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SBS, EBS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방송사와 외주라 칭해지는 독립 PD (혹은 독립제작사) 사이에 ‘공정거래’는 없다. 고정수입 없고, 보너스 없고, 4대 보험 없고, 퇴직금은 더더욱 있을 리 없는 독립 PD들은 잠을 줄여 촬영시간을 늘리고, 혼자 감당하기엔 아니 두셋이 감당하기에도 무겁고 다양한 장비를 들쳐 메고 일인다역의 현란한 플레이를 펼친다.

열악한 제작환경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립 PD는 환경을 탓할 수 없다. PD이기 이전에 생활인인 독립 PD는 늘 부족하기만 한 제작비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푼의 생계비라도 가족에게 더 전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한 프로그램 끝나면 또 한 프로그램. 끝나면 또 한 프로그램. 힘들다는 불만, 쉬고 싶다는 푸념은 함부로 꺼내면 안 된다. 일이 있다는 자체로 “닥치고 감사”할 일이니까.

독립 PD에게는 어떤 한계도 허용되지 않는다. 제작비가 적어서, 제작일정이 짧아서,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제작비를 초과하거나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경제적 책임은 오롯이 독립 PD가 져야 한다.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자연스럽게 퇴출당한다. 입이 있되 말은 할 수 없는 독립 PD는 독립 PD 자신 이외에 어디에도 귀책사유를 물을 수 없다.

▲ 아프리카 현지 촬영 중 사망한 박환성, 김광일 PD의 영정사진. ⓒ김영미 PD
▲ 아프리카 현지 촬영 중 사망한 박환성, 김광일 PD의 영정사진. ⓒ김영미 PD
많은 독립 PD들이 제작비가 부족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혹은 한 푼이라도 더 남겨보려고 정부 지원에, 기업협찬에, 각종 영화제에 손을 벌린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 좋게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약속받은 제작비는 깎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받은 지원 (혹은 협찬) 금에서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뚝 떼어 방송국에 줘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방송국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붙인 이름이 그 이름도 아름다운 ‘상생’이다. ‘외주사 상생 협력방안’. 조폭이 “거 같이 먹고삽시다. 협조 좀 해주소” 하면서 영세상인 피 빨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분은 있다. 조폭은 ‘보호비’를 명분 삼지만, 방송사는 제작에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하고 전파에 태워 송출하는데 드는 비용을 명분 삼는다. 돈을 받고 방송을 틀어주는 그들, 그들에게 “프로그램은 돈 주고 사서 트는 것”이 아니다.

독립 PD는 방송사에 제작비 지출계획도 제출한다. 독립 PD가 얼마를 남기는지 방송사는 뻔히 안다. 어디서 지원이라도 받으면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조목조목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재량껏, 능력껏 아껴서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 내는 건 원천봉쇄다. 그들에게 독립 PD는 “밥이 아닌 열정을 먹고 사는 존재. 원래 가난한 존재”인 것이다.

독립 PD들은 방송 전 시사를 하면서 인격적인 수모도 감수해야 한다. 시사 책임자를 잘못 만나면 물리적인 폭행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내 배 아파 나은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내 자식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방송이 나가는 순간 저작권이 방송국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방송국이 재방에 삼방을 해서 광고 수입을 올려도, 해외에 팔아도 그 수익은 고스란히 방송사가 챙긴다.

이런 지독한 착취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독립 PD들은 꿋꿋하게 버티고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유수의 해외 영화제와 스크린을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워낭소리’,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달팽이의 별’, ‘철 까마귀의 날들’ 등 예로 들자면 수도 없이 많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던 고 박환성 PD도 해외에서는 이름깨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도 살아생전엔 갖은 한계와 부조리에 시달렸다. 이역만리 촬영현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수천만 원의 제작비 손실을 떠안을 걱정에 속을 태워야 했다. 그럴 때마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목숨을 건 촬영을 감행해야 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사고차량에서 발견된 햄버거와 콜라. ⓒ김영미PD 페이스북
▲ 남아프리카공화국 사고차량에서 발견된 햄버거와 콜라. ⓒ김영미PD 
때로는 한 푼의 제작비라도 아끼려고 때로는 단 일 분의 촬영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햄버거를 씹고, 콜라를 삼키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현지 도우미도 없이 수백 킬로를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이동하곤 했다.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만들어 보고자 그래서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높여보고자 어렵게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방송사(EBS)는 지원금에 40%를 내놓으라고 했다.

그는 ‘인내는 여기까지’라며 저항을 선택했다. 골리앗과의 싸움이라는 걸 알지만 갈 때까지 가보자며 결기를 다졌다. 그러던 그가 떠났다. 그것도 이역만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장대비 쏟아지던 날, 마주 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해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어린 두 아이의 아빠인 후배 독립 PD 김광일과 함께….

너무 많은 독립 PD들이 원통해 하고 있다. 슬픔과 분노가 처음과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살아생전 그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박환성, 김광일 두 PD의 삶이 다른 독립 PD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처럼 최후를 맞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독립 PD들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알아버렸다. “갈 데까지 가보자”

박환성, 김광일 두 PD에게는 명복을, 독립 PD에게는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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