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소공동 지하상가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공 아무개씨는 지난 6월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공씨는 국정농단-탄핵-조기 대선 정국을 지나면서도 박근혜·홍준표를 지지하던 ‘진성 보수인’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올 초까지 매주 태극기 집회를 나가던 사람이에요.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모두에 매달 5000원씩 회비 납부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죽 속상했으면 이랬겠어.”

공씨는 자유한국당 주찬식 서울시의원이 서울시 지하점포의 ‘임차권 양도금지 조례’를 개정을 추진해 자신의 생업을 위협한 것이 탈당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8일 서울시는 ‘서울시 지하도 상가 관리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이 가결되면 지하도 상가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향후 가게를 정리할 때 임차권 양도를 할 수 없고 따라서 투자한 금액만큼 권리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억울한 마음을 성토하는 상인은 공씨만이 아니다. 최근 서울시내 지하도 상가 곳곳의 상인들이 자유한국당과 주찬식 의원을 규탄하는 피켓을 가게 앞에 내걸었다. 상인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조례 개정이 주찬식 한국당 시의원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주 의원이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조례 개정을 촉구해 입법을 추진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사한 지 30년이 넘었어요. 땅만 서울시 것이지, 이 시설들도 다 우리 상인들이 모은 돈으로 지은 거예요. 들어올 때 보증금은 1600만 원 정도 냈죠. 그때 당시 시세로 하면 아파트 한 채 값을 웃돕니다. 월 임대료 70만 원, 세금도 꼬박꼬박 냈고. 정리하면 2억50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 가게예요. 보증금 빼면 대부분이 권리금이죠. 그런데 그 권리금을 못 받게 하니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장사가 너무 안되거든요. 한 달에 개시하는 날이 25일도 안 돼요.”

▲ 서울 소동동 지하상가 상인 공 아무개씨의 자유한국당 탈당신고서와 새누리당,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당원 임명장. 사진=용지수 대학생명예기자
▲ 서울 소동동 지하상가 상인 공 아무개씨의 자유한국당 탈당신고서와 새누리당, 한나라당으로부터 받은 당원 임명장. 사진=용지수 대학생명예기자

“8년 알바해 모은 권리금인데… 살아선 못 나가요”

공씨의 양복점 조금 위에서 가방 가게를 하는 김현(23)씨는 지하상가에 가게를 낸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15살부터 8년 동안 편의점,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최저임금을 모아 2억 가까운 돈으로 장만한 첫 가게다. 1억7000만 원의 권리금을 내고, 남는 돈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김 씨 또한 조례안이 개정돼 가게 양도·양수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크게 절망했다.

“여기서 5년 정도 장사하고, 보증금·권리금 빼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할 생각이었어요. 장사가 너무 안돼요. 지하상가 공기도 안 좋고요. 사람들이 아예 안 지나다녀요. 이런 상황에서 겨우 모아 낸 권리금도 회수할 수 없게 되면 전 젊은 세월 동안 뭘 한 건가요? 주찬식 의원님이 꼭 좀 저희 소상공인들 상황을 살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곳에서 기념품 가게를 하는 장수형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장씨는 “상인회에서 아침 10시 이후 출근하고, 저녁 8시 이전에 퇴근하는 점포에 경고장까지 주고 있다”며 “이렇게까지 상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데도 날이 갈수록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니 마지막 폭탄을 떠안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 달에 200만 원 벌고 월 임대료 70만 원을 내요. 가장인데 겨우 먹고 살 정도입니다. 그나마 제가 이 상권에서 가장 잘 버는 축이에요. 장사는 점점 더 안되고, 빚만 는 상인이 대부분입니다. 그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가게 정리하고 받을 수 있는 권리금이었는데 그걸 뺏다니요. 죽어서는 나가도 살아서는 못 나가요. 이런 법을 만드는 주찬식 의원은 상인들하고 얼굴 좀 보고 얘기해봤으면 합니다.”

상인들이 조례 개정의 주도자로 주찬식 의원을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인대 전국지하도 상가상인연합회 이사장은 2015·2016년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행정사무감사를 근거로 들었다. 회의록을 살펴보니 2015년과 2016년 도시안전건설위원회 위원·위원장을 역임한 주찬식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하상가 양도·양수 조례 개정과 관련해 서울시 보도환경개선과장 등 공무원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정인대 이사장은 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례 개정 자체는 서울시 발의가 맞으나, 주찬식 시의원이 서울시 공무원들의 옆구리를 찔러 발의를 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5·2016년 11월11일 사무감사 회의록을 보면 두 날 모두 주찬식 의원이 지하도 상가 양도·양수 허용 조례 개정을 촉구하고, 담당 공무원은 속히 조례를 개정하겠다는 답변을 반복한다.

정 이사장은 “전국 지하도 상가 웬만한 곳은 다 양도·양수 허용을 하고 있고 특히 서울시는 40년 넘게 허용해왔다”며 “지하도 상가 점포의 양도·양수와 권리금 관행은 불법적인 것이 아니다. 1998년에는 임차권 양도를 허용하는 조례를 만들었고, 2015년에는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으로 권리금을 보호했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강남 같은 곳은 10억 넘는 금액을 내고 입주한 상인들도 있는데, 하루아침에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손해는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반문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나라만 상가 권리금이 불법이라면서 쉬쉬 됐는데, 다른 선진국은 합법이고, 임대차 기간도 충분히 있다”며 “2015년 법 개정도 했고, 행정소송 항소심에서는 ‘지하도 상가 일반 점포는 사권을 주장할 수 있는 개인 점포로 인정을 한다’는 판결도 받았다. 지하도 상가로 상인들의 권리금을 불법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잘못된 행위”라고 강조했다.

한국당 시의원 “조례 발의는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해결할 일”

한편 상인들에게 조례 개정의 주동자로 지목된 주찬식 의원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주 의원은 “201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하도 상가 불법전대(임차인이 임대한 점포를 다시 제3자에게 빌려줘 세를 취하는 행위) 문제에 대해 서울시가 지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불법전대의 원인이 되는 양도·양수 조항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했다”며 “그런데 그 이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 사건을 계속 해결하지 않고 ‘폭탄 돌리기’ 식으로 후임 공무원에게 떠넘기기만 하는 것을 질타했었다”고 설명했다.

주 의원은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 주체가 서울시 측이니 박원순 시장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즈음 감사에서 시 공무원을 질타한 후 해당 공무원들이 따로 나를 찾아와 ‘박원순 시장이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어 해당 사항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이어 “담당자인 서울시 공무원들이 해결하지 않다가, 대선 끝나고 나니 이제야 움직이는 것”이라며 “난 그 과정에서 시의원으로서 할 말을 했을 뿐인데 힘없고 소수당 소속인 나를 타깃 삼은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서울시내 지하도 상가 상인들이 가게 앞에 자유한국당과 주찬식 의원을 규탄하는 피켓을 내걸었다.사진=용지수 대학생명예기자)
서울시내 지하도 상가 상인들이 가게 앞에 자유한국당과 주찬식 의원을 규탄하는 피켓을 내걸었다.사진=용지수 대학생명예기자
이에 정인대 이사장은 “주 의원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진 것은 2015년 말부터다. 그땐 탄핵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을 때였는데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조례 개정에 대해 서울시 측은 세 가지 근거를 댔다. △시의회 감사에서 해당 조례 개정을 속히 시행하라 질타받은 것과 △상위법상의 위배라는 행정자치부의 해석 △감사원 지적사항이라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25일 당시 행정자치부에 “1998년 제정해 시행 중인 지하도 상가 조례에 의해 (지하도 상가 점포를) 임차권 양도 허용하는 것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위배 되냐”고 질의해 “지하도 상가의 임차권을 양도 허용하는 것은 상위법인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6조’에 위배 된다”는 해석을 받았다.

2016년 10월31일에는 감사원이 서울시가 임차권의 양도·양수 조례 개정을 추진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행자부의 유권해석으로 조례가 상위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개정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고, 서울시는 이에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하도상가상인회 측은 서울시가 행자부에 유권해석을 질의한 것 또한 주 의원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봤지만, 주 의원은 시의 유권해석 질의와 행자부의 답변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일축했다.

상인회 측은 또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서울시 측에 감사원 지적 사항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시 규제개혁심의위원회는 서울시의 입법예고 후 입법안을 심의하고 지난 6월30일 “조례 개정은 인정하나, 조례를 신뢰하던 시민의 권리 보호를 위해 향후 공론화 및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검토해 봄이 타당하다”고 심사한 상태다.

이에 주 의원은 “법안 발의는 시에서 했기 때문에 시장이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며 “서울시가 공청회를 열어 공식적으로 상인들의 의견을 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상인회 측은 “공청회라는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것은 주 의원”이라며 “시가 법안을 발의하면 결정을 하는 것은 시의회니, 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위원장인 주 의원이 공청회를 연다면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개별 상인들도 조례 개정을 막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조례 개정의 통과는 내달 말 시의회 정기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서울시 지하도 상가 상인들은 시의회 회의에 앞서 집회와 반대 궐기 운동 등을 펼치며 반대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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