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만 있는 예능에, 남녀 편 가르냐고 안 물어보잖아요. 그리고 남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듯, 여자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에요. 다양한 여성이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CJ E&M의 온스타일 채널에서 3일 첫 방송을 하는 ‘뜨거운 사이다’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이영진이 한 말이다. 이영진은 왜 이런 말을 하게 됐을까.

‘뜨거운 사이다’는 패널 6명이 전부 여성인 토크쇼다. 한주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여성 6명이 토론하는 설정으로, ‘여성판 썰전’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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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발표회에서는 ‘여성 예능’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질문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들끼리만 있으면 기싸움이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서열은 누가 가장 센가?”라는 질문이었다. 제작발표회를 진행한 코미디언 박슬기는 “여자들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는 말도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남성 캐릭터가 위주인 예능판에서, 여성 역시 여성 예능에 대한 편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후에는 ‘남성과 여성 편 가르기’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계속해서 “우리 프로그램은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기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다”라는 점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이영진이 “남자만 있는 예능에 남녀 편 가르냐고 물어보지 않는다”는 말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남성 패널 위주로 구성된 예능판에서 ‘여성 예능’을 만들 때 겪어야만 하는 고충이다. 실제로 ‘뜨거운 사이다’ 1편에서는 ‘여성 예능은 왜 없는가’에 대해 토론을 진행한다. 예고편에서 이영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애교를 시키는 경우가 많고, 남성의 시선으로만 여성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예능 제작자들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원 구성도 100% 남성”이라는 돌직구 발언도 나왔다.

▲ '뜨거운 사이다' 예고 중.
▲ '뜨거운 사이다' 예고 중.
문제는 이런 ‘사실’을 열거할 때, 또 그 사실을 열거하는 대상이 ‘여성’일 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남녀 편 가르기’를 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말해도 ‘싸움을 거는 것’이 되고, 실제 자신의 상황을 말해도 ‘피해자 코스프레’가 된다.

실제로 tvN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소설가가 ‘여류작가’라는 단어가 여성비하적이라는 지적을 했을 때 큰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배우 이주영이 “여배우는 여혐이다”라고 했을 때 수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제작발표회에서 “남자들이 말하면 남녀 편 가르기라고 하지 않는다”는 이영진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이유다.

‘남성 예능판’에 균열을 내는 ‘뜨거운 사이다’가 나온 것은 그래서 환영할 만하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지혜 기자가 말했듯, 예능 프로에 여성들의 목소리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장이 생긴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사이다’ 제작진에게 바라는 점은 혹시라도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센 여자’라고 묘사하거나 ‘당당하다’는 식의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당당하고 센 여성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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