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가까스로 탈출해 남한에서 인기까지 얻은 탈북민이 다시 북으로 갔단다. 임지현씨 이야기다. 더구나 “돈으로 좌우되는 남조선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만 따랐다”고 남한을 맹비난했다. 납득이 안 됐다. 이러한 인지부조화는 단숨에 해소해야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제발로 지옥을 향했을 수는 없으니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납치된 건 아닐까. 임무를 완수한 남파간첩의 예정된 복귀는 아닐까. 가능성의 단계는 자연스레 팩트의 단계로 격상하고 남은 것은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 일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지옥’에 가 있고 북한 당국이 취재에 응할 리 없는 상황. 다행히 전문가들과 익명의 관계자들이 언론의 답답함을 풀어줬다.
뒤늦게 “진실은 뭘까”라는 교과서적 접근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탈북방송인 임씨와 교제했던 남자 친구를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 기자를 경계하던 그에게 “더이상 억측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고 설득했다. 이후 그는 “이전부터 북으로 가겠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머리까지 자르고 북한으로 간다 말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음란방송으로 돈을 벌었다”, “억대 외제차를 몰았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황당해 했다. 다 밝힐 수 없는 그의 설명은 대단히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다른 취재 내용과도 부합해,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고 기사를 썼다.
자진입북에 방점을 찍은 기사가 나가자 임씨를 둘러싼 논란은 대체로 수그러들었다. 언론의 방향도 탈북민의 재입북 현상, 허술한 관리 실태, 향후 대응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말끔한 끝은 아니었다. 심지어 한 탈북민은 방송에서, 임 씨의 입북 정황을 설명한 남자친구가 그녀를 북한으로 팔아넘긴 장본인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취재에 협조해준 그와 임 씨가 그 방송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일까 싶다.
그렇게 충격과 쇼킹을 추구하는 대북 저널리즘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실은 임씨의 자진입북을 확인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간 탈북민’이라는 결론에 밋밋함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첩보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고 있던 것이다. 취재 결과에 그 느낌까지 보고하자 “오히려 그게 더 얘기가 되는 것”이라는 반응이 왔다. 그렇게 취재의 시작부터 결과에 의미를 담기까지 중심을 잡아준 ‘김현정의 뉴스쇼’ 손근필CP에게 감사하다. 또 함께 취재하며 현장을 누빈 황영찬 기자에게도 고마움이 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정은은 악마다. 하지만 북한은 정말 지옥일까. 탈북민 대다수에게 그곳은 부모형제가 있는, 언젠가는 돌아가고픈 고향이다. 그리고 남북한을 모두 경험해본 탈북민 상당수가 마지막 귀착지로 북한을 꼽고 있다. 우리는 남한을 찾은 그들의 좌절을 방관하고 때로는 희망을 빼앗고는 발걸음을 돌리는 그들에게 간첩과 정신나간 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지는 않나. 그렇게 등을 떠밀려 또다시 사선을 넘는 그들에게 정말 지옥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