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뇌물 재판’ 피고인들이 “특검 조사 때 왜 그렇게 진술했는지 모르겠다”며 불리한 진술을 번복하고 나섰다. 승마지원 수혜자 정유라씨,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 등 삼성에 불리한 증언을 한 핵심 증인을 ‘허위진술자’로 몰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보호하기 위한 ‘변론 시나리오’가 가동되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7월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첫 번째 피고인신문 기일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황 전 전무 및 박 전 사장은 ‘정유라 1인 승마 지원’ 사건에 연루된 뇌물공여 혐의자다.

진술 번복은 신문이 진행된 14시간 동안 거듭 등장했다. 황 전 전무는 “특검 조사 당시 내가 절반 정도를 잘못 진술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이 특검에서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 청구 대금을 정확히 정산하지 못했고 정씨 외 승마선수를 파견하지 못했음에도 용역 대금을 지급했다’고 말한 것을 번복한 것이다. 정씨 1인 승마 지원 정황을 인정한 진술이다.

황 전 전무는 비타나V, 라우싱1223 등 정씨가 탄 고가 명마를 삼성전자 자산관리대장에 등재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특검 진술도 정면 부인했다. 그는 당시 특검이 ‘자산관리대장에 등재가 안돼 있다’고 지적하자 “실수를 했다”고 진술했다. 삼성전자와 최씨 중 누가 말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재판 쟁점인 상황에서 삼성 측에 불리한 진술이었다. 황 전 전무는 법정에서 “이 말 자체가 실수였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삼성 측이 대통령의 지시가 정씨에 대한 승마지원 지시였음을 파악했다고 인정하는 진술 전부를 부인했다. 그는 특검에서 ‘대통령이 승마협회를 지원하라고 한 것이 이것(정유라 지원) 때문이구나 생각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박 전 사장은 법정에서 “당시 제가 언론보도에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면서 “이 부회장은 정유라 이름을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정유라·박원오·김종 향해 “거짓말쟁이” 규정

삼성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한 핵심 증인은 ‘허위진술자’로 지목됐다. 뇌물로 지목되는 승마지원의 직접 당사자였던 정유라씨가 대표적이다.

황 전 전무는 “정유라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유라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지난 12일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과 자신의 승마코치 안드레아스 간 말 허위매매 계약 정황을 확인했다. 삼성의 정씨 지원이 논란이 된 지난해 9~10월 경 최씨와 안드레아스는 ‘비타나V’ 및 ‘살시도’를 안드레아스 소유의 명마 ‘블라디미르’ 및 ‘스타샤’로 교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특검은 이후 삼성이 최씨에게 넘겨진 말 소유권을 세탁하기 위해 안드레아스과 ‘허위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이 먼저 정유라 승마 지원 얘기를 꺼냈다’는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도 마찬가지다. 신문 도중 “박원오에 대한 생각을 말해도 되느냐”며 운을 뗀 박 전 사장은 “그도 상당히 최씨 측 요구를 주도한 사람인데, 재판 받는 과정에서 본인이 관여한 부분을 쏙 빼고 얘기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전 전무는 박상진 전 사장이 자신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승마종목을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지원할거니 정유연을 포함한 지원계획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사장은 적극 부인했다.

박 전 사장은 박원오 전 전무가 ‘최씨는 최태민 목사의 딸인데 박 대통령이 어려울 때 옆에 있으며 친자매처럼 돌봐줬다’ ‘최순실의 말 한마디가 바로 VIP에 전달된다’ 등이라 말하며 최씨 영향력 실체를 처음 알려줬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정작 당사자인 박 전 전무는 “말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박 전 전무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삼성 측 피고인들의 주장은 허위진술이 된다. 박 전 전무는 삼성 측의 ‘정유라·최순실 파악 시점’과 관련이 있다. 삼성은 ‘2015년 7월29일 경이 돼서야 박원오를 통해 정유라를 파악했다’는 입장이다.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두 번의 독대에서 정유라 이름이 언급된 적이 없다는 취지로, 대통령의 승마 지원 지시가 정씨에 대한 지시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이다.

결정적 증언을 한 김종 전 문체부 차관도 법정에서 허위진술자로 지목됐다. 김 전 차관은 특검 조사 및 법정에서 2015년 7월23일 박 전 사장으로부터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직접 연락해 정유연(정씨 개명 전 이름)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한 2015년 6월에도 박 전 사장이 ‘삼성에서 정유라를 지원할 준비가 언제든 돼있는데, 임신 때문에 말을 탈 몸이 아니어서 지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은 “완전히 조작된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김종 전 차관이 특검 조사 등에서 날짜·만남 장소·동석자 등을 수차례 번복해서 진술한 점을 들어 김 전 차관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이재용 질책했다” 삼성 진술은 얼마나 신빙성 있나

박 전 사장, 황 전 전무 모두 자신이 직접 작성한 메모에 대해 “최순실씨가 말한 것을 적은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삼성 측이 결정하거나 주도한 내용이 아니라는 취지다.

특검이 박 전 사장 집무실에서 압수한 메모에는 ‘말, 비타나 살시도 엑스, 비타나 대체마 함부르크, 비타나 성적이 안나온다 -> 대체마?, 말에 대한 욕심 그대로’ ’대책, 대체말 유무 확인 과연 성적이 나오겠는지?(유라-자질부족), 송금 안드레아 경유 함부르크 유라, 프로그램 안드레아 활용 위해 17년까지 한번 돌릴 필요‘ 등이 기재돼 있다. 박 전 사장이 2016년 9월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펜스키 호텔에서 최씨, 황 전 전무와 함께 논의한 내용이다.

황 전 전무가 자신에게 보낸 ‘최원장 미팅결과’ 제목의 이메일에는 ‘블라디미르 6개월 내 매각 추진, 스타샤 라우싱 향후 분할 입금 형식으로 자산 정리 추진, 18년말까지 안드레아스 명의로 두었다가 이후에 소유권을 최원장에게 이전 추진’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지난해 10월19일 독일 케네디호텔에서 최씨와 만난 후 논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삼성 측 변론은 대통령 및 최씨 측에 책임을 모는 흐름을 보여왔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불이익을 우려해 최씨 측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고 변론해왔다.

‘대통령 질책’은 그 중 하나다. 삼성 측은 특검 수사가 개시되며 입장을 선회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에서 숨겼던 2015년 7월25일 독대 사실을 특검에서는 새롭게 진술하며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질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을 30분 가량 만났는데 승마 얘기만 했다’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을 때가 있다던 기사를 본적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등의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인 파면 대통령 박씨는 이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어이가 없다. 내가 어떻게 질책을 합니까”라며 “내가 제의를 해서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았는데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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