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위원장 류석춘)의 혁신선언문에 대해 박근혜 탄핵‧구속사건의 책임자 조치가 빠져있고, 인적 청산도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외과의사가 수술하러 개복했다가 배를 도로 닫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5선 의원 출신의 보수정객 박찬종(78) 변호사(법무법인 유담 대표변호사)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날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에 대해 “당의 1호 당원이자 국가원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수사 재판받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누구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인식이 없다”며 “무엇보다 자기반성이 없다. 그러니 책임소재도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른바 ‘신보수주의’ 가치에 따라 “이념과 조직의 재정비에 상응해 대대적인 인적혁신과 인재영입 또한 이뤄야 한다”는 자유한국당의 혁신 방안을 두고 박 변호사는 “이는 조직개편 후에 인적청산하겠다는 뜻으로 선후가 뒤바뀌었다”며 “혁신의 핵심은 탄핵사태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분명히하고 인적쇄신을 해야만 국민이 주목할 혁신안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뭉개고 좋은 말로 포장한다고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인적청산을 미루고 ‘쉬운 길로 두루뭉술하게 가겠다’, ‘친박 호위무사 살려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혁신선언문 두 번째 항목에서 대의민주주의를 강조하고 광장민주주의를 폄훼한 대목도 위원장 류석춘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혁신위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며 “대의제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며, 시민적 덕성의 함양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박 변호사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에 대해 류석춘 위원장이 일관되게 얘기해온 것은 ‘(너무 과한) 정치보복’이라는 것”이라며 “‘대의제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광장 민주주의의 위험성,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 침해’란 말을 쓴 건 광장 민주주의에 기반한 다수의 폭정에 의해 박근혜가 희생됐다는 의미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선언문에는 없지만 류석춘 위원장이 늘 정치보복이라는 말 해왔다”며 “또한 류 위원장이 탄핵사태에 동조한 사람을 가려내고, 징치하는 방향으로 가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두고 박 변호사는 “결국 혁신위가 중증 말기암 환자를 수술하려고 배를 째놓고 도로 꿰메어 닫아버린 꼴”며 “혁신위를 혁신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탄핵 구속 사태를 광장민주주의의 분출에 의한 ‘다수의 폭정’으로 보려는 인식 자체가 원천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그는 “첫 단추부터 틀렸으므로 나머지 단추구멍이 다 안맞게 된다”며 “그러니 혁신위의 선언문은 전부 틀린 것이 됐다”고 지적했다.

▲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자유한국당
박 변호사는 “다수의 폭정과 야당 시민사회 단체의 정치보복으로 박근혜가 희생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자초한 것이으로, 자업자득이자 자승자박”이라며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행정수반 국가원수라는 것을 망각한채 청와대에서 공개적으로 당내 쓴소리를 하는 유승민 등을 배신자라며 낙선시키라 선언했다”며 “그 뒤 이어 친박 핵심들이 계파수장인 대통령 말을 실천하기 위해 발호해 공천파동의 칼춤을 춘 결과 총선에서 패배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탄핵 발의정족수(당시 야당 포함)를 넘어 의결정족수까지 구성하게 해준 것이라고 박 변호사는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박근혜 탄핵, 구속을 넘어 형사재판에 이르게 된 것은 본인이 국가원수로서 권한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라며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권한행사를 정반대로 한다. 누구라도 만나고, 문턱을 낮추고 수시로 회의를 하고 같이 대화하고 기자회견도 자주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시절의 청와대엔 최순실 외엔 드나드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 대통령 관저에 곰팡이가 끼고 햇볕도 들지 않은 것이라 박 변호사는 비유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인적쇄신은 뒷전으로 미룬채 광장민주주의 폭정이라는 인식을 드러냈으니 그건 반국민적 혁신안이 된 것이라고 박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국가원수였던 박근혜와의 절연, 단절, 탄핵구속사태에 대한 인식 공유, 책임자 친박호위무사 출동 등 핵심이 모두 빠져있는 혁신안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제1야당이 이렇게 허우적 거리고 지리멸렬하며 무책임한데, 이런 혁신안까지 나오니 혁신위를 혁신하자고 할 밖에”라며 “홍준표 당 대표라는 사람은 막말을 이어나가는데도 당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나머지 국회의원도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한편,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대한민국을 “1948년 건국 이래 자유민주 진영이 피와 땀으로 일으켜 세우고 지켜온 나라”라 규정하며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이 옳고 정의로운 선택이었다는 ‘긍정적 역사관’을 가진다”고 주장한 대목도 비판을 받고 있다.

박찬종 변호사는 “1948년 8월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으나 당시 헌법에 이미 대한민국은 ‘3.1 독립정신을 받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돼 있고, 그해 발행된 제1호 관보에도 발행일이 ‘대한민국 30년 9월1일’이라 명시돼 있다”며 “류석춘과 뉴라이트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보려는 시도이지만,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1920년)의 초대 대통령이다.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어떻게 1948년이 건국일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해방후 헌법을 만들어서 정부 수립일로 선포할 때도 이승만 스스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했다”며 “그런데 굳이 왜 이러느냐. 친일파들이 계속 이를 부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분열시키고 있는데, 아주 소모적”이라고 비판했다.

▲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0년 12월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박대성씨와 박찬종(왼쪽) 변호사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0년 12월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박대성씨와 박찬종(왼쪽) 변호사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또한 서민중심 경제를 지향한다는 혁신선언문 항목에 대해 오히려 당내 일부에서 반발하는 것도 박 변호사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서민경제와 그냥 경제의 용어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며 “헌법 119조에는 개인과 기업 상호간 조화를 이루도록 돼 있고, 국가가 개인과 기업을 조정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홍준표 당 대표에 대해 박 변호사는 “대선 전엔 친박을 양박(양아치박)이라고 하더니 지금 와서는 친박도 반박도 없다고 한다”며 “특히 막말시리즈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당을 멍들게 하는 일이다. 크게 반성하고 본인은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희생할 각오를 하고 건전한 여야 관계를 유지할 사람이 나와야 한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리멸렬하고 무책임한 상태로 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류석춘 혁신위원장에 대해 박 변호사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지금의 혁신위원장이야말로 당의 혁신안을 만드는데 걸림돌이 돼 있다”며 “탄핵에 대한 인식도 정반대이니 혁신위원장 적임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에 충성했던 아버지 류혁인 전 청와대 정무수석(공보부장관)의 아들이 박근혜에 충성하고 있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박 변호사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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