특검께서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을 말해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정유라 승마지원 사건은 기본적으로 최순실씨의 강요 내지 공갈에 의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엮은 것 자체가 실체와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이어 “특검은 경영권 승계 작업 계속 들지만 승계 작업을 위해서 대통령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단 1%로 해본 적이 없다”면서 “피고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승계 작업 관련해서 대통령 혹은 정치권이 관여하면 문제가 됐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 승마지원은 특검이 기소한 삼성 뇌물 혐의의 핵심 사안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8월26일 설립된 지 하루가 지난 스포츠 컨설팅회사 코어스포츠와 213억 원 대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1여 년 간 총 77억 9735만 원을 최씨 측에 지급했다.

특검은 다수 정황증거에 근거해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세 차례 독대에서 모두 ‘정유라 승마지원’을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 측이 첫 번째 독대인 2014년 9월부터 최씨 및 정씨의 존재를 알고 지속적으로 정씨 승마훈련을 직접 지원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금전 지급이 대통령은 삼성그룹의 현안, 이 부회장은 대통령 측의 요구를 상호 이해한 상황에서 이뤄졌기에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을 보고 최씨 측에 돈을 준 것이지만,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관계가 성립하기에 ‘단순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입장이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특검이 추측과 상상에 의거했다”며 특검 주장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2015년 7월 독대 까지 정씨를 몰랐다’ ‘독대 당시 삼성그룹 현안을 언급한 적이 없고’고 주장하고 있다. ‘비공무원’인 최씨가 받은 돈을 공무원이었던 파면대통령 박근혜씨와 공범으로 판단해 뇌물죄를 적용한 것도 법리적 오류라고 지적했다.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재판은 오는 7일 마지막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오는 7일 오후 2시 중법정 311호에서 결심 공판을 연다고 밝혔다. 선고 기일은 이 부회장의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오는 27일 전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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