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언론인’ 하면 왜 잘렸는지 안 물어봐요. 앞서 해직언론인들이 보여준 양상, 살아온 궤적이 반영된 거라고 봐요. 사회적 정의 때문이라고 보는 거죠. 그냥 ‘해고자’라고 하면 이유를 물어봐요. 왜 잘렸는지. 해고자라고 하면 ‘생활고가 있겠구나’,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우울하겠구나’, ‘가정의 문제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언론인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죠.”

언론인도 노동자다. 급여를 받아 생계를 꾸려야 한다. 아무리 공익적 목적을 위해 싸웠더라도 회사에서 쫓겨나면 경제적·심리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고충에 대해 쉽게 묻지 않고, 그들도 감히 말하지 않는다. 제작자율성·보도공정성에 대해서만 묻고 답했다.

정영하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27일 국회에서 ‘해직경험과 언론인의 인권보호’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해직언론인 토론을 자주 다녔는데 해직과 공정방송에 대해 주로 논의했지 해직자들의 인권, 생활에 대해 조명한 적은 없었다”며 “나도 처음 생각해 본 주제”라고 말했다.

▲ 2015년 10월 YTN 해직7년을 맞은 왼쪽부터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정유신 권석재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2015년 10월 YTN 해직7년을 맞은 왼쪽부터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정유신 권석재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언론노조에서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쌍용차 해직자들은 동네 얘기도 하고 가족들 이야기도 하는데 해직언론인들에겐 그러지 못했다”며 “언론노조라는 큰 조직에 있다보니 제도에 대한 얘기만 하고 사생활은 금기로 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가정사·개인사에 있어서 ‘해직언론인’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며 “해직자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김진혁 PD가 ‘화석같은 존재’라고 하더라, 박성제 전 MBC 노조위원장이 아무리 스피커를 만들어도, 박성호 MBC 해직기자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결국 해직언론인이라는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2013년 6월 박성제 MBC 해직기자 스피커 제작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 2013년 6월 박성제 MBC 해직기자 스피커 제작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해직언론인은 개인·가정 이상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해직언론인의 거취가 한국 사회 언론자유의 척도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본부장은 “해직언론인을 양산하는 사회는 ‘언론이 죽었겠구나’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임학현 포커스뉴스 해직기자 역시 “잠수함 통배기 시스템이 잘 안 되면 몰살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잠수함에 토끼를 실었다. 토끼가 죽으면 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의 투쟁이 한국사회 비상경보기 역할일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일만큼 해직자의 복직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복직 자체가 목표여선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명예회복이 선행·병행돼야 해직자 복직이 의미가 있다”며 “명예회복이 되지 않으면 자리만 지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1970년대 유신반대로 대량해직된 선배들 아직 명예회복도 안 됐다”며 “해직언론인이 돌아갔을 때 이 사회의 언론이 얼마나 제자리에 설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돌아간 언론인들이 다시 제대로 일할 수 있는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심 교수는 “지난 9년간 미디어환경이 상당히 바뀌었다. 돌아가서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노동환경이 열악해지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하게 노동문제, 소외된 분들의 복직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산업구조적인 문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으로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도 있다. 심 교수는 “헌법 21조의 언론의 자유는 현실에서 언론사들의 언론경영의 자유로 작동하고 있다”며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기초한 자유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4월 경영상 이유라며 정리해고 당한 김력균 OBS 해직PD는 “민영방송에서 일하다보니 정말 공감 가는 말”이라며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차별적인 노동탄압을 가하기 쉽다”고 말했다.

▲ 4월14일 부천시 OBS 사옥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OBS 지부와 시민단체가 사측의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OBS 지부 제공
▲ 4월14일 부천시 OBS 사옥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OBS 지부와 시민단체가 사측의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OBS 지부 제공

보도 공정성을 위해 투쟁하는 언론인을 공익제보자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 전 본부장은 “공익제보자로 보호하는 법을 만드는게 필요하다”며 “해고되면 다른 해고자와 같은 범주이기 때문에 노동법에 의해 복직소송을 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 해직언론인은 언론이 망가진 증거라는 게 역사적으로 검증됐기 때문에 사후에 빨리 조치할 수 있는 법이나 기구가 있다면 함부로 해고를 못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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