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의 대표적인 대상으로 지목된 영화 다이빙벨 제작자인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기자(전 MBC 기자)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이 기자는 이 판결을 두고 엉터리라며 수구기득권들의 선전포고이자 촛불과 새 정부를 얕보고 도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윤선 전 장관이 다이빙벨 상영저지와 관련한 논의와 그 현황정보를 공유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김기춘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직권남용 및 강요 사건) 판결에서 김기춘 전 실장에 징역 3년, 조윤선 전 장관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했다. 강요혐의는 모두 무죄였으며, 직권남용 부분도 일부 무죄였다. 조 전 장관의 경우 강요혐의 뿐 아니라 직권남용 혐의에서 모두 무죄로 풀어주고 위증혐의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조 전 장관은 지난 2월7일 구속된 이후 5개월 여 만에 석방됐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 설명자료에서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벨 등의 영화상영을 막거나 영화상영관에 대한 지원배제를 하도록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의 공소사실을 들어 “문체부 공무원을 통하여 영진위 사무국 직원들로 하여금 영화기금 지원사업 등에서 특정 영화관․영화제를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거나 지원금액을 감액하도록 개입하게 한 행위는 직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진위 소속 임직원 독립영화전용관,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지원 금액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영진위 위원장 또는 전체위원회 위원들에게 전달하여 지원을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심사 의결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은 의무없는 일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해 재판부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4년 10월21일 김 전 실장에 보고하고 승인 받은 ‘건전 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 방안’ 보고 문건을 제시했다. 이 보고 내용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와 다이빙벨 상영 등의 지원배제 범행의 대상 및 방식과 일치하고, 부산국제영화제와 인디스페이스 등에 대한 지원배제의 경우 김기춘이 직접 지시하거나 실행계획을 보고받고 승인해 그 지시가 청와대와 문체부를 통해 영진위에 차례로 하달됐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이 직권남용과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미필적 고의도 인정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밖에 김상률 전 교문수석 김소영 전 문체비서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같은 공범이라고 재판부는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인디플러스가 다이빙벨 상영요청을 거부한 것은 무죄라고 봤다. 재판부는 “영진위가 청와대와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의해 영화 프로그램 선정에 관한 독립성을 침해당하여 다이빙벨 상영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법령상 의무없는 일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다이빙벨 상영 저지 과정과 관련해 “정무수석실이 조윤선의 지시에 따라 다이빙벨 상영 저지와 상영될 경우 그로 인한 파장의 최소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추진했고, 교문수석실에 협조요청을 하여 상영현황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차년도 지원예산을 삭감한다’는 취지로 김종덕 장관이 2014년 10월 비서실장에 한 보고를 정무수석실에서 공유하거나 위 보고에 관여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부산국제영화제 반액 삭감 등 방안 보고서를 정무수석실에서 보고받거나 승인하였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며 “다이빙벨 등 문제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인디스페이스 등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행위를 지시‧승인하거나 개입했음을 인정할 증거 없다”고 강조했다.

조윤선 전 장관은 유일하게 국회에서 위증한 부분만 유죄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하거나 본 일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윤선이 특정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배제 명단 검토 및 관리 행위에 관여하거나 이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으므로, 위와 같은 증언이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거나 기억에 반하여 증언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전체 피고인들의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법치주의와 국가의 예술지원의 공정성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 정도는 쉽사리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면서도 “다만 피고인들은 보수주의를 표방한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직 공무원들로, 문화예술계가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기간에 바로잡겠다는 의욕이 지나쳐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모호한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이는 특정 개인 등의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국가권력을 남용한 다른 국정농단 범행과는 그 성격이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다이빙벨을 제작, 출연한 이상호 전 MBC 기자(고발뉴스 대표기자)는 28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가을, 촛불집회의 열기가 한창이던 당시에 이런 엉터리 판결이 나왔다면, 법원은 백만 시민에 둘러싸여 촛불에 포위당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판결문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은 대한민국 수구기득권체제의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촛불혁명 정신을 이어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를 얕보고 도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판결 내용에 대해서도 이 기자는 “김기춘의 비서실이 세월호 오보를 지적하고 정부의 구조실패를 고발하는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도록 지시했다는 특검의 공소 사실은 인정한다. 당시 교문수석으로서 조윤선은 지시대로 다이빙벨 상영결과와 진행상황을 김기춘에게 보고한 것 역시 법원은 사실로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법원은 조윤선이 상영 상황을 보고만 했을 뿐 극장들에게 그로 인한 예산삭감 등 불이익을 끼치지는 않았다며 돌연 조윤선의 변호인으로 돌변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법원에 대해 “조윤선이 다이빙벨 예정 상영관 현황을 파악할 것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직권남용 유죄를 선고해야만 했다”며 “‘상영관 현황을 파악한다’는 사실은 첫째, 우리나라 스크린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멀티플렉스에게 다이빙벨을 상영하지 말라는 명백한 경고이며, 둘째, 상영할 시 파악된 현황을 근거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 했다면 극장들의 다이빙벨 상영현황을 왜 공유했겠느냐는 것이다. 이 기자는 “그러면 이들에게 상이라도 주려고 공유했다는 것이냐. 어불성설”이라며 “도둑 두목이 범행전 부하들과 부잣집 담을 넘어가 망을 보고 나왔는데, 직접 도둑질에는 가세하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이 기자는 “청와대에서 날이면 날마다 수석들이 모여앉아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 하나를 죽이기 위해 공작을 세운 자체만으로 문화탄압이며, 보다 조직적으로 문화계를 압살하기 위해 블랙리스트 제작한 것은 반헌법적 쿠테타의 일환이었다”며 “그럼에도 법원은 이를 통치행태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인다. 법원은 사실을 사실대로 판단해야지, 법리적용을 이유로 사실을 비비 꼬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다이빙벨을 가지고 사고현장으로 가는 배에 취재차 동승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는 “이런 엉터리 판결을 보며 바른 언론이 절실하다”며 “수구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과 판결에 대한 명쾌한 지적과 비판이 촛불혁명의 좌초를 막는 쐐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같은 판결을 한 황병헌 부장판사와 재판부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민변 변호사 출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기춘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의 정점에 있었다고 판단하면서도 3년형만 선고했다”며 “블랙리스트 작성이라는 것이 헌정질서를 유린한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거나 부족하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조윤선 관련 판결에 대해 “블랙리스트의 보고만 받았기에 무죄를 선고하고 위증만 유죄 인정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며 “위법하고 위헌적인 내용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면 당연히 멈추게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는 공범이라고 봐야하는데 그렇게 보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전체적으로 매우 부족한 판결입니다. 이러니 끊임없이 사법개혁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 담당 관계자는 “우리가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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