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판결과 관련해 대표적 블랙리스트로 지목받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이 재판부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판했다.

백 감독은 블랙리스트 사건 피고인들에게 재판부가 좌편향된 문화계 지원을 바로잡고자하는 의욕이 넘쳐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재판부 스스로 한 쪽 편에서 사상검증을 하는 위험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지난달 27일 김기춘 조윤선 등의 블랙리스트(직권남용 및 강요 혐의) 사건 판결에서 천안함 정부발표에 의혹을 제기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영화관에 대한 지원배제 등을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했다. 해당 영화관의 대표적인 사례는 대구 동성아트홀로, 이 영화관은 지난 2014년 3월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했다.

특검의 공소사실에 의하면,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와 같은 정부 비판적 영화를 상영한 영화관에 대하여는 불이익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이 지침에 따라 모철민 청와대 교문수석과 김소영 청와대 문체비서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문체비서관실 신종필 행정관이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 이순일 사무관에게 ‘동성아트홀에 대한 영진위의 지원을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그해 4월24일 문체부의 요구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심사기준까지 급조해 8월25일 동성아트홀 등 5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했다는 것이 특검 공소장에 적힌 사실관계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동성아트홀 지원배제에 대해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이 법정에서 자백함에 따라 김 비서관만 직권남용 유죄판결을 했을 뿐,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정무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은 모두 증거가 없다며 무죄판결했다. 재판부는 조윤선의 경우 심의보류 시점인 4월24일이 조 전 수석의 정무수석 부임 전이며, 정무수석실이 계획을 승인하거나 가담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동성아트홀을 지원배제하라는 지시를 하거나 승인하는등 그 실행에 가담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백승우 감독은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법부를 믿고 지켜보고 있었으나 김기춘 3년형, 조윤선 집행유예 석방을 보며 많이 답답했다”며 “정말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세상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백 감독은 천안함 프로젝트 관련 무죄에 대해 “김기춘의 경우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천안함 프로젝트 영화관에 불이익이 취해져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면서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한 표현이 판결내용에 보인다”며 “공무원 사회 상식으로, 위에서 승인하지 않았는데 밑에서 알아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판단이 가능한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영진위 임직원에게 지원배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 강요가 아니라는 판단을 두고 백 감독은 “이 얘기는 영진위 임직원에게 내려간 지시는 ‘거부해도 되는’ 사항이었다는 것”이라며 “(반대로) 영진위 임직원들이 스스로 의지에 의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영진위 임직원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메가박스에서 개봉 하룻만에 이 영화 상영을 중단한 것과 관련해 백 감독은 “메가박스와 같은 극장들이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긴 하지만, 잘되는 영화 내리는 것은 극장 판단이 아닐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도) 메가박스 상영중단의 배경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백 감독은 ‘보수주의 표방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들인 피고인들은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기간에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이라는 재판부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매우 위험해 보이는 주장”며 “재판부가 한 쪽에서 서서 사상검증을 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 감독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인식’은 팩트가 아닌 일부의 의견일 뿐”이라며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는 표현에는 ‘좋은 일이었는데 그래서 잘하려고 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백 감독은 “북한과 관계된 문제는 앞뒤없이 지나치게 사회가 경직되고 있다는 문제제기의 영화(천안함 프로젝트)와 아이들이 바닷속에서 죽어갈 때 우리 사회는 뭘 하고 있었는가라는 영화(다이빙벨)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이야기인가”라며 “당연하고도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제기를 막고 다양한 문화를 죽여서 어느 한 집단만 찬양하게 만드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을 심판하는 재판의 판결문에서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백 감독은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해 “조윤선 전 장관이 석방되는 날 나오면서 ‘오해가 풀려서 감사하다’고 말한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독립영화 수많은 감독이 병들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나오고, 생활고에 허덕이게 만든데에 조윤선 전 장관도 책임이 있는데, 오해가 풀렸다니, 대체 무슨 뭐가 풀렸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 백승우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감독이 지난 2013년 9월30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규탄 범국민촛불대회에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백승우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감독이 지난 2013년 9월30일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규탄 범국민촛불대회에 참석했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