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는 소프트웨어 중심에서 클라우드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글로벌 조직개편을 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이전 사업을 맡은) 우리를 털고 가려는 것 같다.”

지난 14일 미국 본사에도 없는 노동조합이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 설립됐다. 사우회장을 지내던 이옥형 개발자(엔지니어)가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카페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최근 한국MS의 정리해고가 추진되면서 사원들이 반발하며 노조를 만들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구조조정은 국제적이다. CNBC는 해고 인원을 ‘최대 3000명’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는 “해고 대상은 대부분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직원”이라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MS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 ‘기술혁신’이 이어지며 국내외 IT기업들이 사업을 전환하고 있어, 기존 인력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MS는 회사 차원에서 ‘클라우드 관련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 위원장은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도 영상을 틀어넣는 정도고, 회사는 직원들 매출 목표를 점점 높이고 있는데, 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시험을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겠나.”

▲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노동조합 집행부. 왼쪽이 이옥경 위원장이다.
▲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노동조합 집행부. 왼쪽이 이옥경 위원장이다.

노조는 한국MS 해고 인원을 대략 4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MS 전체 직원이 5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다만, 사측이 개별 직원들을 불러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사실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어 대상자 추산은 어렵다고 한다.

노조를 경험해본 직원을 찾기 힘든 이 회사에서, 그것도 IT기업의 노조 설립은 이례적이다. 이 위원장은 “이번 일 때문에 급작스럽게 노조를 만들게 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이후 한국MS는 주기적으로 조직개편과 해고를 단행했다. 그런데 기준이 불명확한 부당한 인사라고 생각해도 맞설 힘이 없었다고 한다.

“사우회를 만들고 노사 간 노사협의회를 만들었는데, 협상을 하면 무조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사우회의 권한으로는 회사의 재정을 파악하기도 힘들고, 맞서는 것도 한계가 분명했다. 협의회를 열어도 몇십분 얘기하고 끝이다. 능력이 좋아 상을 받은 직원이 해고대상자가 되기도 하는 등 대상자 선정도 납득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제대로 협의할 수 없었다.”

그는 “그래도 나는 재수가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4년 전 그는 저성과자로 지정돼 해고위기를 맞았다. “그러면 비참하다. 동료들이 주위로 오지 않는다. 찍힌 사람 주변에 가면 자기도 찍힌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 정말 힘들더라.” 이 위원장은 현재는 해고대상자나 저성과자가 아니지만 “퇴직이 얼마 안 남았지만, 후배들에게 그런 회사를 물려두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역할 구분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MS 조직문화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시점은 빌게이츠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2009년 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라고 이 위원장은 추정한다.

“처음 입사 때는 정리해고라는 게 없었다. 조직도 수평적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불만사항 다 얘기하고 그랬다. 이런 구조다보니 소통이 잘 되고 팀워크도 좋았다. 그런데 정리해고를 시작하면서 매니저(관리자직군)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관계도 멀어지고 소통도 수직적으로 바뀌었다. 오더를 내리기만 하면 이해를 못해도 따라야 한다. 이전처럼 문제가 있으면 바로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진다.”

직원들 사이의 ‘불안’도 일상이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조직개편 추진된다는 이야기가 나도니 구성원들이 불안해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살아남은 사람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살아남았으니 끝일까?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한국MS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에 가입했다. 이 위원장은 “노조라는 게 단독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겠더라. 그래서 (상급단체를) 알아봤다”면서 “가장 유사한 형태의 기업인 한국 휴렛패커드(이하 한국HP)가 민주노총 소속이었고, 조합원들 성향도 생각한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HP 노조위원장이 한국MS 노조 규약 제정 등 정비를 돕고 있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사실 우리는 민주노총인지 한국노총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회사에 맞는 노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조직문화를 다시 돌려놓는 데 노조가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MS노조는 이번주 중 사측에 공문을 보내 단체협약 제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사측과의 첫 협상테이블이다. 이 위원장은 “해외기업은 이미지에 예민해 하고, 국내 정치권과 관계도 없다는 점에서 이 싸움이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는 다른 해외IT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