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발사대 4기의 임시 배치를 완료하기로 결정하자 말 바꾸기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이 한미정상회담 당시 이미 언급이 이뤄졌던 사안이며 군사적 효용성보다는 한미동맹과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29일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지시를 계기로 대북정책이 사실상 대화에서 강경책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송영무 국방부장관의 임시 배치 관련 발언이 오락가락한 것과 관련,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1일 논평에서 “북한의 2차 ICBM급 미사일 도발 후 소위 사드 임시배치와 관련된 정부의 입장이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며 “청와대는 그토록 강조했던 사드배치의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사드 임시배치 전격 단행은 지난달 29일 새벽 북한이 ICBM급으로 평가되는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계기로 본격화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 28일부터 정부가 사드 장비의 임시운용을 위한 보완공사를 시작하면서 사드 배치를 사실상 허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해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이미 물밑 논의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이번 사드 배치의 전격 단행은 단지 북한 도발에 대응해 군사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세운 조치로 보기는 어렵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새 정부는 이전 정부가 결정한 사드배치 결정을 이행한다는 쪽으로 내부적 방침이 정해졌던 것 아니겠냐. 대신 환경영향평가는 국내법적 절차니까 절차대로 밟고 미국도 한미정상회담 당시 의제화하지 않고 양해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문제 관련 전문가도 통화에서 “(사드 배치는) 이미 한미정상회담 때 양보했던 내용이다. 결국 배치한다고 했던 것”이라며 “결국 환경영향평가에서 부정적으로 나와도 배치하겠다는 의도”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북한 ICBM 시험발사 관련 현안보고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북한 ICBM 시험발사 관련 현안보고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들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이번 사드 임시 배치 결정에는 한미 동맹 강화와 북한 도발로 인한 국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회의에서 사드의 임시 배치를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가 우선 배치한 후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고 오락가락하는 답을 내놓아 뭇매를 맞았다. 

또한 송 장관은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다른 위치가 더 낫다면 (배치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면서도 “(배치가 취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송 장관의 이 발언은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도 사드 배치는 사실상 확정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혼란스러운 답변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내외적인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즉 환경영향평가라는 국내 절차를 밟아 사드 배치 결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면서도 갑작스러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정부가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국내 정치적 목적, 그리고 이미 한미정상회담 당시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가 사전에 있었다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전략이 대미관계 등 외적 환경 변화로 정권 초기부터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사드 자체가 군사적 측면보다 정치적 논란이 더 커졌기 때문에 대외적 변화에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북한의 핵 미사일에 직접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서 사드의 유용가치는 높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유환 교수는 “중거리 정도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포대 6대 가지고는 북한의 그 많은 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드는 군사무기의 효용은 낮은 반면에 정치무기로서의 효용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 괴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게는 미·중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지금이 사드 배치에 더 강한 압박을 가하는 전략적 포인트로 부상한 것이다. 그 압박을 피해갈 수 없는 문재인 정부는 사드를 배치하는 것도 아니고, 배치하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고 모호하고 복잡한 논리를 구사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이다. 사실상 이전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 정부가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외교적 방안을 대부분 상실한 상황에서 이번 사드 임시 배치 결정은 그나마 아슬아슬하게나마 외교적 지렛대로 작용했던 마지막 카드까지 놓아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독으로 북한을 억제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제력부터 확보하며 한반도 내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우선이라는 현실론 또한 여기에 근거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시작으로 대북 문제 미국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집권 시기 내내 ‘베를린 구상’ 실현은 미국과 북한 간 관계 변화에 따라가는 종속변수에 그칠 수 있다. 오는 8월부터 한미 연합군사훈련까지 예정돼있어 한반도 상황이 악화될 경우 대북 관계에서 ‘베를린 구상’의 실현 동력 자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대북 문제 전문가는 “사드 임시배치는 적절한 조치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한미동맹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한미동맹으로 (외교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종대 의원도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처지, 자꾸만 눈치나 살피면서 연명이라도 모색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렇게 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한 주도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대외적 정세 흐름에 따라 미북 관계가 개선방향을 타개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고, 이 때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제 생각에는 금년 말 전에 미북 간에 뭔가 가닥이 있을 것 같다. 금년 말 전에 북한이 그렇게 만들 것”이라며 “대화가 재개될 수 있는 미북 간의 접점이 생기고 남북대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그때의 대비책을 세워놔야 한다. 베를린 구상이 그런 점에서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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