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직접 독대한 사람이 피고인이다. 그런데 최지성 피고인에게 맡기고 신경을 안썼다?” (특검 측)

“더 이상 내가 할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금 생각하면 혼자 오만했던 거 같기도 하고 후회스럽고 반성한다.”(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혐의 대부분을 ‘몰랐다’고 부인했고 최지성 전 미전실장은 자신을 최종결정권자라고 주장했다. 삼성 측 피고인 모두가 최 전 실장을 뇌물 공여 최종 지시자로 지목하고 나선 가운데,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과 뇌물 혐의 고리를 끊기 위해 조직적 대응을 하는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과 최 전 실장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제50회 공판 피고인 신문에 나와 금전 지급을 결정한 보고·지시 라인 끝에 최 전 실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부회장은 △‘정유라 승마 지원’ 213억 원 △재단 출연금 204억 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여 억 원 등 자신의 뇌물 혐의 전부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최씨 소유의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와 용역계약을 맺은 것과 관련 “지금까지도 자세한 내용을 보고받은 적 없다. 특검 조사·재판과정에서 세부내용을 알게 됐다”면서 “정유라를 지원한다는 사실은 계약이 중단될 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 이 부회장은 “나중에 문제가 되고 나서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영재센터 지원금도 “보고받은 적 없다”고 거듭 증언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수첩에 대해서는 “면담장소엔 내가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안 전 수석 수첩에 메모된 각종 삼성그룹 현안과 ‘승마·빙상 지원’ 등 대통령 측 요구 대부분에 대해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같은 시기 대통령을 독대 한 SK그룹, 현대차그룹 등 재벌 총수들이 ‘독대 당시 미르·K스포츠재단 언급이 있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재단 이름은 언론보도되고 나서 처음 들었다”면서 “나에겐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독대는 이재용이, 결정은 최지성이?… ‘후계자’ 이재용 “아무 것도 모른다”

전 미전실 간부들은 ‘보고하지 않았다’고 증언하며 이 부회장 주장과 궤를 같이 했다. 총수 다음 실세인 ‘삼성그룹 2인자’ 최 전 실장은 승마지원·재단출연·영재센터 지원 등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한 적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의견을 제시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최 전 실장은 “재직 동안 최종 의사결정은 내 책임 하에 결정됐다”며 “밖에선 이 부회장이 후계자다보니 좋은 뜻에서 총수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렇게(최종결정권자라고) 오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삼성그룹 현안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고 일관했다.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담당자, 전문가들이 검토했을 것”이라면서 특히 금융지주회사 추진 건의 경우 “자세한 내용은 재판과정을 통해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모르쇠 증언은 금전 지급 과정에 대한 개입 여지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 부회장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부정청탁할 현안과 뇌물수수 혐의 공범인 최순실씨를 인지하지 못했고 금전 지급 과정에도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난다.

공범으로 기소된 삼성그룹 임원 피고인들은 ‘최 전 실장 총대메기’ 증언에 힘을 싣고 있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은 지난달 31일 및 지난 1일 법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보고한 적 없고 최지성 실장 등에게 보고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금전 지급 이유는 “최순실이 두려웠다”

한편, 삼성 측 피고인들은 최씨 측에 금전을 지급한 이유로 최씨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룹 현안 해결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최 전 실장은 ‘최순실이 대통령을 이용해 삼성에게 피해줄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과거 부회장이 발언을 잘못해 (정부로부터) 곤욕을 치른 적 두어번 있다”며 “저희가 대통령의 말을 가볍게 여긴다고 오해를 받으면 어떤 곤욕을 치를런지”라고 답했다.

최 전 실장은 또한 “최씨가 사실이 아님에도 문체부 국과장을 고자질해서 대통령이 오해때문에 인사 조치했다. 우리도 승마협회 지원 제대로 안한다는 오해를 받아서 질책을 받았었다”면서 “또다른 모략에 들어가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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