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관리사가 또 숨졌다. 유가족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한국마사회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는 지난 1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된 마필관리사 이아무개씨(37세)의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난 5월 같은 부산경마장 소속의 마필관리사였던 고 박경근씨의 유가족도 함께 참석해 참담한 심경을 호소했다. 

지난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이아무개씨는 휴대전화에 동생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미처 전송되지 않은 메시지를 남긴 것 이외에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유가족들에 따르면 이아무개씨는 팀장의 병가로 인해 인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팀장의 업무까지 도맡아 하게 되며 과한 업무에 시달렸다. 인력 충원이 없어 몇 개월 이상 이아무개씨가 업무공백을 메우게 되면서 과도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증언이다.

이아무개씨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머리가 오백원 동전 크기만큼 빠졌다”며 “팀장일을 (대신) 다 보고 퇴근시간을 못 맞추면 집에 와서도 컴퓨터로 일하고 있었다. 자기는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책임감 갖고 일을 다했다”고 울먹였다. 이어 “이제는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제발 신경써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아무개씨의 어머니는 말을 마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이아무개씨(37)의 어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사진=차현아 기자.
▲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지난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이아무개씨(37)의 어머니(왼쪽에서 두번째)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아들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사진=차현아 기자.
이아무개씨의 사례는 단순히 개인의 스트레스로만 치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국내 1호 말 마사지사 타이틀을 얻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넘쳤던,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도 두 달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점에서다. 박경근씨는 지난 5월27일 ‘X같은 마사회’라는 문장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이 일하던 경마장 내 마구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가 목숨을 끊은 지 채 두 달이 겨우 지난 상황에서 같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또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이인상 한국노총 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한국마사회의 다단계 착취구조와 비정규직 고용 등의 문제를 짚었다. 이 위원장은 “1993년까지는 한국마사회가 마필관리사를 직접 고용했지만 이후 간접고용으로 바꿨다. 마사회는 지금 8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마필관리사는 마사회와 마주, 조교사 등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에서 가장 밑에 놓여있는 존재다. 한국마사회는 마주와 상금과 마주경주마 등록, 경주 출주 등의 계약을 맺고, 경주를 위해 마주가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면 조교사가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개인사업자 신분이 되다보니, 마필관리사들은 고용형태나 임금구조 등에서 불안정한 지위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위원장은 “93년 이후 14명이 사고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해왔다. 특히 집단 우울증상이 있어 역학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생활 여건이 굉장히 많이 차이난다. 비정규직 휴게실은 곰팡이가 있고 냄새가 나며 식사 질도 많이 다르다. 이런 조건에서 집단 우울증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정부 당국의 역학조사를 촉구했다.

고 박경근씨의 어머니 역시 한국마사회의 착취구조가 사실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 박경근씨의 어머니는 “아들은 만약 30원을 배당받는다치면 30원을 전부 받아야 하는데 거기서도 15원을 마사회에서 떼먹고 조교사가 떼먹고 난 뒤 우리는 최하 말단이 된다고 말했다”며 “우리 월급을 계산해보니까 (연차가) 14년 정도 되는데 겨우 11만 몇 천원이 나온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고 박경근씨의 어머니는 한국마사회가 박경근씨의 사망에 책임이 있음에도 제대로 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이 죽은 지 두 달 7일이 지났는데 계속 책임이 없다고 미뤘다. 왜 책임이 없나. 우리 아들이 열심히 일했고 마사회 1호 타이틀도 마사회가 달아준거다. 일본 유학도 마사회에서 다 보내준 것이다. 마사회에서 다 해주고 아들 죽고나니 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규탄했다.

또한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 않았나, 내 아들로서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얼마나 부탁했나. 그런데도 나몰라라 했다. 협상안만 타결됐어도 소중한 목숨이 또 희생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박경근씨 사망 이후 노조와 한국마사회 측은 두 달에 걸쳐 13차례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지난달 30일 사측은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해고자 복직과 집단교섭권 보장, 임금삭감 없는 인력충원, 열사 명예회복, 유족보상 등을 놓고 양 측은 협상을 이어왔으나 결국 결렬됐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마사회 경영진의 퇴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경영진 처벌 △국회 진상조사위의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착취체제 조사 △마필관리사에 대해 노동부가 작업중지 조치를 내릴 것 등을 촉구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을지로위원장으로서 2013년부터 마필관리사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장 개선을 노력했지만 저희들의 노력이 여전히 부족했다. 억울한 죽음 앞에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우리 사회에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문제 해결을 위해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 마필관리사 유가족들이 2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국회 정론관 앞에서 눈물 짓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 마필관리사 유가족들이 2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국회 정론관 앞에서 눈물 짓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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